나무는 알고 있다.
나무는 정확히 알고 있다?
매화나무는 추위가 덜 가신 초봄에 꽃이 피기 시작하므로 봄소식을 알려주는 나무로 아낌을 받아왔다. 특히, 추위를 이기고 꽃을 피운다 하여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선비정신의 표상으로 삼아 많이 재배하였고, 시나 그림의 소재로도 많이 등장하였다. 그뿐인가? 나무는 자신을 도륙하는 도끼날에게 까지도 향나무는 향기를 아낌없이 준다고 한다.
나무는 사람들보다 더 강한 것 같다. 나는 내복 없이 겨울을 살지 못하지만 나무는 가벼운 옷도 걸치지지 않고 앙상한 가지로 겨울을 나면서도 인간이 간습하지 않는 한 어릴 때 부터 한곳에서 자란 나무들이 얼어 죽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보지를 못했으니 말이다.
모든 동물들의 몸이 90%이상이 물로 만들어 졌다고 한다 나무 또한 수맥이 대부분이고 물만 먹고 자란다고 할 만큼 물 없이 생명을 연명하지 못 할 텐데 말이다. 하여간 방안에서도 추위를 타는 자신이 눈보라치는 겨울 칼바람을 견디고 이겨내는 나무들을 보면 참으로 나무가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나무에게 오늘 배울 것은 추위에서도 추위에 물러나지도 않고 삭막한 겨울밤 외로움을 이겨내는 인내와 추운 겨울의 외로움과 슬픔도 클텐데도 외로운 기색 없이 자신이 맞이하여야 할 일은 당당히 맞이하는 자세인 듯하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그런 것 만은 아닐 것이다.
새해를 맞이하여 우리가 1월을 2월을 피하고 피하지 않고는 선택할일도 여지도 없다.
그리운 지난해를 그리워 하거나 뒤돌아보지도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운명이다.
돌이킬수 없는 것이 활줄을 벗어난 화살과 입에서 나온 말과 지나간 시간이라 하지 않는가
꿈을 가지고 희망을 가지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할 일뿐이다.
2016년 살아있는 한 가야만할 땅이고, 시간이다. 회상을 하기보다는 미래를 상상할일이다.
나무가 새싹이 트고, 잎이나고 줄기가 자라는 것들의 상상편은 멋진 나무들의 예고 편이다.
나무들이 동지가 지나고 점차 낮의 길이가 길어지고 온도가 오르면 나무는 또 힘차게 자랄 것이다. 여름을지나면서 하지가 오기전 까지는 한시도 쉬지 않고 밤낮 없이 자라고 열심히 자기 할 일을 다 할 것이다.
매화나무뿐만 아니라 다른 나무들도 동지가 지나는지 봄이오는지는 인간들은 몰라도 나무는 먼저 알고 있다.
나무들은 태양의 일조량과 밤낮의 길이에 동물보다도 예민하기 때문이다. 동물보다 수 많은 미립자를 더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예민하고 더 치밀한지도 모르겠다.
나무도 곤충들도 동물들도 알면 알수록 참 신기한 것들이 참 많다.
모든 생물은 생존을 위해 환경에 적응하고 자연 선택의 결과로 존재하는 것이지 ‘우열’을 가리는 것은 인간의 편협주의 이거나 우월주의의 발로일 뿐인 듯 하다.
이 세상의 온갖 생명체들을 논할 때 “나는 결코 어느 것이 하등하거나 고등하다고 쓰지 않겠다.” 는 다윈의 말처럼
어둠 속에서 방향을 잡는 박쥐의 능력을 비교하면 초음파를 보낸 후 그것이 물체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것을 분석하는 방법을 개발한 박쥐들이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인간보다 훨씬 진보했다고 평가해야 옳을 일인데 인간은 여기에 동의할수있을까? 2km를 날아가 이꽃 저꽃의 꿀을 채취하여 1cm도 틀리자 않게 자기 집을 찾아오는 벌들의 방향성, 개미들의 조직성을 보면 신기 하기만 하다 자연의 신기한 것을 말하려면 한도 없을 것이다
신비롭고 경이로운 동물들의 감각
천연기압계를 가지고 대기변화를 감지하고 살아가는 새들, 비오기전에 요란을 뜨는 개구리 두꺼비들, 기상캐스터같은 개미들 비가오기전 하루이틀전 입구를 쌓아올리는 열심, 부지런히 일하는 모습이란 정말 신기하다. 쓰나미가 오기전 코끼리는 코나 발로 초저주파로 쓰나미를감지 한다니 신기하지 않는가. 상어도 어디선가 오는 태풍을 7시간 전에 감지하고 무리가 허트러 진다고 하니 신기한데 식물들이 꽃을 피우고 수정을 하는모습이 결코 바람과 벌과 나비 때문이라 고만 할 수 없을 것이다. 광 렌즈로 촬영하여 꽌찰하면 식물도 움직이는 것을 볼수가 있기에 하는이야기다. 하여간 나무는 동지가 지나는 것을 알고 봄을 준비할것이고 동지는 24절기의 하나. 대설과 소한 사이에 있으며 음력 11월 중, 양력 12월 22일경인줄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일년 중에서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인줄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로부터 차츰 낮이 짧아지고 밤이 길어지기 시작하여 동짓날에 이르러 극에 도달하고, 다음날부터는 차츰 밤이 짧아지고 낮이 길어지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나무는 말이 없지만 너무나 잘알고 있다..
풍수를 배우며 들은 애기다. 중국 주(周)나라에서 동지를 설로 삼은 것도 이 날을 생명력과 광명의 부활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며, 역경의 복괘(復卦)를 11월, 즉 자월(子月)이라 해서 동짓달부터 시작한 것도 동지와 부활이 같은 의미를 지닌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라한다.
동지를 민간에서는 흔히 ‘작은 설’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 유풍은 오늘날에도 여전해서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 또는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을 하고 있다.
동짓날에는 동지팥죽 또는 동지두죽(冬至豆粥)·동지시식(冬至時食)이라는 오랜 관습이 있는데, 팥을 고아 죽을 만들고 여기에 찹쌀로 단자(團子)를 만들어 넣어 끓인다.
단자는 새알만한 크기로 하기 때문에 ‘새알심’이라 부른다.
동짓날의 팥죽은 시절식(時節食)의 하나이면서 신앙적인 뜻을 지니고 있다. 즉, 팥죽에는 축귀(逐鬼)하는 기능이 있다고 보았으니, 집안의 여러 곳에 놓는 것은 집안에 있는 악귀를 모조리 쫓아내기 위한 것이고, 사당에 놓는 것은 천신(薦新)의 뜻이 있다.
팥은 색이 붉어 양색(陽色)이므로 음귀(陰鬼)를 쫓는 데에 효과가 있다고 믿었으며 민속적으로 널리 활용되었다. 전염병이 유행할 때에 우물에 팥을 넣으면 물이 맑아지고 질병이 없어진다고 하며 사람이 죽으면 팥죽을 쑤어 상가에 보내는 관습이 있는데 이는 상가에서 악귀를 쫓기 위한 것이다.
동짓날에 팥죽을 끓여먹는 사람이 드나드는 대문이나 문 근처의 벽에 뿌리는 것 역시 악귀를 쫓는 축귀 주술행위의 일종이다.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나 재앙이 있을 때에도 팥죽· 팥떡· 팥밥을 하는 것은 모두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한다. 동짓날에도 애동지에는 팥죽을 쑤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동짓달에 동지가 초승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믐께 들면 노동지라고 한다. 동지팥죽은 이웃에 돌려가며 서로 나누어 먹기도 한다. 나무는 너무도 많은 것을 알고 있기에 조용한지도 모를일이다 그렇다면 더욱 이런 점은 나무에게 배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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