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018의 게시물 표시

살아있는 열망

살아있는 열망 녹색은 자연이다. 녹색은 열망이다. 녹색은 생명이다. 녹색은 탄생이다. 녹색은 살아있다. 녹색은 열정이다. 녹색은 희망이다. 녹색은 반응한다. 녹색은 순환한다. 녹색은 편안하다. 녹색은 경이롭다. 녹색은 신비롭다. 녹색은 창조이다. 녹색은 배려이다. 녹색은 근면하다. 녹색은 희생이다. 녹색은 사랑이다. 녹색은 우정이다. 녹색은 감사이다. 녹색은 감동이다. 녹색은 우주이다. 녹색은 위대하다. 녹색은 총화이다. 녹색은 편함이다 녹색은 호흡이다. 녹색은 행복이다. 녹색은 나무이다. 녹색은 식물이다. 녹색은 초본색이다.

계단아 고맙다.

계단아 고맙다. 자연 (自然) 자연스러움을 느끼고 싶은가? 그렇다면 뒤 돌아보지 말고 숲을 찾아 떠나라고 하고 싶다. 도심을 벗어나 강가로 가든지 산으로 산행을 하라고 권하고 싶다. 지혜의 숲으로 가자! 불편한 숲으로 가자! 행복한 숲으로 가자! 自然은 自然이 中心이다. 자연의 숲은 자세히 보면 볼수록 참 못생기고 쓸모없는 나무도 참 많다. 몸이 편히 쉴 곳이 없을 만큼 나무도 나무의 공간도 참 불편하다. 그런데도 마음만은 참 편하고 넉넉하고 여유롭다. 휴가를내고, 시간 내어 온듯한 기분이다. 바쁜 일상을 잠시피해 피곤한 몸이 잠시 쉴 수 있는 쉼의 시간이라서 그럴까? 여하간 쉼을 가지는 시간은 쉬는 것의 시간적인 쉼이이도 하지만 재생산의 기회의 시간이고 더 나은 자신의 발전을위한 시간을 위한 휴식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휴가는 자연 으로, 자연 으로, 숲으로 강으로 떠나라는 것이다. 단지 숲을 사랑하고, 강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떠나라는 것이다. 단지 조건이라면 숲을 귀하게 여기고 산천초목들을 사랑하는 애경스런 마음으로 떠나라는 것이다. 자연의 숲은 산에도 평지의 들에도 강가에도 바다가 에도 있다. 숲은 언제나 어디선 특정한 곳에 있지 않다. 자연스럽게 자연스러운 장소에 대부분있다. 단 하나 알고 떠날 것은 내가 편하면 숲이 불편하고, 숲이 편하면 내가 불편하다는 것쯤은 알고 떠나라고 하고 싶다. 하나 더 알려주고 싶은 것은 우리의 생리적 현상이 있듯이 나무들의 숲들의 생리적인 현상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숲과 초목들의 생리현상도 귀중하다는 것 쯤은 알고 식물들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떠나라고 하고 싶다. 달리 말하면 살아있는 내가 자연을 찾고 숲을 찾아 나서지만 숲과 나무와 자연도 살아 있다는것 쯤은 알고 나무와 서로가 양보하고, 나무와 함께 서로가 이해하고, 나무와 함께 서로가 불편함이 없도록 서로가 보살필 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

나무의 삶

나무의 삶 나무는 순수한 영혼으로 동물들의 삶을 관리하는 리드의 삶이다. 나무는 영적인 성장을 위하여 명상하고 기도하는 삶을 살아 간다 나무는 지나 일은 묻고 미래를 계획하고 현실을 다스리는 삶이다. 나무는 과거는 이해하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함께 연구하는 삶이다 나무는 언제 어디서 만나는 사람들도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다정하다. 나무는 톱,도끼날 앞에서도 자신의 의지나 정의를 포기 하지 않는다. 나무는 불의에 굴하지 않고 나무꾼에게도 당당한 정의로운 삶이다. 나무는 늘 긍정적인 생각으로 동물들의 삶을 변화 시키는 스승 이다. 나무는 말한마디 손짓 한번 없이도 동물들의 미래를 알리고 인도한다. 나무는 자기삶 뿐만이 아니라 자연보호에 누구보다 앞장서는삶이다. 나무는 미래를 향한 삶이고 매사 진취적이고 성실한 인도자의 삶이다. 나무는 자신의 삶을 끊임 없이 변화하고 진화 하며 혁신하는 삶이다. 나무는 어제보다 오늘에 집중하고 내일을 계획 하며 충실한 삶이다. 나무는 오늘 할일을 내일로 미루는 어리석은 일은 단 한번도 없다 . 나무는 자기의 마음을 이웃에게 내색하지도 않고 남을 평가도 않는다. ​ 나무는 자기의 철학을 스스로 담금질하며 나아가는 의지적인삶이다. 나무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미래세대 까지도 한결같은 삶이다. 나무는 자기 주장과 자기 소리는 없다 늘 경청하고 실천하는 삶이다. 나무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시간의 소중함에 충실한 삶을 살아 간다. 나무는 남을 의식치 않고 자신의 무한한 능력을 실천하는 성실함이다. ​ 나무는 새해 새로운 도전에 충실한 계획과 설렘으로 실천하는삶이다. 나무는 언제 어디서 삶을 시작하여도 주변에 적응하고 불평없는 삶이다. 나무는 스스로 움직이지 못해도 더 겸손하고 더 감사한 삶을 살아간다. 나무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받음보다 더 도움을 주는  봉사하는 삶이다. 나무는 언제나 어디...

40도의 더위

40도의 더위 사계절중 가을을 가장 싫어하는 나무꾼의 마음을 몇자 적어본다. 2018년 8월1일 오후 1시 59분께 강원도 홍천은 40.1℃도를같은날 두시1분께 40.3℃를 찍을때 나는 서울근교에서 39℃를 오르내리는 여름의 온도를 만끽하고 있었다. 남들은 덥다고 난리다. 그런데 나무꾼은 더위를 만끽하고 있었다. 추운 겨울을 생각하면 추위를 유독 타는 나무꾼은 행복한 온도다. 최고로 더운 날이다. 그런데 35℃, 34℃31℃까지 떨어지니 갑자기 가을이 닥아 올까봐 싫어진다. 가을이 오면 푸르던 나뭇잎들이 낙엽이 들것이고, 낙엽이 들고 비바람이 불고 그 비바람에 떨어지는 낙엽들을 보면 마치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질 시간이 닥아 오듯 시간의 조바심이 나기만 한다. 나무꾼은 가을이 그래서 싫은가 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비단 나무꾼만이 느끼는 마음의 변죽이 아닌가싶다. 서정주 시인 은 ‘가을비 소리’라는 시에서 “단풍에 가을비 내리는 소리/ 늙고 병든 가슴에 울리는 구나/ 뼈다귀 속까지 울리는 구나”라고 썼다. 신경림 시인 도 “늙은 역무원 굽은 등에 흩뿌리는 가을비”라고 노래한다. 며칠 만에 산책을 나온 이유도 때 이른 추위 때문이었다. 그리고 곧 나무들은 나목(裸木)이 되어 우리의 마음까지 시리게 할 것이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이별과 죽음을 연상시키는 11월이 싫은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산책길에 떨어진 나뭇잎들이 부럽다.늦가을에 잎들이 떨어지는 것은 나무들이 겨울을 위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는 의미라는 것을 ‘나무의 겨울나기’라는 기사(조선일보에서)를 읽었다. 그 한 줄의 글에 위로가 된다. 나무가 추위를 대비해 ‘구조조정’을 한다는 것이다. 나무는 동물처럼 추위와 더위를 피해 동굴과 같은 피난처를 찾을 수도, 사람처럼 옷을 입고 벗을 수도 없기 때문에 제자리에서 혹한을 견디며 겨울을 넘길 방법을 찾아야 했다.그 묘책이 잎과 줄기에 수분을 공급하지 못하도록 관다발을 막아 나무를 동상에 걸리지 않...

나무꾼의 복지

복지란? 요약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말씀대로 거짓말은 하지 말고 살아라는 말을 하고싶다. 사람 말고는 복지를 논하는 동물은 없다. 동물도 없지만 수 억년 사람보다 먼저 지구에 온 식물들에게도 복지는 없다. 행복해야 할 복지는 행복을 위한 복지가 아니라 장애나 나이가 많아서 남의 도움이 꼭 필요한분들 스스로 살아 갈수 없는 사람들이라면 이웃으로, 같은 국민으로서 의당 할 일이다. 그것이 선별적 복지다. 자연과 자연의 질서처럼 복지가 운영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복지 (福祉, welfare)는 좋은 건강, 윤택한 생활, 안락한 환경들이 어우러져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부모가 만들고 가족이 만든다. 복지란 열심히 일하고 일을 한 대가로 행복한 여가의 쉼 즐거움을 가족과 함께 누리는 시간 이다. 결국 복지란 自身이 만들어 가야 하는 인생 아닌가? 복지란 스스로 준비하거나 부모가 자녀를 위해 자녀가 부모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여가를 즐기고 쉼을 가질 수 있는 행복한 대가 이것이 진정한복지라 생각한다. 정부가 말하는 복지는 복지라기보다는 구제성격 인듯하다. 좋은 건강, 스스로 운동하고 스스로 좋은 습관으로 살아가는 자기관리 그래서 윤택한 생활, 스스로 열심히 일하고 게으르지 않고 저축하며 준비하는 삶 안락한 환경을 위해 스스로 노력하고 준비하는 삶 자신의 하루하루 아침의 기도(희망)와 저녁의 기도(보람)가 감사가 가득한 기도가 되도록 감사가 하루의 숨결같이 노래가 되게 부르고 싶고 그리하고 싶다. 감사하면 행복해 지고, 감사하면 아름다워지고, 감사하면 웃을 수 있게 된다. 웃음보다 더 좋은 보약이 없다든 황수관 박사의 이야기가 어제 들은 듯 생생하다. 이것이 바로 자신들이 만들어 가는 복지다. 오늘 하루 일요도 산을 보고 들을 보고 강을 보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이런 아침 기도 할 수 있음에 진정 감사한 마음이다. 마음만 먹으면 사계절 아름다운 동네 옆 산책로는 언제나 나를 반기는 정원이다....

선생님 같은 식물들

선생님 같은 식물들 지식만  가르쳐 주는 사람이라고 모두가 스승이 될 수는 없는 것 같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연에서 그리고 식물에게 배운다고는 하지만 식물을 알기 전 훌륭한 스승님들이 계셨기에 깨우침을 얻고 식물도 알게 되고 그래서 식물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고 알게 된 것같다. 내가 무지하면 식물도 무지해 지고, 내가 식물을 아는 것만큼 식물도 나를 알 것이고 이해를 할 것이다. 내가 나무에 대하여 유식하면, 내가 유식한 만큼 나무도 덩달아 유용하고 유식해 지는 듯하다. 그래서 나무에게 대접을 받을려면 나무를 좀 더 알고 좀 더 이해 하여야하는 이유인듯하다. 무엇이든 아는 것만큼만 보이게 되어 있다. 나무를 보고 숲을 보면서 숲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들뜨고 행복하고 지금 마시는 공기조차도 주변에 산과 숲이 많아  산의 공기, 숲의 공기 맛이 나는 듯하다. 숲으로 보이는 숲 같은 도시 공원의 나무들, 도심에 숲을 만든다고 많은 노력으로 도심에도 숲 같은 공원을 만든다. 잘못하면 도심의 공원을 만든다고 산속의 숲은 훼손 되는지도 모른다. 그나마 도로나 관리지역으로 건축물을 짓드라도 산지를 개발하면서 숲과 나무를 베어 버리는 것 보다는 도심공원으로 옮기기라도 한다면 조금은 다행이란 마음이다. 하여간 숲이란 무릇 인간들과 동물들과 미생물까지도 관계성이 있어야 숲이라 부를 수 있는 것 아닌가 싶다. 그래서 다양한 숲이 좋은 것이다.  나무꾼의 행복이란? 식물보다도 더 사랑이 많고 넓고 깊은 마음으로 배려하시며 실천 하시는 삶으로 깊이 있는 논리적 사고와 폭넓은 지혜, 미래를 투시하는 명철한 예측력,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손색없는 인품, 듣고, 배우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이제는 누구에게도 감동을 주는 분, 언제만나도 어디서 만나도 절로 겸손해지고 머리가 숙여지는 분 삶이 곧 가르침이신 분 그런 선배가 있다면, 그런 선생님이 게신다면 그런 종교지도자가 계시다면  그...

행복

행복이란? 幸福은 자신의 존재의 자체 이다. 부모는 자식이 손자들이  건강히 즐겁고 좋아 할 때 가장 행복 한듯 하다. 부모들은 자기 아들 딸이 즐겁고 좋아할 때 가장 행복하지 않을까? 부모들은 자식들의 존재 자체로 행복하다. 불행이란? 자식이 부모의 형상을 존재가치를 잊고 살 때 불행 할 것 같다. 그래서 자주 전화드리고, 방문하고 ,부모님의 형상이란 것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권력이 주는 행복한 시간 보다는 권력의 이별로  불행한시간이 많을 듯하다. 금력이 주는 행복한 시간 보다는 금력의 이별로 불행한시간이 많을 듯하다. 명예가 주는 행복한 시간은 권력이나 금력보다는 값지다. 첫째 진정한 행복은 보람이 있다. 둘째 사랑이 있는 보람 가치에서 행복하다. 세째 감사하고 사랑하는 곳에 행복이 있다. 네째 가정과 사회와 국가를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봉사하는 보람이 행복이다. ​ 나무를 생각하며 행복을 생각하면 나무는 말한다. 받기만하는 즐거움보다 스스로 찾아서 누리는 즐거움은 높은 차원의 행복이라고 공짜로 받는것은  윤리적 도덕적 해이를 가저온다. 결국 불행이라고.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은 소유에 대한 욕망이 크지 않아야한다. 만족하는 삶을 살라고. 과거와 미래에서 행복을 찾는 태도를 지양하고, 현재에 행복이 머물도록 연습하라고.    행복의 원천은 바로 사랑이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행복이 함께 있단다. 나무에게 배워라 행복이 무엇인지를 나무는 수 없이 얘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