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도의 더위

40도의 더위
사계절중 가을을 가장 싫어하는 나무꾼의 마음을 몇자 적어본다.
2018년 8월1일 오후 1시 59분께 강원도 홍천은 40.1℃도를같은날 두시1분께 40.3℃를 찍을때 나는 서울근교에서 39℃를 오르내리는 여름의 온도를 만끽하고 있었다.
남들은 덥다고 난리다. 그런데 나무꾼은 더위를 만끽하고 있었다.
추운 겨울을 생각하면 추위를 유독 타는 나무꾼은 행복한 온도다.
최고로 더운 날이다. 그런데 35℃, 34℃31℃까지 떨어지니 갑자기 가을이 닥아 올까봐 싫어진다. 가을이 오면 푸르던 나뭇잎들이 낙엽이 들것이고, 낙엽이 들고 비바람이 불고 그 비바람에 떨어지는 낙엽들을 보면 마치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질 시간이 닥아 오듯 시간의 조바심이 나기만 한다. 나무꾼은 가을이 그래서 싫은가 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비단 나무꾼만이 느끼는 마음의 변죽이 아닌가싶다.
서정주 시인은 ‘가을비 소리’라는 시에서
“단풍에 가을비 내리는 소리/
늙고 병든 가슴에 울리는 구나/
뼈다귀 속까지 울리는 구나”라고 썼다.
신경림 시인
“늙은 역무원 굽은 등에 흩뿌리는 가을비”라고 노래한다.
며칠 만에 산책을 나온 이유도 때 이른 추위 때문이었다.
그리고 곧 나무들은 나목(裸木)이 되어 우리의 마음까지 시리게 할 것이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이별과 죽음을 연상시키는 11월이 싫은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산책길에 떨어진 나뭇잎들이 부럽다.늦가을에 잎들이 떨어지는 것은 나무들이 겨울을 위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는 의미라는 것을 ‘나무의 겨울나기’라는 기사(조선일보에서)를 읽었다. 그 한 줄의 글에 위로가 된다.
나무가 추위를 대비해 ‘구조조정’을 한다는 것이다. 나무는 동물처럼 추위와 더위를 피해 동굴과 같은 피난처를 찾을 수도, 사람처럼 옷을 입고 벗을 수도 없기 때문에 제자리에서 혹한을 견디며 겨울을 넘길 방법을 찾아야 했다.그 묘책이 잎과 줄기에 수분을 공급하지 못하도록 관다발을 막아 나무를 동상에 걸리지 않게 하고 잎을 말려 땅에 떨어트린다. 즉 매서운 추위를 견디기 위해 앙상한 몸통만 남기는 ‘겨울 다이어트’를 통해 여름에 병해충에 시달렸던 나뭇가지들이 부러지도록 한다. 이 얼마나 신비로운 자연의 조화인가!나무꾼도 이번 겨울 나무꾼다운 다이어트를 하여야겠다.
조물은 거대한 존재 고리(the Great Chain of Being)에 의해 연결돼 궁극적으로 창조주(God)에 이른다고 믿었다. 피조물의 등급으로 밑바닥부터 무생물, 식물, 동물에 이어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동물과 천사 사이에 존재했다.
세계적인 대 문호인 셰익스피어는 탐욕으로 인한 인간의 비극적 운명을 쓴 4대 비극 중의 하나인 <햄릿>에서 인간은 “천국과 땅 사이를 기어 다니는”(crawling between heaven and earth) 존재라서 동물적인 탐욕과 천사 같은 기질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정의했다.하룻밤 사이에 낙엽은 더 많이 떨어지고 은행잎들은 샛노랗게 변해 노란 터널을 만들었다. 나무들은 탐욕이 판치는 세속에서 초연하게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고 겨울채비를 하고 있다.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해서 스스로의 살을 도려내고 다음 해의 새 삶을 준비하는 나무들의 지혜를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왜 실천하지 못하는가?바로 인간의 탐욕 때문이다.
개인이나 기업이나 정부나 모두 절제를 모르고 더 많이, 더 높이 소유하고, 오르려고 한다. 그래서 18세기 영국 시인 포프(Alexander Pope)는 <인간론>(Essay on Man)에서 인간의 탐욕을 경계해 분수를 지키고 교만하지 말라고 훈계했다. ‘이성의 교만 속에 우리의 과오 있으니/ 모든 사람들은 제 위치를 버리고 하늘로 치달리고 있느니라.’오늘따라 바람 부는 대로 흩날려 떨어지는 낙엽들이 아름답다. 마치 아름다운 무희들의 군무를 보는 듯하다.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는 ‘사즉생생즉사’(死卽生生卽死)라는 고사성어를 아니 이순신 장군의 어록을 인간은 실천하지 못하는데 나무들은 실천하고 있다.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으며 나의 겨울나기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를 생각한다.
정도의 차이겠지만 내게도 탐욕은 숨어 있으리라. 이 나이에도 내게 남아있을 세속적 탐욕과 교만을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 나무에게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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