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사랑
꽃의 사랑
겨울에 꽃을 이야기 하였다. 꽃이 곧 생명이 잉태되는 과정이라 생명과 사랑을 이야기 해본다.
생명을 가진 것은 그 누구라도 먹어야 하고 사랑하게 될것이라는 생각이다.
나는 식물도 동물 못지않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사람과 교감을 할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말을 못하여 그렇지 자신을 사랑하는사람과 미워하거나 자신을 헤치려는 사람을 알아본다고 믿는다.
식물도 음악을 들으면 춤을 추기도 하고 병충해도 저항력이 생겨 강해지고 튼튼해지기도 한다는 연구발표를 하는분들을 볼수있다.
꽃을 식물의 생식기라는 표현을 하였다. 생명이 있는것이 사랑을 하지 않는게 없을 것이다.
식물도 사랑을 하고 식물이 나누는 사랑을 오히려 인간들도 배워 야 할 것 같다는 마음이다.
식물들의 사랑이 너무나 은근하고 아기자기하고 조용하기에 꽃까지 더 예뻐보이는 지도 모르겠다.
아니 우리들이 그 식물들의 기쁜 환호성을 듣지 못하고 식물들을 인간들이 한송이 꽃을 꺽을 때 지르는 비명소리를 듣지 못할뿐 인지도 모르겠다. 식물들이 나타내는 다양한 반응을 통하여 창조주의 천지창조와 창조주의 생명체를 만드신 깊은 의미를 생각해 볼일이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자기가 기러는 꽃에게 "사랑해", '잘 자, 좋은 꿈꿔” 라고 속삭여 주고. 외출할 때면 '나 잠시 나갔다 올게 잘 놀고있어. 아마 3~4시간 안에 돌아올 수 있을 거야” 라고 말을 하고 외출을 한다. 이렇게 정성을 들여 1년~2년 키우게 되면 식물은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외출하면 돌아올 때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게 된다. 강아지처럼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을 달라고 외치게 되고, 목이 마르면 물을 달라고 소리 지르며 어디가 아프면 아프다고 신호를 보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호는 사람의 귀로는 들을 수 없고 적절한 측정 창치나 비디오를 통해 모양의 변화를 통해서 느낄 수 있고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비디오를 통해 외출나간 주인의 좋은기분일 때 꽃의 반응과 안좋은 사고를 당했을 때 꽃의 반응이 다르다는 실험 결과 들도 많다고 한다.
세상에 우연이란 없다고 하지 않는가?
하여간 식물들의 사랑은 어떻게 하는지 중학교 자연책에 나와 있을 것이다.
식물이 서로 사랑하는 모습은 어떠할까? 식물도 성생활을 할까? 만약 한다면 어떠한 모습일까? 식물도 동물이나 인간처럼 자신의 의지대로 수정을 하고 열매를 맺는 과정에 성생활을 즐기는 것일까? 동물이나 사람의 성생활과 비교하여 식물의 성생활을 통하여 인간이 배울 점은 없을까? 식물은 성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은근하게 기다리며 아기자기한 밀어를 속삭일 뿐 아니라, 사랑을 나누는데 있어서 매우 적극적으로 임한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열매를 잘 맺을 수 있을지 하는 점에 성행위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그 과정에는 암술과 수술간의 사랑이 밑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식물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성숙한 시기가 아니면 성생활을 하지 않으며, 인간사회에 있는 강압적인 성행위는 절대 찾아볼 수 없다는것이다.
달맞이꽃이나 나팔꽃 등 저녁이나 아침에 피는 꽃도 있지만, 대부분의 꽃은 낮에 피었다가 저녁에는 오므라들기 때문에 식물의 성생활은 밝은 대낮에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더 아름답고, 신비롭게, 경이롭게 ,오묘한 방법으로 하는지도 모를일이다. 식물의 성생활 과정에는 암술과 수술사이의 긴밀한 협조가 없으면 수정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 즉 강제적인 방법으로는 성생활을 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식물에 있어서는 수정이 일어나는 시기에 암술에서 특수한 분비물이 분비되는 등 실제로는 매우 적극적인 성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식물은 기다림 끝에 은근하고 분위기 있는 성행위 결과 열매가 맺히게 되는 것이다. 물달개비는 암술은 끝이 3개로 갈라져 있는데, 수술이 첫 번째 암술은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면서 입맞춤(?)을 하여 수정을 하게 되며 두 번째 암술은 오후의 작렬하는 태양아래에서 성행위를 하게 되고, 세 번째 암술은 붉게 타오르는 저녁노을 아래서 결혼을 하게 되다고 한다. 꽃 한 송이 내의 암술과 수술 사이의 성생활은 이러한 기다림 끝에 은근하고 분위기 있는 상황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식물의 성행위 목적은 철저하게 열매를 얻기 위한 방향으로 일어나고 있는데, 그 바탕에는 암술과 수술사이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이 노력과 애력을 사랑이라고 표현 해본다. 이러한 식물들의 성생활 결과 열매가 맺히게 되는데 그 과정 역시 빈틈없이 일어나게 된다. 성경에 보면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 그 땅의 소산 중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에스골 골짜기에서 포도 한 송이가 달린 가지를 베어 장정 두 사람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돌아온(민 13:23) 사건이 기록되어있다. 과연 한 송이를 두 사람이 메고 운반해야 할 정도로 큰 포도송이가 열릴 수 있었을까? 외국의 잘 가꾸어진 자연사 박물관이나 식물 표본관을 방문해 본 사람이라면 콩 한 개가 주먹 만 하였고 콩깍지의 길이가 2미터 정도인 표본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것을 볼 때 가나안 땅의 포도 한 송이도 두 사람이 메고 운반해야 할 정도로 큰 것이었을 것으로 밈음이가고 생각된다.
자연은 보면 볼수록신기하고 자연은 보면 불수록 경이롭고, 오며하다. 인간의 작품이 아닌 창조주의 무한한 능력을 보는듯하여 더욱 귀하고 경외롭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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