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사랑한다
알면 사랑한다.
모르고 사는 것이 참 많다.그래서 행복한지도 모를 일이다.
알면 아는 것 만큼 신경이 쓰이기 때문이라고 할까?
어설프게 알기 때문에 서로 오해하고 미워한다. 상대를 완전하게 알고 이해하면 반드시 사랑하게 된다.
자연도 마찬가지다.
나는 조경공사업을 하면서도 나무를 대부분 자르지 않고 모양내지않고 자연미 그대로 심는다.
나무도 아픔을 느끼고 고통을 감수 한다는 사실을 알고 믿기 때문이다.
유유상종이라 했든가 그래서 나무 전지를 못하게 하시는 선마을 촌장님을 더 좋아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나무에 관하여서는 대부분 뜻이 같다.
그래서 우리가 보고 느껴 알 듯이 나무도 가지가 부러지면 송진이 생겨나서 상처난 부위를 아물게 한다. 그리고
나무에서 나는 향기라고 하지만 나무도 스스로 살기위해 독소를 내뿜는일을 한다. 우리는 이마저도 피톤치드라고 하고 향기라고 좋아한다.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영양분을 섭취하면서 생명을 유지한다. 그래서인가?
벌을 좋아하면서 벌의 꿀을 뺏어먹고, 벌의 독소를 이용하여 건강을 얻고 있다.
참으로 무서운 세상이다. 생명까지 아무렇게나 취한다. 아는 놈이 도둑질한다는 옛말이 틀림 없는 듯하다.
벌의 일상을 보면 인간이 벌레만도 못하다는 찬송가의 구절이 실감난다.
인간은 20년을 배우고도 더 배우고 연구하고 평생을 학습한다. 그래도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인간이 반이된다고 한다. 벌은 어떠한가?
태어나서 곧 바로 집 청소를 하고 집을 수리하고 보초병을 자원하는 듯하다
그리고 침입자가 나타나면 목숨을 걸고 훈련되고 고도화된 조직처럼 협동하는 자세로 조직적으로 침입자를 공격한다. 언제 교육을 받았는지 여왕을 섬기는 일벌들은 생명을 여왕에게 맞기는 듯하다. 지금도 겨울을 나기 위해서 여왕벌을 목숨걸고 애워 싸고 보호한다 고도화된 특공대 조직같다 세상에 태어나 한두달 열심히 일하고 일할 능력이 되지 않으면 스스로 멀리가서 생을 마감한다.
개미들도 마찬가지 인듯하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라는 책을 읽어 보았는가?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공상과학 소설 '개미'에 보면 인간이 개미들의 언어를 터득하고 그들과 대화를 나눈다. 현대생물학은 하루가 다르게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과연 인간과 개미 간의 의사소통이 가능한 시대가 올 것인가? 만일 그런 때가 온다면 무슨 언어를 사용할 것인가? 동물들의 의사 소통은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등 크게 네 가지 매체를 토해 이루어진다. 이들 중 청각과 촉각은 모두 진동에 의해 정보를 감지하는 것으로서 기본적으로 같은 매커니즘을 갖고 있다 (개미 P62에서) 더 놀라운 것은 중국사람들의 개미의 한문 표기를 보면 신기신기이다.
개미의 한문 표기인 蟻는 옮을 義자에 벌레 충부를 붙인 글자다. 공익을 위해 사익을 희생하는 의로운 벌레라는 뜻이라고한다. 중국 사람들은 아마도 그 옛날에 이미 개미들의 특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중국사람뿐만 아니라 우리의 조상의 얼도 보면 볼수록 느낌이 크다. 알면 아는 것 만큼 보이게되고 아는것만큼 더 사랑한다. 더 사랑한다면 더 안다는 것이다.
생명이 있는 것은 에너지를 섭취해야하고 섭취하되 적게먹고 천천히 잘먹고 좋은 것으로 먹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먹는밥 食자의 구조를 보자 옛 선인들은 人변에 良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좋은 것을 먹어야 하나보다 그래서 人과 良이 한자로 만들어저서 食事라고 하지 않는가싶다. 인간들은 첫재 좋은 것으로 잘 먹고 둘째는 자유함이 있어야하고 셋째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야한다 행복이란 사랑의 충만이고 불행이란 사랑의 고갈이다. 마지막 인간에게는 꿈이 있어야 한다. 꿈이란 우리의 희망이고 이상이고, 간절한 소원이다. 그리고 비전이다 사람답게 사는 것은 밥을 먹고 자유를 먹고 사랑을 먹고 꿈을 먹어야 한다.
나무는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나무 또한 영양분이 녹아있는 물을 먹어야하고 탄소를 먹어야 하고 빛을 먹어야한다. 영양분이 없어도 못살 것이고 물을 먹지 못해도 살 수 없다 그리고 중요한 탄소동화작용에 필요한 탄소와 빛을 물과 함게 먹어야한다.
인간은 마음에 태양을 식물은 잎으로 태양을 가져야 할 것이다.
태양은 창조주의 최초의 작품이다. 태양은 광명이다. 태양이 없으면 식물은 탄소 동화작용을 못하여 생명을 유지 할 수가 없다.
인간은 태양처럼 밝은 마음, 밝은 얼굴, 밝은 가정, 밝은 사상으로 살아야할 것이고. 식물들은 태양이 없이는 탄소동화 작용을 못하고 탄소동화 작용을 못하면 에너지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생명을 유지하기 조차도 없을 것이다.
성경과 과학자들은 태양은 물론 물의 중요성을 다양하게 설명하고 있다.
에스겔 31장4~5절에 '물들이 그것을 기르며 깊은 물이 그것을 자라게 하며 강들이 그 신긴 곳을 둘러 흐르며 보의 물이 들의 모든 나무에까지 미치매 그 나무가 물이 많으므로 키가 들의 모든 나무보다 높으며 굵은 가지가 번성하며 가는 가지가 길게 빼어났고”라고 말씀하고 있다. 즉 물에 의하여 식물의 키와 굵기가 성장할 뿐만 아니라 가지의 수와 길이도 물에 의해 자라고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사야 44장14절에도 '나무를 심고 비에 자라게도 하나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비가 식물 성장의 주 요인임을 밝힌 구절이다. 그러난 이 구절까지도 빛이 존재한다는 과정 에서이다.
지구의 수십배가 되는 태양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자전을 한다. 지구 또한 자전을 하면서 공전을 한다 태양을 한바퀴돌면 365일이 지나 1년이 간다.
인간만이 한 살을 먹는 것이 아니라 식물도 동물도 지구가 태양을 한버퀴 돌면 1년을 살게 되는 것이다.
같은 지구에 사는 동,식물들이 한해 한해 살아가는데 식물들은 지구에 흙을 소모시키거나 탄수화물들을 소모시키는적이 없다. 오히려 생산을 할 뿐이다. 그래서 동물들의 생명을 유지하는 식량으로 에너지로 식물을 활용하고 있으니 동물들이 얼마나 식물로부터 무궁무진한 혜택을 누리는지 상상을 초월한다. 식물들에게 감사하고 늘 고마워하야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식탁앞에서 감사하는 마음과 고맙다는 기도를 드리야 하는이유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무에게 겸손을 배우고 배우는 것이다.
나무에게 부지런함을 배워야한다.
나무에게 침묵하 것을 배우고
나무에게 근면함을 배우고
나무에게 독립하는 것을 배우며
나무에게 자조하는 것을 배우며
나무에게 창조적인 것을 배워야 한다
나무에게 머무를 줄을 아는 여유를 배우며
나무에게 스스로 자족하는 것을 배우며
나무에게 자제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나무에게 스스로 행복해 지는 것을 배우고
나무에게 철학이 틀리고 사상이 틀린다고 싸우지않음도 배워야하고
나무에게 스스로 용서하고, 이해 하는것도 배워야 할 것이다.
나무에게 하나더 배울 것이 있다면 사랑하는 방법이다 배우고 나면 사랑한다는 말을 함부러 하는 것이 아닌 것을 비로서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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