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정직하고 진실하다.

나무는 정직하고 진실하다.
 
 
요약: 여론의 바람을 타면 그것이 진리든 거짓이든 분별하기보다는 먼저 흥분한다.
멀리서 보는 숲은 아름답고 멋있다.
멀리서 보는 숲은 한가롭고 고요하다.  
멀리서 보는 숲은 조용하고 평화롭기만 하다.
나무는 자연의 정직하고, 정의로운 진실한 모습 그대로이다.
의인은 멋있지만 의인은 굶주림과 고통의 순간 위기에서 절규가 흐른 시간속의 승리일 뿐이다.
 
나무는 봄이 되면 새싹이 눈으로 만들어저 세상에 나온다.
나무는 봄에서 여름까지 잎마다 새로운 잎으로 계속자라고 녹음으로 익어간다
나무는 가을이 오면 푸르던 잎이 시간이 지나면서 단풍이 들고 낙엽으로 진다.
나무에게는 아무 일도 아니다. 아주 자연 스러운 일이다. 
그저 잎은 잎으로서 할 일을 다 하고 나무가 편히 겨울을 지나도록 잎을 떨어 낼 뿐이다.
나무의 줄기들은 무덤덤하고 나무의 잎은 단풍이 들면서 낙엽으로  자기할일 다하고 황야를 떠나는 황야의 의인 같다. 
황야의 삶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황야의 의인을 떠나보내는 아쉬움과 보은의 감사에 마을사람들 모두  환호와 감사의 박수를 보내고 황야의 義人이 구세주같은 마음과 느낌으로 은혜로운 마음이다.
나무의 줄기로서는 나무의 잎이 의인 같다. 그러나 사람들은 단풍이 된 잎을 보고 어수선 서럽고 빨갛게 물던 나뭇잎을 보고 마음이 끌린 사람들은 단풍을 보고 환호한다. 감격한다. 아니 감동하는 듯하다.
사람들은 여름에는 녹음에 찬사를 하고 고마워하고 그리고 이제 가을이 되자 푸른잎이 단풍이 들기를기다리고 단풍이 들면  단풍에 환호 한다. 변화하는모습이 아름다운지 단풍이 진심으로 아름다운지 알수가 없다. 사람들은 단풍의 잎만이 아름다운것이 아니고  세상 모든 일이 주변의 분위기와 이미지와 인상에 끌리고 치우치고 올바른 판단보다는 분위기에 흥분하고 분위기에 자기의 정체성마저 잃어버릴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마치 술에 취한 때와 술에서 깨어난때와 다르듯이  변화무쌍하다.
이미지의 시대란 말이 현 세상을 잘 표현하고 함축하는 말 같다.
이미지란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모두를 의미하지만 단순하게 사람들이 이해하는 방향으로만 생각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여론의 바람을 타면 그것이 진리든 거짓이든 분별하기보다는 먼저 흥분부터 하듯이 말이다. 그러다 보니 엉터리 여론의 대중적 환호에 바람을 타듯 숲도 한정적 이미지에 숲의 생각이 아닌 멀리서 숲을 바라보는 인간들의 감정에 의하여 끌려 다닐 수도 있고 치우처 다니기가 일쑤다.
멀리서 보는 숲은 아름답고 멋있다.
멀리서 보는 숲은 한가롭고 고요하다.
멀리서 보는 숲은 조용하고 평화롭기만 하다.
그러나 숲도 알고 보면 다양한 숲속의 나무들의 삶이란 그리 평화롭지도 그리 조용하지도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은듯하다.
그 숲을 가까이서 보면 볼수록 다양한 종과 다양한 생물들의  먹이 사슬의 전쟁터 일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종이다르고  먼저 떨어진잎과 나중의 떨어진 잎들의 자리의 영역 싸움중인지도 모를일이다.
아니면 모든것을 체념한 조용하고 행복한 숲속일수도있다. 모두가 자기 입장에 따라 다를것이다.
동물이나 식물이나 산다는것 살아간다는 것이 그리 녹녹하지는 않다는 것을 증명 해 주고 있다.
멀리서 보는 숲, 더 멀리서 사진으로 보는 숲은 황홀할 만큼 아름답고 곱다는 말을 하고 싶다.
멀리서 보는 숲은 너무나 아름답고 예쁘서 보기만 해도 행복하고 고와서 안아주고싶고, 안기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고 포근하고 풍요롭게만 보인다.
낙엽이 된 단풍잎위에 맨살로 더 가까이 눞고 싶고, 포근한 이불속처럼 묻히고 싶은 행복한 감정의 마음이다. 그러나 실제로 곁에 가보고 예쁜 단풍잎 하나집어 눈앞에 두고 보면 고운 단풍이라기 보다는 상처나고, 얼룩지고, 멍들고, 험란하고 힘든 한해를 살아온 역사가 기록된듯 낙옆의 상처는 말은없어도 힘든 삶의 여정을 알수가 있을것 같다. 멀리서 보기는 안락 할 것 같고 아름다운 궁전 속처럼 평화로울것 같지만 실제의 세상살이 숲에서의 실제의 낙엽위에서는 맨살로 눞기는 커녕 옷을 입고 장갑을 끼고 마스커를 쓰고 누워도 거칠고 향기대신 세상의 오염물질로 먼지와 악취로 코를 마비시킬 심산 같다.
그리고 불편하다.
울창한 숲속으로 비치는 햇빛의 아름다움, 울창한 숲의 틈새로 흘러 들어오는 달빛의 환상이 어둠이 찾아들면 멋스러운 기억의 환상이 어느새 어두움과 공포와 위협으로 닥아온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도 동물들이 살아가는 것도 식물들이 살아가는 것도 희화된 작품 같지도 않고 아름다운 예술품과는 실제의 삶은 아주 다른 세상이고 힘든 세상이고 고단한 인생이다.
황야의 의인이 멋있는 것은 고통과 싸움에서 승리하였기에 아름답게 보일 뿐이다.
그 의인은 승리의 순간까지도 목숨이 위태로웠다.
 의인은 멋있지만 의인은 굶주림과 고통의 순간 위기에서 절규가 흐른 시간속의 승리일 뿐이다.
환경의 시시각각 이미지를 보고 이해 할 수도 있지만 오해 할 수도 있다. 우리는 언제나 이해를 넓히고 오해를 줄이는 방법을 찾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살다보면 이해의 폭은 좁고 오해가 크게 나타날 때가 더 많은 것이다.
아이들에게 나무를 그리라면 나무는 모두가 반듯반듯 하늘을 향해 잘도 서있다. 그러나 바람에 쓰러진 나무도 비탈에서 넘어진 나무도 무수히많다.
잘서 있는 나무가 쓰러진 나무에게 기대어 있는 것을 우리는 쉽게 보지를 못한다.
나무를 한그루 한그루 바라보기보다는 우리는 숲을 바라볼 뿐이다.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되면 왠지 잘 자란 나무보다는 휘거나 비스듬히 누운 나무, 그리고 상처 나고 생육이 부실한 나무들이 더 많이 눈에 뛴다. 튼튼히 자라지 못한 가느다란 나무들이 애처롭기도 하고, 보는이의 마음을 아프게도다. 나무는 거짓이 없다. 자연의 정직하고, 정의로운 진실한 모습 그대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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