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
산림 山林
나무를 한자로 (木)으로 사용한다.
나무들이 모여 숲이되고 산림(山林)이 된다.
산림의 어원을 더 알고자 인터넷 검색에 들어가 본다.
대한민국의 경우 남북한 모두 ‘산림山林’ 이라는 단어를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산림청, 산림조합, 산림복지진흥회, 모든 표기는 산림이 맞다. 山林의뜻을사전적의미는
(1)(기본의미) 수목이집단적으로생육하고있는산이나숲. 또는산속의숲. 임목(林木)과임지(林地)를합하여이르는말이다.
(2) 학식과 도덕은 높으나 벼슬은하지않고 속세를피해숨어사는선비를비유적으로이르는말
원래 산림이란 산림처사, 산림학자와 같이 관직을 하지 않고 은거한 인물을 상징하는 수식어로 많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는 초야의 선비가 아닌 국가적으로 대우받은 사림의 명망가를 일컫는 말로 사용되었다. 삼림森林’ 이란 단어는 오늘날도 일본에서 통용되고있다.
산림지사(山林之士)·산림숙덕지사(山林宿德之士)·산림독서지사(山林讀書之士)의 약칭으로, 임하지인(林下之人)·임하독서지인(林下讀書之人) 등으로도 불려졌다.
과거를 거치지 않고 향촌에 은거해 있으면서 유림(儒林)의 추앙을 받았다. 정계를 떠나 있어도 정치에 무관심하였던 것은 아니며, 정계에 진출해 있으면서도 항상 산림에 본거지를 가지고 있는 조선 후기 특유의 존재였다.
산림은 한 지역 사대부의 여론을 주도하고, 지역 사림의 천거권까지 보유하여 국정의 방향과 운영, 특정 붕당이나 정파의 성쇠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같은 산림이 등장한 원인은 16세기 이후 대토지 사유와 지주제의 모순, 이에 따른 부세·군사·관료제도의 부패와 폐단이 심해지면서, 중앙의 훈구세력과 재지사족간의 대립도 심해진 데에서 비롯한다. 재지사족들의 비판과 정계진출 노력은 증가하는 한편, 중앙집권층들로서는 이들과 일정하게 제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임진왜란 후 사회변동이 심해지고 국가체제에 대한 여러 가지 개혁론이 대두하면서 사림의 공론과 지지는 국정운영에 더욱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이같은 산림으로 최초의 인물은 정인홍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경상우도 사림의 영수로서 광해조 북인정권의 지지기반과 국정방향을 제시했다. 인조반정으로 북인이 몰락하고 서인이 집권하자 이들은 국혼을 유지하여 외척으로서의 지위를 잃지 않을 것과 산림을 중용할 것을 결의했다고 한다.
1623년(인조 1)에 성균관에 사업이 설치된 것을 계기로 세자시강원의 찬선, 익선, 자의, 성균관 좨주 등 산림을 우대하기 위한 산림직까지 만들어졌다. 이들은 일반관원에 비해 파격적인 대우와 특권을 누리며 사림의 명망을 얻었다. 또 경연과 서연을 무대로 왕과 세자의 스승으로서 활약했다. 대표적인 인물은 당대의 거유들인 김집(金集)·송시열(宋時烈)·윤휴(尹鑴)·윤선거(尹宣擧)·이현일(李玄逸)·권상하(權尙夏) 등이다.
특히 17~18세기에는 산림의 관계진출이 활발하여 송시열·윤휴와 같이 붕당 내에서도 세력 있는 정치집단을 형성하고, 각각 정파의 대표로서 예론·국정운영 등의 문제를 정책으로 내걸기도 했다. 그러나 18세기 이후 정국의 주도권이 노론과 외척세력에 의해 장악되면서 산림도 정치적 의미를 상실했다. 산림직도 매년 1~2명이 전국 유현의 대표로서 선출되어 의례적인 예우를 받는 형식적인 지위로 하락했으며, 세도정치나 외척의 사인으로 타락하기도 했다.
산림 山林 삼림 森林 나무 목자가 하나, 둘, 셋으로 늘어난 글자이다.
산림(山林)이라는 단어는 장자(莊者)의 ‘제물론’, 명나라때 홍자성이 쓴 ‘채근담(菜根譚)’에 나타나고 있어 동양(중국중심)에서는 숲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되었으며, 한국의 경우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산림(山林)이라는 단어가 2회 등장되고 있고 ‘삼림’이라는 단어는 사용된 예는 없었다. 고한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삼림森林’이라는 단어는 등장되지 않고 ‘산림山林’ 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으며, 홍만선(洪萬選1643~ 1715)이 엮은 농업서적인 「산림경제山林經濟」란 책 제목에서 보듯이 조선시대에는 ‘산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삼림森林’이라는 단어는 등장되지 않고 ‘산림山林’ 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으며, 홍만선(洪萬選1643~ 1715)이 엮은 농업서적인 「산림경제山林經濟」란 책 제목에서 보듯이 조선시대에는 ‘산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그렇다면 ‘삼림森林’이란 단어의 사용시기 등 배경을살펴보면 삼림이란 단어는 1908~1948년 약 40년간 산림이란 단어 대신 행정용어로 사용되었다. 이는 일제의 대한제국 강점과 동시에 식민지의 산림정책 수행을 위해 1911년 만들어진 ‘삼림령森林令’에서 유래되며, 즉 일제 강점기 이전인 1896년에는 한ㆍ러산림협동조약으로, 일본의 승리로 끝난 러ㆍ일전쟁후에는 ‘두만강삼림협동조약’으로 용어변경 사용된 것으로 보아 ‘삼림森林’이라는 단어는 결국 일본의 식민지 정책과 더불어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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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인용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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