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mountain, 山


, mountain,
 
어릴 때는 학교 운동장 대신 가까운 산을 찾아 즐겨 친구들과 많이 뛰어놀기를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학교 운동장에서 놀기보다는 먼지적고 굴곡이 많은 산에서 놀았든 것이 참 잘한 듯 운동이였던것같.
옛날에는 운동기구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밭이나 논에서도 놀기도 하고 대부분 일손을 돕기도 한기억이다.
지금 생각하면 농사일이 대부분이든 농촌 생활이 지금보다도 더 많은 미세먼지를 마신 기억이다. 추수 시에는 먼지가 콧구멍에 가득 차 코가 막혀 코를 풀어가며 마스크도 없이 일하시던 어른들이 생각난다. 미세 먼지가 몸에 한번 들어오면 나가지 않는다는생각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것같다. 단지 그날, 그날 할 일이 있으면 목표를 다하기에 급급하였을 뿐이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미세먼지로 인한 천식 환자도 많았고, 미세먼지가 성장기의 아이들에게 얼마나 나쁜지도 생각조차못하며 살아온 60년대의 농촌 삶이였을 것 같다. 여하간
어릴 때 기억이 산에는 소나무, 오리나무, 상수리나무, 아카시아나무, 싸리나무 들이 고작 이였다. 그리고 낮은 산은 강가에는 버드나무 미루나무 대나무도 있었든 기억이다.
간간히 이웃 마을 찾아보면 다른 지방은 잣나무도 구경 할 수 있는 산이 신기하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어릴적 기억으로는 산을 무단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산을 지키는 동네 어른도 계셨다. 요즘 같으면 산불 감시원이다. 그리고 산 주변에는 입산금지 라는 팻말도 설치되었고 산에 들어가면 나무를 꺽거나 낙엽을 땔감 대용으로 채취한다는 이유로 입산을 금지하기도 하였다. 결국 사람들이 입산하면 나무들이 훼손되고 나무가 자라기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이유 였던 것 같다. 당시만 해도 땔감이 없고 농기구 재료가 대부분 나무로 만든 농기구가 대부분이였기에 나무는 꼭 필요한 대단히 중요한 농촌의 자원이였다. 잘자라 밧듯한 나무줄기가  굵기마저 젃당하다면  모두가
괭이자루, 도끼자루, 낫자루, 삽자루, 지게받침 등등 모두가 잘 생긴 나무줄기가 필요하든 농촌의 생활환경이였다.
또한 산에도 나무들이 적어 낙엽도 없고 낙엽이 없다보니 비가 오면 산에 흙들이 씻겨져 내려와 산사태가 나서 농토와 민가에 피해를 주던 시절의 기억이 생생하든 차이다.
그래서 대통령령으로 치산치수에 관한 법을 만들고, 그린벨트 법이 만들어 산을 지키고 보호하자는데 최선을 다한 것 같다. 그 당시 우리 부모님들의 수고와 헌신 덕분에 오늘날 이리도 좋은 숲을 가지며 숲의 혜택을 지금 우리들이 누리기도한다고 단정 지을만 하다는 것이다.

당시만해도 나무를 꺽거나 나무를 자르는 일은 엄두도 못내든 시절이였으니까!
나무를 자르거니 나무를 굴취하여 오는 사람들은 옛날은 도둑이나 강도들보다 더 나쁜 죄이고 무거운 벌로 다스렸든 기억이다. 지금도 아마 산림법을 보면 절도나 강도보다 더 무서운 벌을 받을 것이다. 법이 그렇다는이야기다.
그런 산에 나무를 자르거나 나무를 베어 땔감으로 이용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였다.
단지 낙엽이나 솔잎을 가만가만 모아서 땔감으로 간간히 사용하든 시절 농촌에서는 벼농사 보리농사 밀농사를 하고 곡식을 거두고난 볏집 들이 땔감의 전부였든 시절이였다. 당시만 해도 연탄불은  좀 농촌환경에서 경제적 부담스런 사치스런 열료이였고 경제가 좀 나은 가정에서 사용하는고급연료이였다.
하여간 당시는 산이라면 벌겋던 산이 지금은 푸르러 졌고 이제는 다양한 숲으로 세계인들이한국의 산림녹화를 기적으로만 생각할 정도이다. 특히  세계 임학자들은 한국의 산림녹화를 세계3번째 성공국가로 손꼽을 만한 평가로 임학자들이 놀라는 환경 까지 만들어 졌다. 이제는 산행과 등산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 산행인구가 1800만명이나 된다고 하지 않는가? 이제 산행인구도 늘어 나기도 했지만 나무를 꺽거나 나무를 땔감으로 욕심을 내는 사람들은 없다.
하여간 그린밸트 제도로 산과 농지가 보호 되어온 덕분으로 부모님들이 고생을 하면서도 산을 지키고 다음세대를 위하여 참고 견디어 온 부모님들의 삶에 더한 감사를 드려야 할 것 같다. 산을 활용하지도 이용하지 않고 보살펴온 덕분으로 우리는 이만한 자연을 물려 받게 되었고 행복한 산행을 하게도 되었다 정말 옛날 가난한 시절을 생각하면 이제 천국에 사는 기분이다. 산이 벌거벗고 나무가 없든 가난한 시절 경리 정리가 되지 않아 다랑이 돈에서 경작을 하든시절 논길이 없어 리어카도 다니지 못하던 길을 이제는 자동차가 다니는 농로길이 콘크리트 포장까지 전국이 다 되어있다. 옛날을 생각하면 놀라고도 남을 일이다.
4050년 전만 해도 상상을 못하던 논길이요. 밭길의 농토였지 않았는가?
이런 이야기는 지금 청소년들로서는 상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다.
덕분으로 부모님들로부터 물려받은 산이 이제는 푸르를때로 녹음이 짙어젔고 일본으로 부터 36년간이란 식민지로 살면서 자연을 훼손, 도벌 당하고, 그리고 6.25 북괴의 침략으로 한반도 산림이 황폐할대로 황폐한산림을 오늘 이리도 훌륭한 산림으로만드신 부모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해야 할일이다.  
 대한민국 산천의 나무에게 물어 보지는 않았지만 나무들도 이제는 어느정도의 자립기반을 가진듯하다.
스스로 종자를 키워 나무의 종자를 나무 스스로 멀리 날려 보내고 母樹(모수)에서 멀리 떨어저 자라기를 바라는 것 같다. 소나무가 솔방울을 벌려 씨앗을 날려 보내는 것을 보면 날씨가 좋은날로 바람이 부는 날이다. 비가 오는 날은 솔방울은 씨앗이 날지 못하게 오무려 버린다. 단풍나무도 마찬가지다. 바람이 부는 날 씨앗을 멀리 날려 보내고 아니면 바람이 불지 않드라도 씨앗에 프로펠러 날개를 단 헬리콥터처럼 母樹(모수)에서 떨어지는 순간 날개를 달고 이리저리 멀리 날아가 멀리 安着(안착)한다. 그래야 자랄때 모수의 그늘로 광합성을 하지 못하는경우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잣나무나 상수리나무 같은 것은 다람쥐를 통해 일부는 먹이가 되기도 하지만 일부는 다람쥐 옮겨준 덕분에 멀리가서 땅에 뭍히고 싹이 트고 산의 이곳 저곳에서 잣나무가 自生(자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는 겨우살이는 새들의 겨울 먹이로 변신 하여 먹이가 되고 특히 직박구리 먹이로 새들이 다른 나무에서 배설할 때 끈끈한 액체 덕분으로 가지에 안착하고 산양은 헛개 열매를 먹고 자연발아 로서는 3%밖에 되지 않는 것을 산양이 소화하면서 소화액으로 두꺼운 표피를 산화시켜 30%이상으로 발아율을 올려준다. 씨앗들이 변화도 하지만 먼 곳까지 이동하는 수단이야 말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하여간 씨앗 이야기는 다음 또 하기로 하고 지금부터라도 자식을 부모로 부터 멀리 떨어저 자립하는 방법 스스로  살아가는법 을 좋은 유산을 남겨 주는방법을 새들에게 식물에게 배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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