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도 생각한다.
숲도 생각한다.
숲속에는 나무들만 살고 있을까?
숲속에는 나무들만 살고 있을까?
숲속에는 여러종의 산짐승들이 살고 있다.
숲속에는 생물, 미생물들도 생명을 가지고 살아간다.
모든 생명은 생명을 유지하기에 전심전력을 다해 힘쓴다.
생명의 존엄성은 생명을 가진 생명체로서는 보여주고 싶을 것이다.
생명에 대한 문제는 교육을 하던, 안 하던 생명의 존엄성은 본능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느낌을 가지고 감각적인 행동을 한다. 생각이 있다.
모든 생명들은 생명체로서 생명체들만의 의미를 만들어낸다.
숲은 동식물의 다양한 생각과 갖가지의 의미로 가득한 매혹적인 세상이다.
숲이 느끼기에는 동, 식물들이 느끼기에는 그렇다는 이야기다.
숲은 생각한다. 아니
숲속의 생물들이 생각한다.
사람들은 조용한 숲에 사람들만 들어가는 줄 알고 있다.
사람들은 숲의 혜택을 인간들만 보고 있는 줄로 착각한다.
아니다.
산돼지, 토끼, 노루, 고라니, 오소리, 다람쥐, 고양이, 뱀, 등등
숲속 나무줄기나 나무 위를 보라 머리 위에 새들이 곤충들이 즐기고 있다.
이름 모를 곤충들도 참 많다. 여하간
우리는 숲의 혜택을 보고 있는 줄 알면서도 뒤돌아서면 숲에 대한 고마움도 사랑도 없다.
숲은 인간 중심이 아니라 나무들의 중심이고, 미생물들의 중심이라고 나무꾼은 생각한다.
숲속을 드는 사람들은 생각하면서 이야기하는지는 몰라도 숲이 참 좋다고들 한다.
숲은 생각한다.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지? 그러나 아직도 숲은 말을 하지 않는다.
숲은 사람들을 좋다고 이야기한적도 사람들이 싫다고 이야기 한 적이 없다. 하여간
그래도 숲은 지금도 말없이 조용히 자라고 있다.
나무꾼은 말하고 싶다.
치산치수 문화 앞에 숲이 있고, 나쁜 文明 뒤에 사막이 남는다.
숲은 어느 문화권의 누구에게도 공정하게 숲을 찾을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기회는 부지런한 자에게 많이 준다고 하면 맞는 말일까?
숲을 찾을 기회는 숲을 찾아 스스로 들어오는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다.
기회의 균등은 별로 없다. 사람 사는 곳이 그렇고 동물들이 사는 곳이 그렇다.
기회도 치열한 경쟁 속에서 스스로 만들어서 얻는 것이다.
그러나 기회의 균등한 자유는 없다.
기회의 균등은 있을 수 있지만 결과의 대가는 노력한 만큼만의 보장이다.
복지 같은 결과의 사회균등이 있다면 절망의 사회다. 죽음 사회의 길이다.
자연을 보호받는 인간들이 자연을 보호한다고 나서지 말라고 하고 싶다.
나무꾼의 이야기가 기묘한 이야기로 동화나 신화처럼 들릴 수 있다.
숲에도 공짜는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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