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아침

새해아침**
새해 아침 오늘은 지방도로를 통하여 목적지를 다녀오는 길에 산천의 고마움을 생각해본다. 그리고 많이 변화된 좋은 도로, 멋진 건축물에 참 살기 좋은 곳으로 변화된 농촌 모습이 새롭다. 그런데  오가는 길에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이 대형 광고 간판이였고. 자연의 모습은 가려지고 자연의 경관은 외면하고 무시하듯이 가장 멋진 자연 경관을 가로막고 고로쇠축제를 한다는 간판이 나의 눈길을 막은채 나의 마음을 답답하게 한다. 자연을 만끽하고 살아가는 짐승들과 새들의 눈에는 어찌보일까 궁금하다. 산천의 초목들이 그 광경을 보면서 무어라고 할까? 참으로 궁금하다. 초대형입간판으로 3개 100km구간에 3개나 보았다.
그뿐인가 도로 좌우 산들이 능선까지도 산을 개발하여 집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더 큰 충격 이였다.
지금 까지는 능선까지 개발하는 안좋은 모습은 없었기 때문이다.
산림이 저렇게 대담하게 개발된 적도 없었고 저리 개발 되면서 훼손이 되어도 법적인 문제가 없다는 사실은 더 놀랍고도 신기하다. 어디까지 개발 될 것인지 한 두가족의 인간 건강과 행복한 삶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얼마나 많은 지구의 산림이 도륙당해야 하는지 섬뜩한 마음이고 소름 끼치는 생각이다.
어떻게 지금 까지 용케도 산과 들과 강들이 지켜왔는지가 더 신기한 일이 아닐까?
만약 지금 같은 인간적인 욕망과 욕심가운데 그린벨트라는 제도와 법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금수강산이라고 하는 산들이 지금쯤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자연은 누구 개인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을 모두 함께 생각하고 알아야한다.
밭은 밭으로, 논은 논으로, 산은 산으로, 강은 강으로, 습지는 습지로서 저마다 하는기능이 있다. 개인들의 이익을 위하여 지금처럼 훼손되고 망가진다면 다음 세대들이 발붙이고 먹거리를 내놓을 터전과 살아갈 땅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개발은 하되 공익적이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산천의 초목들이 순리를 따라 우리들에게 배풀어 주는 감사하고 고마운 일은 환경의 보전과 먹거리와 건강한 삶의 생태적 공간은 인간만이 아니라 곤충과 벌레 많은 동식물에까지 필수적이다.
인간뿐만 아니라 곤충부터 동물까지 그리고 인간에게까지 먹거리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약이 되고 병을 치료하는 물질까지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 놓는다. 그렇게 우리에게 많은 것으로 주기만 하는 나무를 1년 동안 단 한번도 그냥 두지를 않는다.
세월이 흘러 나무들은 몸둥아리 까지 우리에게 내어주지만 우리는 나무를 위해 나무가 필요한 거름 한번 제대로 주지 않았다. 환경을 보호하자는 자연을 사랑하자는사람들의 행동치고는 참으로 양심 없는 사람들의 착취 행위다.
틀린 말일까...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야 하는 이유 만큼 식물들도 인간들 처럼건강하고 병충해가 적은 공간에서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갈 가치는 분명 있는 것이다 인간이나 식물이나 산다는 것 살아있다는 것이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다. 그냥 무의미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일이다. 
누가나 바르게살기를 원하지 않겠는가?  삐뚤게 살려고 하는 나무도, 삐뚤게 살려는 사람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여유가 있으면 엉뚱한 생각을 하는 것이 식물과 동물이 다른 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교만함은 보통 시민들보다 권력자들이 더 많고 일반인보다는 명예를 남보다 많이 가진 자들이 더 교만할 확률이 많고, 더 많은 물질을 가진 자들은 더 교만할 확률이 높다고들 말한다.
정말 그런 것 같다.
그것을 우리는 흔히 편하게 하는 말로 겸손하지 못함을 驕慢(교만)이라고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지방 자치제를 만들어 더 교만한 사람을 많아 만들어 놓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글을 쓰는 본인은 바른생활이라는 교과서를 배운 시대에 살았다.
바르게 산다는 것은 眞實(진실)하게 사는 것이라고 배웠다. 그리고 아름답게 사는 것이다.
그리고 보람있게 사는 것이라고 감히 이야기 하고 싶다.
거짓되게 살면서 진실된 삶을 사는 것처럼 오해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추잡하게 살고, 무의미하게 살기를 바라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을 것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욕심이 가득한 사람이란 삐뚤어지고 추잡하게 그리 변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바로”라는 말은 참 중요하다. 우리 어릴적 바른생활이란 교과서가 있었다.
말도 바로하고, 생각도 바로하고, 행동도 바로하고, 생활도 바로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우리나라는 입법기관이라고 하는 국회라는 기관이 있다. 좋은 법을 만들어 정의롭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함이 아닐까?
그러나 법을 만들면서 법을 이용하는 법을 먼저 터득하는지도 모르겠다.
법을 바로 안 지키는 대표적인 기관인 것 같기도 하다.
철학이 없는 정치 그리고 철학이 없는 정치인이 문제인 듯하다.
정치도 바로하고, 경제도 바로하고, 교육도 바로하고 국민의 4대 의무라도 양심껏 지키는 사람들이 공직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고 자리를 비켜나야 옳은 일 같다. 그냥은 스스로 물러 나지 못할 것이기에 바른 여론이 그리 만들어야 할 것이다.
광화문의 모임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한 집단 모임이 아니라 공권력을 무시하는 모임이 아니라 참 진리가 여론이 되는 그러한 모임이기를 바래본다.
나무처럼은 살지 못할 지라도 나무에게 배우며 사는 모습이라도 지성인들이 먼저 지켜나가야 할 일인 듯하다.
 
나무들은
1. 일체를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삶을 산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도끼날 앞에서도 굴욕적인 삶은 살지 않는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우주가 자기편임을 안다.
2. 집착적인 삶이 아니다.
언제나 변하고 변화하는 환경에 순응한다. 자신의 욕망보다는 이치와 형편에 순응하는 삶이다.
3. 잎이 피기도 전에 꽃이 피기도 전에 인간들에게 생명의 물을 쏱아낸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나무는 자신의 마음을 무심하게 바라보기만 할뿐이다.
고로쇠 물 한방울이 얼마나 인간의 건강을 더 지켜 줄 것인가 묻고 싶다.
나무를 알면 아는 사람들이 나무에게 해를 더 끼친다. 법을 만드는사람들이 법을 안지키듯이말이다.
4. 그리고 자연의 환경에 모두 내어 놓는다.
욕심도, 자아까지도 내려놓은 듯 하다. 자연에게 모두 내어 놓는다
권력도, 명예도 , 물질도 자아까지도 내어 놓지 않았는가?
5. 그리고 사랑과 자비를 베풀고 있다.
자신을 도륙하는 인간 앞에 자기 자신 이면서도 자신의 것은 없다. 나누어 준다. 배풀 곳을 정하지도 않았다 누구에게나 준다. 소유란 아애 생각지 않은 삶이다.
6. 적게 생각하고 많이 열심히 산다.
출세욕도 명예욕도 물질욕도 적은 듯 하다. 최선을 다할 뿐이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연의 공동체를 위하여 열심히 살아갈 뿐이다.
공익을 위해 자연을 위해서 말이다.
7. 남에게 관섭을 하지도 받지도 않는 삶이다.
언제든지 내가 먼저 비울 수 있는 유연성의 법을 알고 있다.
8. 자신의 불편을 누구에게도 탓하지 않는 삶이다.
한번 뿌리 내린 자리에서 만족하는 삶이다. 부족하지만 불편하지만 아끼고 절약하는 삶이다.
9. 나무는 언제나 침묵하는 듯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기도 하는 삶이다
인간보다 더 혹독한 수행과 명상을 하는 듯 하다. 기도만큼 이 세상 순수한 행위가 있을까? 기도는 정신에 필요한 것이다. 기도의 본질은 감사다. 매순간 살아 있음에 나무들은 감사 할 뿐이다.
10. 나무는 언제나 침묵 한다.
말이 많으면 허물은 배로 늘어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무는 듣기만 하는가보다 인간이 배울 점이다.
다음 세대들에게 미안하지 않을 만큼 아끼고 절약하고 검소하고 바른생활을 하여야 하지 않을까? 특히나 공인으로 사는 방송인 언론인 정치인 행정을 맏은 공무원 들이 굿이 철학적이지 못하드라도 양심 있는 행동 만으로라도 살아가기를 바래볼 일이다. 진리가 여론이 아니고 여론이 진리가 되어가는 안타까운 세상을 우리 블로그를 하는 분들의 좋은글 하나하나가 모여 좋은 사회를 만들어 가는 참으로좋은 사회 여론이 진리가 아닌 진리가 여론이 되는 사회를 만들어 가기를 바래본다.
새해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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