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나이테
내마음의 나이테
나무도 사람도 동지를 보내고 낮의 길이가 길어지는 계절을 맞이했다.
사람도 나무도 2016년을 보내고 2017년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가 한창이다.
나무는 지난 과거를 회상하지 말고 그리워 하지도 말고 중요하게 여기지도 말고 잊어버리고 비워버리고 지금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산다. 나무꾼도 외로워하기보다는 일하는 기쁨으로 일을 연구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시간을 투자하기로 마음을 먹어본다. 즉 조화로운 삶을 생각하고 더 연구하며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고독하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희망을 찾고 미래를 연구하며 미래의 희망에 대한 상상을 한다. 상상은 미래를 희망으로 설계하고 계획한다. 상상하고 상상의 시간이 닥아올 미래를 준비하여보자
일이 없는 외로움은 사람을 그리워하게한다. 외로운 사람은 혼자 있기에 외롭고 그러면서도 혼자 있기를 즐기려려고 애를 쓸때가 있는 듯하다.
외로움 대신 고독을, 고독 대신 미래를 상상하자 외로움은 괴로움을 동행하고 괴로움 때문에 위로할 사람을 찾아 나선다. 외로움으론 무엇을 보아도 눈에 차지 않고 마음에 행복을 주지 않는다.
지금 같은 권력에 눈이 먼 사람들 때문에 그리고 돈에 눈이 먼사람 들은 아프고 찢어지는 권력과 금력의 아픔을 맛보게 된다.
금력과 권력에서 떨어저 나오는 아픔은 더욱 처절하다 자신밖에 모르는 자신의 자존감마저도 자존심마저도 앗아 간다. 자존심은 스스로 자기가 잘난 줄로 착각한 사람들이고 사랑의 결핍이 자존심으로 자란다고 한다. 자존감은 스스로를 소중하게 느낀다는 점이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한다는 이야기다.
식물들이 꽃이 필 때는 아름답고 향기나고 밝고 맑고 빛난다. 그러나
꽃이 떨어질 때는 권력에서 떨어지는 것보다 더 아프다.
낙엽은 떨어지면 주워 들지만 꽃은 피고 지며 떨어지면 줍는 이도 없다. 누구나 밟고지나간다.
권력이 꽃과 같은 것인가 보다. 설명하지 않아도 생각해 볼 일이다.
정원의 특징이 버려두면 못 쓴다는 것이다. 사람은 교육하지 않으면 쓸대가 없다. 정원은 좋은 식물을 심고 가꾸어야 아름답다. 사람은 좋은 스승을 만나야 한다. 정원은 가꾸지 않으면 방치하면 망친다. 사람도 나태하면 몹쓸 사람으로 바뀐다. 나무도 동물도 사람도 집도 그렇다 언제나 잘 관리를 해야 한다. 철이 들 무렵... 그 말을 여러번 되뇌여 보았다. 철이 들다고 할 때 그'철'이 무얼까. 그래서 우선 사전부터 찾아보니 철의 사전적 의미는 사리(事理)를 분별할 줄 아는 힘이라 되어있다. 그리고 내가 부모님이나 주위 어른들로부터 '이제 철들었구나'라는 말을 들었을 때가 언제였었나를 곰곰히 돌이켜 보았다. 그 때가 아마도 어리광이나 부리고, 막무가내로 조르고, 떼쓰기만 하던 모습에서 이제 막 책임과 인내, 배려라는 말 뜻을 몸으로 깨닫게 되었을 때부터가 아닌가 싶다. 어렸을 때는 '자기중심적'이어서 주위 사람들이나 남의 입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음 내키는대로, 하고 싶은 대로 행동을 했다. 사람들은 철부지(철不知)' 어린애라고 말한다. 한자를 풀이 하자면 말 그대로 철을 '부지(不知)'한다,즉 철을 모른다는 뜻이다. 그 철부지 때는 어머니와 손 잡고 길을 지나가다가도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사달라고 졸랐다., 그러나 서서히 몸도 마음도 성숙하게 되면서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뜨기 시작 한다. '내가 이렇게 하면, 상대방이 마음 아플 거야...내가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이 불편해 할 텐데... 그때서야 나만 생각하지 않고 남도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또한 집안사정을 고려하기도 하고, 내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남들에게 양보를 한다든지, 내가 할 일은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책임감, 인내심, 배려성'을 몸으로 알아가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나로서는 그 때가 바로 철이 들기 시작한, 철 모르는 철부지(철不知)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때 였던 것이다.
마치 나무의 줄기와 가지가 커지듯 턱 밑에 수염도 나고 목소리도 굵게 변해갔지만 아직도 철부지다. 그러면서 나무가 속으로 나이테를 그리듯 철이 들어 갔던 것이다. 그것이 ‘조화로움이다’.
자연의 식물들은 신기할 정도로 감탄하고 놀라고도 남을 정도로 조화롭다.
나뭇잎의 차례도 나뭇잎의 모양도 각도도 나뭇가지나 줄기의 굵기도 간격도 다 조화롭다. 자연은 그래서 섬세하다고 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줄기와 가지만 커졌지 그 속에 나이테가 없는 사람들에게 '철이 들 무렵...'이 있기나 한지? 라는 물음을 던지며 고개를 갸우뚱해 본다.
저 열대지방의 나무에는 나이테가 없다. 계절의 변화가 없이 늘 따뜻하니 여름에는 성장했다가 겨울이면 나뭇잎을 떨구어 내는 온대지방의 나무처럼 나이테가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다. 겨울이 다가오면 잎파리들을 떨구어 내고, 추위를 이겨내면서 한줄 나이테를 그리는 나무처럼 나를 버리고 남도 배려하게 될 때 비로소 ‘철 들 무렵’이라며 자신의 나이테를 돌이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만 내세우는 철부지 어른들은 마치 열대지방의 나무처럼 나이테가 없나보다. 오늘은 마음의 나이테 속에서 나의 '철 들 무렵의 나이테를 한 번 찾이보았다. 나도, 가정도, 나라도 조화로운 모습으로 변모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나무의 나이테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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