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숲 정상에서면 우주의 기운을 느낀다.
숲속을 걷는 사람들은 언제나  숲이 고맙고, 사랑스럽다.
인간들의 무관심속에 있는 나무들이 살아가는 곳이 자연이고,
나무와 나무 친구들만이사는곳 이 원시림이다.​
숲은 세로토닌의 보고다. 숲은 자연의 보고다. 숲은 새들의 천국이고 우리들의 낙원이다. 


숲을 든다.
요즘 사람들은 등산하러 간다고 한다. 
등산을 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산 정상까지 건강보다는 목표를 향해 등산을 한다.
그리고 정산에 서면 세찬 바람이 분다. 정상에 서면 다른 세상이 펼처진다.
어느 산이건  정상에 서면  풍광에 감탄을 한다. 정상에 서있는 나무는 다른 나무와 달리 보인다.
어느 산이건 정상에 서면 산들이 강물처럼 흐르는 듯 하다. 하늘이 바다같고 바다가 하늘같다.
정상에 오르면 이 세상을  내가 다 품은 듯하다.
어느 산이건 정상에서면 우주의 기운을 느낀다. 나의 얼굴을 어루 만지는 우주의 기운이다.
우주의 기운은 그 기운을 느끼는 사람만이 안다. 그 기운은 언제나 나를 돕는기운이다.
하산을 하기전  우주의 기운을 만끽 느끼고 우주의 기운을 가슴에 가득 채우고 하산하기를 바란다.


등산 보다는 산을 오르거나 드는일을 산행을 하러 간다고 앞으로는 말을 바꾸는것이 좋을것 같다.
산행을 가면서 산 입구에 도달하면 등산을 하자는 얘기보다 산에 들자는 이야기가 맞는것 같다.
여하간 못 먹어 죽는 사람은 없어도 못 걸어 죽는 사람은 많다고 한다. 산을 찾는 모두가 건강하기를 바라는마음이며 산을 찾는 이들모두가 산행으로 튼튼한 발이고 다리이고 근육의 사람들이길 바란다.
숲속을 걷는 사람들은 언제나  숲이 고맙고, 사랑스럽다. 그런데 조금만 걸으면 대부분 숲의 위주 산행이 아니라  사람 위주의 산행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숲속을 들어 가면 나무야 어찌되던 짐승들이야 어떻게 살든말든  산행이 우선이다.
자기 위주고 자기 중심적이다.
엄청난 이기주이고, 엄청난 자기 중심적이다. 준법정신도 양심도없다. 숲을 배려하고 산짐승에 대한 배려는 전혀없다. 혹이나 다람쥐가 나타나면 다람쥐를 귀여워 하기 보다는 다람쥐를 잡으려는 시늉을 한다.
숲에 들어온 사람들을 맞이하는 새들은 사람들을 반기기 보다는 사람들이 버리거나 흘린 양심없는 행동에 청소하는 마음이다. 새들도 반가워서 지저기기보다는 자기들의 영역에 사람이라는 다른 동물이 나타 났으니 경계를 늦추지 말라는 경고를 이웃들에게 하고 있는듯 나무꾼은 그런 느낌일뿐이다.
우리들이 새들을 보고 다람쥐를 보고 산토끼를 만나 더라도 인간에게 무심한 짐승들에게 해줄수 있는가장 현명한 일이라면 서로가 무관심을 가지는일 무관심한척 하는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자연이 좋다고 한다. 원시림이 좋다고들 많이 이야기를 한다. 자연이 좋다 원시림이 좋다고 가보자고 한다. 
자연이 자연그대로 이고, 원시림이란 숲들의 세계이고 인간들의 의지나 생각이 개입되지 않은 것을 말한다.
그야 말로 인간들의 무관심속에 있는 나무들이 살아가는 곳이 자연이고, 나무와 나무 친구들만이사는곳 이 원시림이다. 그런 자연을 그런 원시림을 나무들도, 산 짐승들도  제일 좋아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또한 산속에 사람들이 새집을 새가 아닌 사람이 달아주거나 지어줄  이유도 명분도 없다. 이는 부자에게 복지 해 주겠다는 보편적 복지를 이야기 하는 정신 나간 기사를 쓰는  사람들 이야기 같기도 하다. 
새들이 지붕있는 새집을 원한적도 없다. 오로지 간섭이 없는것이 도움을 주는 일이다. 야생이란 야성이란 것을 잃어버린것이 자연의 짐승들이라 할수 없다. 사람들은 자꾸만 이상한 짓을  자꾸만 한다.
새 뿐이 겠는가?
야성을 잃은 가축이나 애완견은 사람들이 만들어 주는 음식과  집에서 살수는 있지만 야생 조류들과 동물들의 생리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까치는 집을 짓기 위해 2500번정도의 나뭇가지를 물어 올려 집을 짓는다고 하지 않는가?  둥지를 보라 나무판자 집이 아니다. 흙이 있고, 잔가지도 있고, 털도 있고, 마른 이끼도 있고, 마른 풀도 있다. 알을 부화하기 좋은 환경을 잘 만드는 일은 우리가 배울일이다. 새 등의 둥지는 꼭 필요한 크기로 꼭 필요한 모양으로 쓰임에 조금도 이탈하지 않는다.  필요도 없는 구조물로 모양내고 색을 내는일도 없다. 자연식으로 자연을 닮은  그대로이다. 사람들만 똥폼을 잡으며 으시되며 사는듯하다.
자연의 짐승들은 그야말로 상징성은 없어도 순수하고 아름답기는 인간기술 잔꾀로는  따라 갈수가 없다.
왜냐하면 아름답게 보이려고 집을 짓는 새도 없고, 사람들이 지어주는 새집을  고마워할 새들도 없다.
 굳이 새들을 사랑해서 새집을 지어 준다면 1~2월 적어도 3월안에 달아 주기라도 하라  그리고 새들이 알을 낳고 부화하고 하는 시기는 주로 4월 5월이다. 그리고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높이4~5미터면 더 좋을듯도 하다.
 사람들이 걱정 안해도 산짐승들은  스스로 잘 만들고 잘 건축한다. 새집의 구조와 새집을 짓는 방식을 음미하고 관찰하여 보라  인간들 처럼 호화 주택도 아니고 필요 이상의 크기도 절대 짓지 않는다.
 인간들이 잘못 자연을 이해하고  자연의 짐승들을 얕보는 과잉 판단일뿐이다. 이것이 불통이다.
숲과 불통, 새들과 불통, 산짐승들과 불통이고 오해고 오류이다.
동물의 세계가 재미있고 자연의 이야기가 참 재미 있다고 하는것은 참 자연을 모른다는 이야기와  참 동물의 세계를 모른다는 이야기 일 것 같다.  숲을 들며 작은 포켙 책이라도 한권 손에 쥐고 쉬면서 보고  보면서 느끼고 배워보자  숲은 세로토닌의 보고다. 숲은 자연의 보고다. 숲은 새들의 천국이고 우리들의 낙원이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나무 뿌리와 물

식물의 동물과 차이점

자연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