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소록
양화소록
오늘은 나의 생각이 아닌 양화소록이란 책 내용을소개하는 마음으로 옮겨 봅니다.
10여년전부터 선비의 기상을 이야기하며 양화소록에 나오는 석창포를 키우면서 앞날 조경의 한부분을 키워 보려 애를 쓴지 10여년 그동안 지인과 친구와 함게 석창포를 키우면서 석창포의 매력에 한동안 빠저 선물도 해보고 열심히 정성을 다하고 메모를 하면서 여러 방법으로 석창포를 키워 보았지만 상품으로 만들어 내기도 힘이들었고 식물의 생리를 아직도 제대로 모르는나무꾼으로서는 연민만 남긴채 접기로 한기억이 어제일 같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양화소록 내용이 있어 블로그 이웃님들에게 우리의 선조들이작성한 최초의 원예서를 소개해 봄니다 당시에도 겨울 온실을 만들어 이용을 하였고, 농사법을 기록하든 우리 선조들의 600년전 지혜를 강희안의 내용을 옮기는것으로 갈음 하고자 합니다 .
요약
우리나라 최초의 원예서로 알려진 『양화소록』
단순한 원예서를 지나 수신과 치국의 책이다.
자연을 보되 인간처럼 보고 인간을 보되 자연처럼 보는 것이었습니다
강희안(姜希顔)은 시·그림·글씨에 뛰어나 세종 때의안견·최경 등과 더불어 3절(三絶)이라 불렸다.
이 책의 탄생은 가을날 마지막 서리를 맞고 피는 국화처럼 더디었습니다.
시서화(詩書畵)에 모두 뛰어난 당대의 삼절(三絶)이었던 사람이 자신의 흔적을 세상에 나타내기 꺼린 것을 그의 아우가 문집 진산세고(晉山世稿)의 일부로 수록하여 전하여진,것이다. 본인이 살아 있었다면 도(道)의 찌꺼기를 남겼다고 꾸중 들을 것이었습니다.
양화소록(養花小錄)의 저자(著者)인 강희안(姜希顔)은 우리와는 600년이나 먼 고인(古人)입니다. 그는 세종(世宗)때 주로 관직에 나간 사람이었지만 왕의 처조카였기에 더욱 몸을 굽혀 오히려 뛰어난 재능을 숨기고 한직(閒職)에 머물렀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원예서로 알려진 『양화소록』은 강희안이 직접 화초를 키우면서 알게 된 화초의 특성과 재배법 등을 자세하게 기록한 책이다. 17종의 꽃과 나무, 그리고 괴석과 이를 기를 때 주의해야 할 일곱 가지 항목 등으로 구성됐다.
책이 국내 최고(最古)의 원예서라는 점 못지않게 눈길을 끄는 것은 꽃과 나무의 품격과 상징성을 서술하면서 자연의 이치와 천하를 다스리는 사회사상의 뜻도 함께 담아냈다는 점이다. 그는 이 책에서 지각도 운동능력도 없는 풀 한포기의 미물이라도 그 풀의 본성을 잘 살피고 그 방법대로 키운다면 자연스레 꽃이 피어난다는 내용은 단순한 원예서를 지나 수신과 치국의 책이다.
그러다 세조(世祖)치세에 들어서 실의(失意)한 까닭인지 꽃가꾸기에만 열중하다 48세의 나이로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한국 최고(最古)의 원예서는 그의 졸년(卒年)인 1465년 이전에 쓰여 진 것으로 짐작됩니다.
동생인 강희맹이 쓴 서문에는 “큰 덕을 지닌 선비가 암군(暗君)의 시대에 때를 만나지 못하면 도(道)를 마음에 담아 둘 뿐 펼치지 못하여 교화는 자신의 집안으로만 그치고 넓혀지지 못한다....... 그러므로 작은 일, 꽃 가꾸는 정원 일에 의탁하여 전체대용(全體大用)의 신묘함을 담는다. 이것은 선비의 불행이기는 하지만 작은 일을 단서로 하여 큰일을 본보기로 삼는 것이다.” 라고 안타까워하면서, 강희안이 세상을 떠난 지 9년 후인 어느 봄날, 아직 끈이 묶이지 않은 책 진산세고를 손에 들고, 가꾸지 않아 잡초가 우거지고 꽃과 나무가 망가져버린 그의 정원을 찾아 배회하며 고인에 대한 그리움과 존경으로 복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였습니다.
강희안의 그림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
강희안(姜希顔)은 시·그림·글씨에 뛰어나 세종 때의
안견·최경 등과 더불어 3절(三絶)이라 불렸다.
본문은 모두 매(梅), 난(蘭), 국(菊), 죽(竹) 사군자(四君子)를 포함하여 16종의 꽃과 나무, 괴석에 대한 특성과 재배법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모두 자신이 손수 화초와 나무를 키우면서 알게 된 경험을 기초로 옛사람의 기록을 폭넓게 인용하고, 식물의 품격을 논한 시와 문장을 추가하여 격조 있는 심경(心境)의 세계를 묘사하였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양생법(養生法)을 강조하여, 은둔(隱遁)하여 있든 출사(出仕)하여 뜻을 펼치든, 다투지 않는 심불경(心不競)의 마음을 간직하기 위해 그는 꽃을 키우는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의 미물이라도 각각 그 이치를 탐구하여 그 근원으로 들어가면 그 지식이 두루 미치지 않음이 없고 마음을 꿰뚫지 못하는 것이 없으니, 나의 마음은 자연스럽게 사물과 분리되지 않고 만물의 겉모습에 구애받지 않게 된다.......”
그러나 몸과 마음을 이렇게 온전히 보존하더라도, 암군주(暗君主)의 시대이든 암민주(暗民主)의 시대에 세상을 생각할 때 마음이 어지럽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꽃들의 이름과 품종에 대해 잘 몰라 이름을 바꾸어 부르거나, 그 이름을 불러 주지 못한다. 이렇게 같고 다름을 구별하지 못하고 참과 거짓이 서로 뒤섞이니, 어찌 꽃의 이름뿐이겠는가. 세상일이 모두 이와 같다.”
강희안의 양생법은 자연을 보되 인간처럼 보고 인간을 보되 자연처럼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양화소록 속에는 꽃과 인간이 다르지 않음을 은연(隱然)히 말하고 있습니다.
천여 종의 신품종을 개발하여 원예의 마술사라고 하는 캘리포니아의 산타 로사(Santa Rosa)에 살았던 루터 버뱅크(Luther Burbank)는 그의 수필집 ‘인간이라는 식물 기르기Training of the Human Plant, the Century Co., 1907’ 에서, 부모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에게는 교과서에 실린 지식을 강요하는 것보다 건강한 정신을 갖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식 습득을 강요하는 것은 어린이들의 자발적인 행위, 즉 노는 것을 잃게 한다. 어린이들은 고통을 통해서가 아니라, 기쁨을 통해서 배워야 한다. 어린이들이 후일 살아가는 데 있어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놀이라든가 자연과의 유대를 통해 얻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이 버뱅크의 수필집을 양아소록(養兒小錄)이라고 부릅니다. 강희안과 버뱅크는 나란히 서서 똑같은 말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부모가 같이 놀아 주며 아이(꽃)의 이름을 불러 주는 시간을 많이 가지라는 충고 일 것입니다. 아이들과 같이 산과 들을 다니며 꽃과 나무의 이름을 같이 불러 주어 그 존재감이 충만 된다면, 그 못된 기 살리기 과외 공부를 하지 않아도 아이는 훌륭한 인간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오늘은 나의 생각이 아닌 양화소록이란 책 내용을소개하는 마음으로 옮겨 봅니다.
10여년전부터 선비의 기상을 이야기하며 양화소록에 나오는 석창포를 키우면서 앞날 조경의 한부분을 키워 보려 애를 쓴지 10여년 그동안 지인과 친구와 함게 석창포를 키우면서 석창포의 매력에 한동안 빠저 선물도 해보고 열심히 정성을 다하고 메모를 하면서 여러 방법으로 석창포를 키워 보았지만 상품으로 만들어 내기도 힘이들었고 식물의 생리를 아직도 제대로 모르는나무꾼으로서는 연민만 남긴채 접기로 한기억이 어제일 같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양화소록 내용이 있어 블로그 이웃님들에게 우리의 선조들이작성한 최초의 원예서를 소개해 봄니다 당시에도 겨울 온실을 만들어 이용을 하였고, 농사법을 기록하든 우리 선조들의 600년전 지혜를 강희안의 내용을 옮기는것으로 갈음 하고자 합니다 .
요약
우리나라 최초의 원예서로 알려진 『양화소록』
단순한 원예서를 지나 수신과 치국의 책이다.
자연을 보되 인간처럼 보고 인간을 보되 자연처럼 보는 것이었습니다
강희안(姜希顔)은 시·그림·글씨에 뛰어나 세종 때의안견·최경 등과 더불어 3절(三絶)이라 불렸다.
이 책의 탄생은 가을날 마지막 서리를 맞고 피는 국화처럼 더디었습니다.
시서화(詩書畵)에 모두 뛰어난 당대의 삼절(三絶)이었던 사람이 자신의 흔적을 세상에 나타내기 꺼린 것을 그의 아우가 문집 진산세고(晉山世稿)의 일부로 수록하여 전하여진,것이다. 본인이 살아 있었다면 도(道)의 찌꺼기를 남겼다고 꾸중 들을 것이었습니다.
양화소록(養花小錄)의 저자(著者)인 강희안(姜希顔)은 우리와는 600년이나 먼 고인(古人)입니다. 그는 세종(世宗)때 주로 관직에 나간 사람이었지만 왕의 처조카였기에 더욱 몸을 굽혀 오히려 뛰어난 재능을 숨기고 한직(閒職)에 머물렀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원예서로 알려진 『양화소록』은 강희안이 직접 화초를 키우면서 알게 된 화초의 특성과 재배법 등을 자세하게 기록한 책이다. 17종의 꽃과 나무, 그리고 괴석과 이를 기를 때 주의해야 할 일곱 가지 항목 등으로 구성됐다.
책이 국내 최고(最古)의 원예서라는 점 못지않게 눈길을 끄는 것은 꽃과 나무의 품격과 상징성을 서술하면서 자연의 이치와 천하를 다스리는 사회사상의 뜻도 함께 담아냈다는 점이다. 그는 이 책에서 지각도 운동능력도 없는 풀 한포기의 미물이라도 그 풀의 본성을 잘 살피고 그 방법대로 키운다면 자연스레 꽃이 피어난다는 내용은 단순한 원예서를 지나 수신과 치국의 책이다.
그러다 세조(世祖)치세에 들어서 실의(失意)한 까닭인지 꽃가꾸기에만 열중하다 48세의 나이로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한국 최고(最古)의 원예서는 그의 졸년(卒年)인 1465년 이전에 쓰여 진 것으로 짐작됩니다.
동생인 강희맹이 쓴 서문에는 “큰 덕을 지닌 선비가 암군(暗君)의 시대에 때를 만나지 못하면 도(道)를 마음에 담아 둘 뿐 펼치지 못하여 교화는 자신의 집안으로만 그치고 넓혀지지 못한다....... 그러므로 작은 일, 꽃 가꾸는 정원 일에 의탁하여 전체대용(全體大用)의 신묘함을 담는다. 이것은 선비의 불행이기는 하지만 작은 일을 단서로 하여 큰일을 본보기로 삼는 것이다.” 라고 안타까워하면서, 강희안이 세상을 떠난 지 9년 후인 어느 봄날, 아직 끈이 묶이지 않은 책 진산세고를 손에 들고, 가꾸지 않아 잡초가 우거지고 꽃과 나무가 망가져버린 그의 정원을 찾아 배회하며 고인에 대한 그리움과 존경으로 복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였습니다.
강희안의 그림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
강희안(姜希顔)은 시·그림·글씨에 뛰어나 세종 때의
안견·최경 등과 더불어 3절(三絶)이라 불렸다.
본문은 모두 매(梅), 난(蘭), 국(菊), 죽(竹) 사군자(四君子)를 포함하여 16종의 꽃과 나무, 괴석에 대한 특성과 재배법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모두 자신이 손수 화초와 나무를 키우면서 알게 된 경험을 기초로 옛사람의 기록을 폭넓게 인용하고, 식물의 품격을 논한 시와 문장을 추가하여 격조 있는 심경(心境)의 세계를 묘사하였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양생법(養生法)을 강조하여, 은둔(隱遁)하여 있든 출사(出仕)하여 뜻을 펼치든, 다투지 않는 심불경(心不競)의 마음을 간직하기 위해 그는 꽃을 키우는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의 미물이라도 각각 그 이치를 탐구하여 그 근원으로 들어가면 그 지식이 두루 미치지 않음이 없고 마음을 꿰뚫지 못하는 것이 없으니, 나의 마음은 자연스럽게 사물과 분리되지 않고 만물의 겉모습에 구애받지 않게 된다.......”
그러나 몸과 마음을 이렇게 온전히 보존하더라도, 암군주(暗君主)의 시대이든 암민주(暗民主)의 시대에 세상을 생각할 때 마음이 어지럽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꽃들의 이름과 품종에 대해 잘 몰라 이름을 바꾸어 부르거나, 그 이름을 불러 주지 못한다. 이렇게 같고 다름을 구별하지 못하고 참과 거짓이 서로 뒤섞이니, 어찌 꽃의 이름뿐이겠는가. 세상일이 모두 이와 같다.”
강희안의 양생법은 자연을 보되 인간처럼 보고 인간을 보되 자연처럼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양화소록 속에는 꽃과 인간이 다르지 않음을 은연(隱然)히 말하고 있습니다.
천여 종의 신품종을 개발하여 원예의 마술사라고 하는 캘리포니아의 산타 로사(Santa Rosa)에 살았던 루터 버뱅크(Luther Burbank)는 그의 수필집 ‘인간이라는 식물 기르기Training of the Human Plant, the Century Co., 1907’ 에서, 부모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에게는 교과서에 실린 지식을 강요하는 것보다 건강한 정신을 갖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식 습득을 강요하는 것은 어린이들의 자발적인 행위, 즉 노는 것을 잃게 한다. 어린이들은 고통을 통해서가 아니라, 기쁨을 통해서 배워야 한다. 어린이들이 후일 살아가는 데 있어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놀이라든가 자연과의 유대를 통해 얻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이 버뱅크의 수필집을 양아소록(養兒小錄)이라고 부릅니다. 강희안과 버뱅크는 나란히 서서 똑같은 말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부모가 같이 놀아 주며 아이(꽃)의 이름을 불러 주는 시간을 많이 가지라는 충고 일 것입니다. 아이들과 같이 산과 들을 다니며 꽃과 나무의 이름을 같이 불러 주어 그 존재감이 충만 된다면, 그 못된 기 살리기 과외 공부를 하지 않아도 아이는 훌륭한 인간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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