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氣
나무의 氣
오늘 침 뉴스에 과일들에게 클레식 음악을 들려 주면 과일의 신선도가 10%이상 유지되며 이를 농업경영에 적용한다는 발표가 있었다.이 방송을 들어면서 나무꾼도 평소에 식물들도 보고, 듣고, 냄새맏고, 생각하고, 느끼고, 사랑하고 , 미워하고, 먹고, 배설하고, 동물의 일상이나 식물들의 일상이나 다를바가 없다는 생각한는 나무꾼이다. 나무는 지구 에너지를 감지하는 식물측정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생각 없는 생각을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또 한 생각은 나무는 하늘의 氣를 땅으로, 땅의 氣를 하늘로 흐르게 하는 힘 그 에너지로 사람들의 氣를 정화 시키고 강화시켜서 치료의 효과 까지 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이 높은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氣 또한 강한기가 낮은 기 쪽으로 흘러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나무의 氣는 사람의 氣로 본다면 정신영역에 해당되는듯하다. 나무꾼이 달리 이야기를 하자면 모든 사물이 서로 사랑하는 마음과 좋은 분위기와 경쾌한 환경이 되면 자율적으로 행동하며 조화와 균형을 갖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생물의 가장 중요한 삶은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과 지금 현실에서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인정 하는 것이 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할 때와 자신이 누구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느낄때 자신 스스로 몸의 균형이 깨어 진다는 것이다. 이때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도 진심으로자신을 사랑한다고 볼수도 없다. 자신이 자신이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이 자신을 괜찮은 사람으로 여기고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때 그는 진정 행복한 사람이라 하고 싶다.
나무들은 그런 삶을 살아가는것 같다.
오늘 아침 클레식 음악을 들을때 과일의 신선도가 10%이상 오래 유지 된다는 실험의 결과는 물질적이면서 氣를 담고 있는 인체와 자아를 담고 있는 그릇같은 우리들의 몸이다. 우리가 하나의 생명체로서 주변의 상관관계를 맺고 있기때문에 다른 생명체에도 직접 적으로 접촉할수 밖에 없다. 악기도 모두가 제각각 다르고 다른 소리를 내며 다양한 주파수를 가지고 존재한다. 동물도 식물도 무생물까지도 각각 자기의 주파수를 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사람이 내는 기본적인 주파수는 소나, 강아지가 내는 주파수, 심지어 내가 기르고 있는 벌이 내는 주파수와도 다르기 때문에 서로가 공감하고 공유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벌을 기르고 벌을 관찰하면서 신기한일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벌들은 자외선 내에서도 앞을 볼수가 있고, 수많은 나무와 꽃들에게 왕래를 정확하게 하는것을 보면 신기하기 이를때가 없다.
박쥐는 초음파를 들을수가 있어 날수가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면서도 사람과 다른 사물의 판별력 안에서도 벌과 박쥐는 인간을 지각하고 우리와도 교감을 나눌수가 있다. 식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무는 지구의 에너지를 감지도 하고 만들어 내기도 하는 에너지원 일것 같은 생각이다.
나무꾼의 눈으로 보는 동물과 식물이 다른 점이라면 식물은 자신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스스로 구하고 만들고 스스로 살아가지 않는가? 지구의 물과 태양 동물에게 불필요한 이산화탄소등으로 에너지를 만들어 쓰고 있지 않는가? 그리고 나무는 한번 태어난 곳을 스스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위험이 닥처와도 옆으로 위로 아래로 피할수도 없다. 빛이 가리면 빛을 찾아 가지가 자라려고 노력하고 이마저도 못하는 환경이면 나무도 아파하고 병들고 시들어 버린다. 동물들은 어떤가 식물들의 생명과 약육강식으로 저보다 약한 생명을 앗아가며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동물은 절대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지 못한다 남의 생명과 남의 에너지를 빌어서 간신히 살아가는 것이다.
그정도의 수고도 않는 인간들은 노력 없이 남을 헐뜯고 남에게 폭력과 사기까지 친다. 대표적인 것이 방송 인듯하다. 나라가 망해도 이슈만 된다면 듣고 싶어하는 이의 귀는 생각도 않고 계속 한 이야기를 수십번 수백번 계속 떠덜어 된다. 그런 나쁜 방송국은 누가 그리도 많이 만들어 놓았는지 왜 그리 많아야 하는지 많은많은 방송국이 좋은 뉴스 격려의 뉴스를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긍정적인 좋은 이야기는 한 두번이면 그만이다. 긍정적이고 좋은 이야기를 그리 많이 방송한다면 누가 뭐랄 것인가?
나무는 평생을 남을 위해 살고 인간은 평생을 자기만을 위해 살아 가는 것 같아 씁쓸할 때가 있다. 이 세상에 성인은 종교의 수장이 아니라 나무를 사랑하고 나무를 많이 심는 사람 인듯 하기도 하다. 누가 알아줄 사람은 없지만 스스로의 몫에 만족하며 나무의 좋은 물질을 만인에게 배푸는 삶이 성직자 이상의 삶이 아닐까 생각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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