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함께
자연과의 함께
자연과 한마음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가 살든 고향은 시골 이였다. 지난날 에는 누구나 시골사람이었으니 누구나 시골 일을 다 알았다. 오늘날에는 누구나 도시사람이기에 누구나 시골 일을 다들 잘모르는 듯하다. 웃지못할 일로 쌀나무는 어떻게 생겼냐는 서울토박이 동년배의 질문에 어이가 없는 적도 있다. 나로서는 氣가 막히는 일이다. 앞으로는 이런 어린이 청년, 어른들이 더 많이 만들어 질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친환경적 채소 곡물을 이야기 하자면 화부터 날 것이다.
‘자연농· 유기농· 친환경·’ 같은 말조차 모르는 시골사람이 많고, 도시에서 생협 회원이면서 시골 일을 스스로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농사법이 저마다 어떻게 다른가를 찬찬히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식물의 다양성 동물의 다양성을 언제 이야기 하였지만 다양한 풀들과 작은 동물이 동시대에 살아야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다. 우리가 기르는 채소가 동시에 살지 않는다면 우리의 건강과 생명의 보전에도 문제다. 많은 식물들이 반년 안에 죽고 그 시체가 다음 생명의 무대가 되는 것이다. 봄에 싹을 낸 풀이 자라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고 어미가(본체) 죽으면 미생뮬에 의하여 분해되고 지금까지 세상에 없었던 또다른 성분을 만들어 더욱 풍요로워 지는 자연이 되기 때문이다.
언젠가 블로그에서 산에 들어가먼 우리의 몸속 폐가 먼저 안다고 했다.
그렇듯이 포도밭이나 능금밭에 농약을 얼마나 많이 뿌리는지 사람들은 얼마나 아는지?
배밭이나 딸기밭에도 농약을 얼마나 많이 치는지 사람들은 얼마나 아는지?
이런 말이 있다 ‘가장 값싼 쌀’은 농약을 가장 많이 친 쌀이다.
가장 비싼 쌀은 농약을 치지 않은 쌀이다. 농약을 덜 칠수록 쌀은 값이 비싸다고 하고, 농약을 하나도 안 치고 유기농으로 지은 쌀은 값이 더 비싸다고 하며, 유기농조차 아닌 자연농으로 지은 쌀은 값이 가장 비싸다고 한다. 왜 그러할까? 사람이 좋아하는채소 나뭇잎 벌레도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좋은 것은 우리보다 후각이 감촉이 좋은 벌레들이 먼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농약도 비료도, 또 ‘유기질’이라고 하는 거름조차 사람 몸에는 ‘안 좋은’ 줄 도시 소비자 또한 스스로의 몸들이 잘 알기 때문이다. 지식으로는 아직 잘 몰라도 ‘몸은 먼저’ 알기 때문이다. 이제는 시골에서도 몸에 좋지않은 유독성 농약은 대부분 사용하지 않으니 고마운 일이다.
꽃이 피고 나비와 잠자리가 춤추는 논밭에서, 부드럽고 맑게 퍼져가는 공기속에서 하늘 아래 바람이 스치고 물결이 빛나는 해변에서, 녹색으로, 노랑색으로 붉은 색깔을 바꿔 가며 물 드는 수풀과 숲에서, 생명 있는 것으로서 대답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즐겁고도 기쁜 나날을 보내고 싶은 것이다. 우리들은 해충과 익충을 구별하는 것을 잘 알지 못하여 전체인 자연계의 존재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시골에 살고 있어도 우주를 얻지 못하고 자연을 얻지 못하면 진정한 평안과 평화에 다다를 수 없다. 또한 도회지의 소비자와 시골의 생산자는 일체의 존재다 예부터 시골사람은 누구나 풀을 아꼈다. 예부터 시골에는 ‘잡초’가 없었다. 도시가 생기고 도시 문명이 퍼지면서 ‘잡초’라고 하는 뜬금없는 말이 불쑥 나왔다고한다.
옛날 시골에서는 언제나 그냥 ‘풀’이었다. 소나 돼지나 염소나 토끼나 닭은 풀을 뜯어먹는다.
소나 염소나 토끼는 풀이 주식이다. 집짐승뿐 아니라 숲 짐승도 풀을 뜯어먹는다. 봄여름 가을겨울 언제나 풀이 주요 먹이였다. 숲이 다양하고 숲이 잘 보존 되었다면 산짐승이 구태어 인간이 사는 곳 마저 넘보지 않을 일이다. 옛날 할머니가 들려주던 호랑이얘기가 생각난다.
시골이 무너지면 도시가 함께 무너진다는 것을 모두 생각하지 않는다. 시골이 망가지면 시골만 못사는 줄 도시민들이 착각하고 있다. 도시가 무너진대서 시골이 무너질 일은 없지만, 시골이 무너지만 도시는 살아남을 길이 없다. 사람이 먹을 온갖 곡식이랑 풋성귀랑 열매를 짓는 시골이 무너져서 사라지면 정말 도시는 어떻게 될까?
요즘 국정교과서가 문제나 현재 교육 문제도 차라리 70년대 교육 방법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을 듯하다는 생각이다. 아니 그것이 좋다고 확신하고 싶다. 선조들을 폄하하지 못해 안달하는 내용이 그렇고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 개발이 아니라 타고나지 않은, 하고 싶지 않은, 학업을 계속한다는 것이 시간 낭비라 생각이 되어 지기 때문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내용을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배우고 전문학을 공부하는게 개인이나 국가적으로 좋을 듯하다.
사람 사는 환경에 사람에 제도가 동조가 아닌 동떨어진 삶 같다, 환경도 자연도 동조해야 하는데 결국은 제도에 묶여 편리교에 묶여 아름다움에 멋스러움에 도취되어 보기 좋고 멋진 것만 찾는다.
그러면 자연과 동조하면서 함게 그리 살아 갈수는 없을까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살맛나는 행동과 맛으로 살아 간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잘나서 잘해서 즐겁고 재미 있는 줄 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대단하고 최고의 존재인줄로 착각하며 살아간다.
자연이 그대를 사랑하고 보살피는 것을 당신은 아는가?
자연의 마음을 그대는 어루 만저 보았는가?
자연의 미소를 그대는 맛보았는까?
우리가 자연의 세계로 들어갈 때 자연은 나를 얼마나 반겨줄까?
우리가 자연의 세계로 들어간다면 나의 탐욕에 자연은 얼마나 힘이들까?
간단하다
인간의 세계로 들어온 동물들의 삶은 누구를 위하여 살아야할까?
인간의 세계로 들어온 소, 돼지 닭이 얼마나 행복할까?
인간의 셰계로 들어온 야생 조류는 얼마나 행복할까?
소는 송아지가 태어나 어미소 젖을 먹고 어느 정도 자라면 코뚜레 부터한다.
마취가 먼저 있다면 그나마 다행인데, 비용 관계로 무시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초원에서 자기네끼리 살아간다면 그리 혹한 위험은 없을 것이다.
돼지도 마찬가지다 태어 나자마자 위아래 턱의 송곳니 여덟 개가 절단되고 꼬리도 잘린다고 한다. 마취가 먼저 있다면 그나마 다행인데, 알고 보니 돼지들에게도 못할 짓을 한다.
시민단체의 지적에 대해 과학축산은 어금니로 어미의 젖꼭지를 물어 상처 내는 걸 방지해야 하고 철분이나 영양이 부족한 새끼들이 장차 서로 꼬리를 물어 상처를 남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한다. 풀밭에 방목하는 가축에게는 불필요한 일이다. 외국 넓은 들판에서 방목되는 소들이 양들이 부럽기만하다. 자연과 함께 하는이야기를 하려면 끝이 없을 것이다.
내가 사는곳에서 지금 풀한포기 나무한그루 아끼고 사랑하고 자연이 싫어하는 쓰레기를 적게 만드는 것이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인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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