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도 행동한다.
나무도 행동한다.
나무꾼의 생각 없는 생각이다.
겨울나무의 아침 햇살을 나무는 밤새 얼마나 기다렸을까?
나무는 인간에 대한 수많은 데이터를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
인간은 나무에 대한 빅 데이터를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
아니 인간들이 나무에 대한 빅 데이터를 얼마나 아는지 묻고 싶다.
겨울 아침 햇살이 찾아 들기전 미소로 희망을 노래하는 나무다.
인간과 나무는 서로 말은 안해도 거대한 생각의 연결망을 가지고 있다.
그 연결망은 바로 내가 나무를 아는것이고 내가 우리가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다.
아니 생각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알고 사랑하고 느끼는 우리는 행동하는 만큼의 연결고리이다.
인간과 나무의 연결도 인간이 가지고 있는 데이트와 나무가 가지고 있는 인간의 데이터가 연결고리다.
잘못생각하여 생물적 관점으로 보면 허상 일수도 있다.
우리가 나무와의 연결 고리가 없는 듯 모르고 살아온 지금까지의 무지함과 생각 없이사는 행동에 문제를 풀어야 한다.
과학과 예술은 참으로 인류 사회에 대단한 가치가 있는 것 같지만 자연보다 낫지도 나을 것도 없다는 말을 하고 싶다.
자연의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보다 잘나지도 않았고 잘난 것도 없다. 자연에서 나무에서 조금도 벗어 나지를 못한다.
삶이란는 것이 나무와 인간의 관계 속에, 우주적 근원과 자연적 재료와 아름다움을 생명에 부여하는 자연적 관계 속에 수많은 생물들이 도움 받는지도 모르고 도움을 서로 공유하고 사는지 조차도 모르고 무지한 삶을 지금 이순간도 도움을 받으며 살고 공유하는 법을 배우는것도 모르며 배우며사는 것이다.
우리는 나무가 부르는 행복한노래 자연이 부르는 행복한 생명의 노래를 떠나서 살 수 없다.
이 행복한 나무의 춤과 노래가 이 행복한 자연의 음악이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한다.
우리의 윤리는 생명 윤리적 속함의 윤리여야 한다. 외냐하면 생명을 가진 생물들은 질서가 있다. 신선한 경쟁이 있다. 생물들은 생각이 있고 에너지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위가 온 세상의 생물 그물망을 끊고 멋대로 연결하고 마모시키는 현실의 세계는 윤리적 도덕적으로 더더욱 긴박한 자연의 나무들의 아픔이고 경고이고 명령이다.
따라서 자연의 위대한 연결자인 나무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은 관계 속에, 근원과 재료와 아름다움을 생명에 부여하는 관계 속에 깃드는 자연의 조물주의 사랑과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모든 자연 현상이 지혜롭고 슬기롭고 아름답고 정당하고 좋은것과는 별개의 생각과 별개의 문제이다.
나무는 지혜롭고 영리하고 똑똑하고 자유롭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것이며 늘 나누는 도움과 배려하고 봉사하는 삶 그러면서도 한시도 쉬지 않고 창조하고 나누며 사랑하고 함께하는 돕는 이해하는 삶이다. 나무에게 인간이 배우일이다.
나무는 인간에게 고마울 것도 없으니 배당금을 지급할 이유도 없지만 배당금 이상을 그대 그때 신선한 공기로, 깨끗한 산소로, 음이온으로, 피톤치드로, 테르펜로, 세로토닌으로 목재로, 꿀로, 가구재로 공예품으로지급하고 있다.
단지 인간들이 나무의 은혜를 받으면서도 받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문제다. 이럴테면
맑은 공기로 숨을 호흡을 하면서도 숨 쉬는 맑은 공기에 아무도 관심이 없다.
그런데 몇 일전 미세먼, 초미세먼지가 나쁨, 매우 나쁨의 일기공지에는 모두가 맑은 공기를 마시기 위해 마스크를 사서 쓰고 좋은 공기를 마시려는 맑은 공기로 숨쉬려는 사람들의 생명의 건강의 소중함에 환경을 탓만한다. 환경의 탓은 하면서도 곧 닥아 올 봄에 나무 한주 더 심을 생각은 무지한 탓인지 양심 없는 탓인지 자연의 고마움을 알면서 모르는체 하는 것인지 아에 생각이 없다. 아니 몰라서 생각을 하지 못한 것 같다.
이럴 때 그 잘난 척하고 많이 사회정의의 사자 같이 행동하는 언론 방송 기자들은 무엇을 하는지 사명감은 그만두고라도 양심도 체면도 지식도 지혜도 없이 얼굴 두껍게 사는 그들이 원망스럽다. 얼마나 좋은 기사 꺼리인가?
여하간 식물들의 고마움 식물들의 하는 일에는 많은 인간 들이 아무른 생각도 아무도 관심이 없는 듯하다.
자연과 나무는 배당금을 산출하여 돌려 달라고 하지도 않는다.
모든 종의 경제가 전부 자연 안에 담겨 있는데도 말이다.
자연은 좋은 집이 필요 없다. 자연이 곧 집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연이 나무란 것의 생각이 결핍되어 있는 것 같다.
이 아름답고 사랑스런 자연을 자각하지 못할 때조차 우리는 자연에서 살고 있다.
인간이 이 자연 세상에 속해 있음을 이해하면, 모든 생물들의 생명의 존엄성을 생각해야 옳은일이다.
날씨가 영하이고 차량의 매연이 괴롭드라도 나무는 당당히 서서 좋은 봄이 온다는 희망 하나로 버띠고 서있다.
영하의 날씨로 살을 애이는 추위와 아픔을견디고 영하의 추위에도 거적하나 걸치지 않고 참고 인내하며 침묵한다.
북풍에 밀려 흘러가는 구름을 보면서 나무는 무엇을 생각할까? 가슴펴고 햇살을 맞으며 침묵으로 날아오는 새한마리의 치구를 기다리는 듯하다. 새가 노래하는 무대가 되어주고, 하늘에 오선지가 되어주는 나무,
나무랄데 없는 나무가 오늘따라 더 없이 고맙고 존귀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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