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도 잠을 잔다
식물도 잠을 잔다
앞으로 별도 요약 대신 다 읽기 힘드신 분을 위해 중요한 부분만 빨간색으로 쓰겠습니다 바쁘신분은 빨간색글을 요약글로 생각하시고 읽어 주시기 바람니다
귀하는 식물들이 식물 중에서도 나무들이 잠을 자는 것을 보신 분은 있으신지요?
누구나 집에서 밭에서 꽃나무나 식물들을 한두 포기 기르지 않아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집안에서 키우던 식물들 잎이 누렇게 변하거나, 뿌리가 썩어 죽어버리는 경우도 한번 쯤은 경험을 하였을 것이다.
이런 현상은 식물이 살 수 있는 환경의 문제가 있다는 증거다. 생장 조건의 일부가 잘 맞지 않거나 관심을 주지 못해서 물을 주지 못하였거나 병충해로 인하여 그럴 수 있다.
우리 몸도일을 하고 쉬어야 하고, 양분을 섭취하면 소화되고 배설하고, 밤이 되면 잠을 자야 한다. 기본적 생활 패턴이고 일상 생활습관이다. 나무들도 마찬가지다 사람처럼 동물처럼 열심히먹고, 일하고, 영양분을 생산하고, 쉬기도하고 자기도해야한다.
언제나 생물도 몸이 필요한 영양소가 부족하게 되면 그 증상이 피로로 나타나듯이, 식물도 여러 생장 조건 중에서 필요한 영양분이 하나라도 부족하게 된다면 말못하는 식물은 손짓, 발짓 못하고 색으로 또는 처짐 현상으로 변화로 우리에게 애원하고 치료하여 주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모든 생물은 말그대로 살아 있다는 것이다. 식물이 건강하게 자라려면 생장 조건으로 해당하는 것으로는 영양과 온도와 햇볕과 물과 약간의 바람도 필요하다. 결국 식물들의 건강한 삶의 조건들은 영양과 햇볕과, 온도와 물이다. 약간의 바람에서 조금씩 통풍의 차이로 건강의 정도를 보일 수도 있다.
과학자들은 빛의 파장에 따라 생리적 활동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것을 그래프로 나타낸 것을 작용스펙트럼이라고 한다. 빛을 프리즘에 통과시켜 보면 빨,주,노,초,파,남,보로 나뉘는 것을 알 수 있다. 빨간색으로 갈수록 파장이 길고 파란색으로 갈수록 파장이 짧다. 식물은 광합성 하는데 햇빛은 절대 필요하다.
그럼 햇빛 중에서 어느 파장의 빛이 광합성하기에 가장 좋을까? 스펙트럼을 처음으로 실험한 사람이 엥겔만이다
엥겔만은 프리즘을 사용해서 햇빛을 무지개 빛으로 분산시켜 수생 조류에 비추었다. 여기에 호산소 세균군집을 집어넣었다. 호 산소 세균은 산소가 많이 발생한 곳으로 모이게 된다. 광합성 작용에는 산소가 생성이 되고 광합성을 활발히 한 조류에는 산소가 자연적으로 많이 발생한다. 그것을 통해 어느 파장의 빛을 비춘 조류가 광합성을 많이 했는가를 연구하고 알 수 있다.
식물이 광합성을 하는 엽록소가 광합성을 많이 하려면 650-680nm의 빨간색 빛과 430-460nm의 보라-파란색 빛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한다. 이를 통해 빨강과 보라-파랑색의 빛이 광합성에 주로 쓰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들이 궁금해 하는 녹색식물 푸른잎 식물은 초록색이다. 식물의 잎이 초록색을 반사하기 때문이다.
반사하는 색 물체가 반사한 빛이 우리 눈에 들어와 보이는 것이다. 식물들은 광합성 하는데 빨강색, 보라-파랑색의 빛을 사용한다. 광합성을 하기 위해서 보라-파랑색의 빛을 흡수하는 것이다. 녹색은 반사하기 때문에 식물이 초록색으로 보이게 된다.
이세상에는 모든 식물은 빛의 광합성 작용으로 영양분을 만들어 내며 그 영양분을 에너지로 사용한다.
그 영양분이 새로운 잎이나 줄기 등 조직을 만들어 내는데 사용하며, 이사용이 남는 경우에는 당분(탄수화물)으로 조직내에 보관을 한다.
이렇게 식물은 광합성 작용에 의하여 만들어진 당분 즉, 영양분이 식물이 생장하는 에너지 인것이다.
식물은 영양분인 당분을 생산하기 위하여 광합성을 하는데 전반적으로 잎속의 엽록소가 있어 이 엽록소가 당분을 합성하여 에너지로 사용하기 때문에 식물들은 근본적으로 광합성을 많이 하기 위하여 잎을 환경에 맞게 적응시켜 나간다.
이렇게 식물은 광합성 작용에 의하여 만들어진 당분 즉, 영양분이 식물이 생장하는 에너지 인것이다.
식물은 영양분인 당분을 생산하기 위하여 광합성을 하는데 전반적으로 잎속의 엽록소가 있어 이 엽록소가 당분을 합성하여 에너지로 사용하기 때문에 식물들은 근본적으로 광합성을 많이 하기 위하여 잎을 환경에 맞게 적응시켜 나간다.
봄에 새로운 싹을 튀울때 환경이 비교적 밝으면 신아의 끝이 뾰족하거나 예리하게 나오는 것을 볼수 있다.
이 또한 자연의 신비함이다. 신아가 처음 지표면으로 나오면서 강한 빛이 있게 되면 이에 적응하기 위하여 잎끝을 뾰족하게 스스로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얼마나 신기한가? 이는 신아 스스로가 빛을 적게 받고 또한 강한 빛에 동반되어 오는 열로 부터 피해를 줄이기 위하여 자신의 모양을 바꾸어서라도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다. 그러면 신아를 인위적으로 잎끝을 넓게하고 둥글게 하는 방법은 아마 말씀드리지 않아도 아시는 분은 이미 알 것이다. 이른 봄 처음 신아가 흙을 뚫고 나올 때 주변을 다소 어둡게 하면 신아가 원활한 성장을 하기위한 조건으로 적극적인 광합성과 불가분의 관계인 빛을 많이 받아들이기 위하여 잎끝이 둥글어지게 된다.
어둡게 하는 것이 나무의 잎과 둥근 잎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이라고 보시면 된다.
하지만 이처럼 새싹이 출아하고 난 이후에도 계속 어둡게 관리하면 처음에는 잎이 의도 한대로 둥글게 나오지만 여름에는 잎이 쭉늘어져 도장된 상태로 변하게 되고 나중에는 버드나무 처럼 축 늘어져 관상성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적당한 시기에 광량을 많이주어 잎 속의 엽록소를 많이 형성될수 있도록 조치를 하여야 한다.
그래서 이 빛을 줄이는 시기와 빛을 주는 시기의 조절이 필요하다. 밤과 낮의 필요성이다. 이는 지역이나 위도상의 분포 위치에 따라 미세한 차이가 있으므로 일률적으로 설명하기는 곤란하지만 이를 파악하기전 양엽과 음엽이라는 이 두 개념을 이해하셔야 하지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먼저 양지 있는 양엽의 난의 잎은 높은 광도에서 광합성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하여 환경에 적응하여 광포화점이 높고 엽록소의 조직들이 조밀하게 되어 있으며, 증산작용을 줄이기 위하여 큐티쿨라층 과 잎의 두께가 두껍게 형성된다.
그래서 적당한 시기에 광량을 많이주어 잎 속의 엽록소를 많이 형성될수 있도록 조치를 하여야 한다.
그래서 이 빛을 줄이는 시기와 빛을 주는 시기의 조절이 필요하다. 밤과 낮의 필요성이다. 이는 지역이나 위도상의 분포 위치에 따라 미세한 차이가 있으므로 일률적으로 설명하기는 곤란하지만 이를 파악하기전 양엽과 음엽이라는 이 두 개념을 이해하셔야 하지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먼저 양지 있는 양엽의 난의 잎은 높은 광도에서 광합성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하여 환경에 적응하여 광포화점이 높고 엽록소의 조직들이 조밀하게 되어 있으며, 증산작용을 줄이기 위하여 큐티쿨라층 과 잎의 두께가 두껍게 형성된다.
그러면 이제는 채광을 하는 시간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여 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빛과 관련하여 소홀히 할수 없는 것이 비료의 양과 물의 투여량이다. 증산작용의 량과 분내 수분의 증발량, 광합성의 양과 비례하여 적절한 비료의 양과 물의 투여량을 맞추어 주어야 한다는 것을 간과 하시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면 이제는 채광을 하는 시간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여 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빛과 관련하여 소홀히 할수 없는 것이 비료의 양과 물의 투여량이다. 증산작용의 량과 분내 수분의 증발량, 광합성의 양과 비례하여 적절한 비료의 양과 물의 투여량을 맞추어 주어야 한다는 것을 간과 하시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아무런 비판이나 의심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 왔던 진화론적 결과들이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창조론적 입장에서 자연계를 보아야한다. 그 예로 지구상 생물의 80퍼센트를 차지하는 식물을 살펴보자. 우리는 자연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지금까지 우리는 모든 자연을 특히 식물을 진화론적인 측면에서 생각하고 연구하고 보아왔다. 즉 모든 식물은 우연에 의해서 생겨났으며, 적응과 돌연변이, 그리고 자연도태와 양육강식에 의한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보아왔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근본은 실용주의적 혹은 이기주의적(egoism), 그리고 자기 보존적인 것이며, 자연을 인간중심적으로 보는 관점이다. 이에 비하여 창조론적인 사고방식은 자연이 처음부터 한 설계자에 의해서 만들어진 완벽한 피조물로서 조화, 균형, 그리고 질서 속에서 서로 상호화합하여 아름다움을 유지해 가는 것으로, 하나님의 성품인 이타주의와 자기 희생적 상리상생(相利相生)으로 보는 관점이다.
식물은 진화론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너무나 많은 수수께끼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것은 우리가 관찰하는 식물의 외관적인 면뿐만 아니라, 내면적인 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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