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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다 1

가을이다 .1   여름을 지나면서도 여름인지 가을인지언제 가을이 오는지 왔 는지 아니면 가을이 지나가는지 사람들은 단지 24 절기의 절기가 달력을 통해 날씨가 따뜻해도 입추를 시작으로 가을인지 아닌지를 구별한다 . 우리의 눈으로 피부로 가을인지 아닌지는 변덕스런 일기와 온도의 변화로 알수가 없다 . 그러나 나무들은 먼저 알고 가을을 준비하고 가을이 오면 겨울을 준비한다 .   우리들은 가을은 벼가 완전히 고개를 숙이고 나뭇잎이 단풍이 들어야 가을임을 확실히 안다 . 감이 홍시가 되고 , 무 , 배추가 들일때는 이미 초겨울이다 .    나뭇잎들이 자기할일을 다하고 곧 나무에서 떨어저 마음으로 나마 한해의 수고를 위로하고 싶은 심정이다. 영양분 까지도 나무줄기로 돌려주고 남은 영양만이지만 뿌리를 살찌우기 위해 또 거름이 되고     바람에 이리저리 날려 다니다가 고랑에 쌓이는낙엽은 겨울을 나야할 어린곤충과 뿌리 식물들의 이불이 되어준다 . 나무의 마음씀씀이는 인간들이 배워야할 아주 대단한 철학적의미를 가진다 . 단풍 구경을 하는 것도 좋지만 단풍이 드는 잎들에게 나의 작은 마음으로 한해를 수고한 나무 잎들에게 마음을 보태어 위로하고 싶은 심정이다 . 많은 사람들이 좋은 단풍을 구경하러 갈 계획도 많이 세울 것이다 . 어느 산이면 어떤가 ? 벌써 산 정상에는 나무들의 단풍이 들기 시작한다 . 단풍이라기보다 하나의 연극을 공연한다고 생각하여야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다 . 산에 들기전 초입에도 벌써 단풍이 든 나무잎들이 산에 드는 우리를 반가이 맞이 하였다 . 단풍나무가 주연이라면 참나무 , 아까시아나무 , 소나무 , 잣나무는 조연쯤 되는 듯하다 . 겨울산의 주인공은 그래도 잣나무 , 소나무 인 듯 한데 말이다 . 하여간 산은 무대가 되고 나무들이 배우가 되어 연극을 하는 듯하다 . ...
가을이다 2 주변 친구들이 앞 다투어 부모님 산소를 돌보고들 왔다고 모두 고향이야기다 나 또한 아버님을 일찍 여위고 학창시절부터 벌초는 언제나 내가 하였다 . 혹이나 다른 형제들이 벌초를 할까봐 한 달 전부터 가서 벌초를 하고 추석 10 일전쯤 다시 뒷손질을 하기도 하였다 . 몇일 전 고향을 찾았다 . . 삼삼오오 가족들이 들로 , 산으로 다니면서 조상님들 묘지 손보기에 분주하다 . ​ 덕분에 시골에서 몇 년만에 못보든 고향 친구와 선배들을 만나기도 하고 어른 분들도 만나고 모처럼 동네에 사람구경도 좀 할 수 있었다 . ​ 산세가 좋은 곳은 명당 ? 이라서 그런지 주변이 온통 묘지이다 . 잡초로 무성해 있던 묘지가 말끔하게 정리된 모습을 보니 저도 기분이 덩달아 좋다 . 하늘이 높은 것을 보니 가을은 가을인 것 같다 . 가을 하늘은 왜 이리 높을까 ? 天高馬肥 가을 하늘이 높이 보이는 이유는 다른 계절에 비해 습도가 적고 건조한 까닭일까 맑고 오염 물질이 적어서 일까 ? 바람이 자주 살랑거리며 불어 먼지가 날아가 버려서일까 ? 하늘이 저리도 파랗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 장마비에 먼지가 씻겨서 ? 태풍이 먼지를 날려 보내서 ? 날씨가 건조해 수증기가 적어서일까 ? ‘ 천고마비의 계절 ’ 인 가을로 , 맑은 날씨가 계속되며 강수량이 줄어들고 습도도 낮아지며 , 산야는 단풍과 황금빛의 오곡으로 뒤덮이게 된다 . 늦가을이 되면 낮의 길이와 일조시간이 짧아지고 기온이 차차 하강하며 , 특히 일교차가 심해진다 . 새벽에는 야간의 복사냉각으로 안개가 발생하기 쉬우며 서리도 내린다 . 때때로 첫서리가 너무 빨리 내릴 때는 농작물에 큰 피해를 주게 된다 . 11 월 중순 이후부터 기압골이나 한랭전선이 한반도를 통과하면 겨울을 재촉하는 가을비가 내리게 되고 , 뒤이어 대륙의 차가운 고기압이 확장해 나오면서 기온은 급격하게 내려가고 , 겨울이 성큼...

백스터 효과

백스터 효과 ​   백스터효과 생소한 단어입니다. 지금까지도 나무의 신경이 없다고 해서 나무는 잘라도 아프지 않다고 하는사람들과 아픔을 느낀다는 주장의 이론에 식물 학교수님들과도 언쟁을 벌인다. 그래서 지금까지 분재를 싫어하는 이유의 하나가 나무에게 고통을 주기 싫다는 것이 전부라는 생각이다. 내가 보기 좋다고 내가 편하다고 남을 못살게 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다. 국민은 전혀 다른 생각인데 자기네 몇사람 생각이 갖다고 수 십년간을 국민을 팔아 자기 뜻대로 하려고 하는 *****들하고 똑같은 심보다. 일부 학자들은 식물도 동물처럼 지각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밝히려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식물의 지각을 '초감각적 지각(extrasensory perception, 약칭 ESP)'이라고 하는데, 거짓말탐지기와 같은 '전기저항측정기'를 식물에 설치해 주변 환경의 변화에 따른 식물의 자극반응을 읽을 수 있다. 전극을 설치한 잎사귀를 태워버리겠다고 마음을 먹거나 자기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이 나타나면 전극이 갑자기 움직이는 현상이 나타난다. 평소 식물을 죽여야 하는 일을 하는 생리학자가 같은 실험을 했을 때는, 마치 동물이나 인간이 위험에 닥치면 실신하듯,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그가 떠난 뒤 반응을 시작했다고 한다. 또한 식물들은 한 번 어떤 특정인과 유대관계를 갖게 되면, 그가 어디에 있건 그가 아무리 많은 인파 속에 있건 그 사람과 계속 유대를 갖는다고 하며, 친구를 대하듯 아주 다정한 감정을 그 식물에다 불어넣을 때에도 감응이 분명히 나타난다고 한다. 이것을 가장 먼저 연구한 사람은 백스터(Backster)란 사람으로서, 그는 마치 무당처럼 식물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하는데, 그에 따르면 떡갈나무는 나무꾼이 다가가면 부들부들 떠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식물의 이런 반응을 가리켜 '백스터 효과(Backster's Effect)'라고 한다. 우리나...

자연은 말 없이 나눈다.

자연은 말 없이 나눈다. ​   어린 시절부터 시골에서 자라온 것이 지금 생각하면 큰 축복 이였다. 자연에서 소일하는 것을 격려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랐고, 대부분 야외 활동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던 어린 시절이 지금 생각하니 행복 이였고, 기쁨 이였고, 호기심대로 사소한 경험도 하면서 자라온 것은 행운 이였다. 정말 매력적인 삶이였고, 평온하고도 여유로운 삶을 살아오면서 많은 것을 체험하면서 살아온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어제처럼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황사로 착각 할 만큼 송화 가루가 하늘을 뒤덮는 광경 또한 지나간 시절 이미 경험을 한터이다. 논가에 반딧불 반짝이든 시골의 저녁밤 풍경이 다시금 생각난다. 그 외에도 많은 추억거리 도시에서는 지금은 경험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들 사건들로 마음을 사로잡던 일들이 참 많이 생각이 난다. 그러나 이제는 많은 세월이 흘렀고, 살아가는 것은 지금이나 그때나 똑 같은 듯 하다. 옛날에는 그래도 여유가 많이 있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가지만 자연과의 약속은 철저하게 지켰고, 유교적인 정신만큼은 우리의 생활보다도 더 철저히 지키며 살아오신 부보님들의 생활을 보고 느꼈다. 그런 약속, 윤리적 예절, 도덕, 신뢰성으로 바빳다. 지금 처럼 법도, 윤리도, 도덕도, 아랑곳 하지 않으면서 마음으로 바쁜 시절은 아닌 듯 하였다. 지금 처럼 천륜을 저버리는 일들은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는 좋은 시절이 였다. 부모님들도 좋은 것만 가르치고 배우게 하였지 나쁜 일들은 쉬쉬하고 못보게 하고 못 배우도록 하셨다. 지금은 종교적 신앙을 이야기 하지만 옛날 우리 부모님들이 조상을 모시는 종교적 효성은 정말이지 지극한 정성 이였다. 우리가 자연에게 받는 혜택을 생각하면 부모님들의 생각이 절로 난다. 우리가 자연에게 받는 생활적 도움, 환경적인 도움, 문화적인 측면, 치료적 측면, 즉 어릴적 기억에 담긴 과학적 유효성관련 연구에 다시금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현대 생활에 지친 스트레...

사람과 자연의 긴밀한 유대(紐帶)

사람과 자연의 긴밀한 유대(紐帶)      토요일 마다 밭으로 나간다. 농사(農事)를 지어보니 참 많은 벗들이 생겼다. 벌 한통의 수천마리의 벌들이 정신없이 일하고 있고 하루 종일 처다 보아도 지겹지가 않다. 당장 몇일 후 꿀을 받아야할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벌들이 열심히 일해 놓은 것을 인간들이 결국 뺏어 먹는 것이다. 이 또한 자연에 감사해야 할 일이다. 일주일에 한번 씩 나가는 밭이라 엄청난 변화를 몸으로 체험을 한다. 깡마른 옥수수, 이빨로 힘을 주어도 깨물어도 꺼떡도 안든 옥수수가 예쁘고 귀여운 생명(生命)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내가심은 옥수수가 새로운 生命으로 탄생하는 것을 보고 신기하지 않을 수가 없고 친근감이 가지 않을 수가 없다. 인간과 자연(自然)의 역사적(歷史的) 접촉(接觸)은 不滅의 흔적으로 남아 식물이든 동물이든 우리가 온갖 생물에게 친근함을 갖는 원동력(原動力)으로 작용하나 보다. 生命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듯하다. 自然의 유대는 우리의 DNA안에 자리 잡고 있는데 , 이것이야 말로 생명애(生命愛) 가설(加設)의 핵심(核心)이다. ‘生命愛’란 살아있는 다른 유기체(有機體)에 대한 인간의 타고난 정서적 제휴(提携)라고 제안했다. 生命愛란 자기보존의 본능, 생명을 유지하려는 本能的 욕구(欲求)가 아닐까? 음양(陰陽)이 있고, 남녀가 있고, 오르막 내리막이 있고, 밤과 낮이 있다. 이렇듯이 자연의 조화는 신기하고도 오묘하다. 밭 귀퉁이에 피어난 노란 민들레도, 불어오는 바람도, 같이 먹자고 모여든 작은 벌레들도 모두 친구가 되었다. 참 으로 신기한 일이다. 동물이나 곤충이나 살아 있는 것들은 먹어야 살고, 그것으로 에너지를 얻고, 먹어면 배설하고 자연은 순환의 원리인 듯하다. 작은 감자 한 알을 땅에 묻고 초여름이 되니 한 바구니 가득 감자를 주워 담는다.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자연은 언제나 아낌없이 선물해주었다. 안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