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스터 효과
백스터 효과
백스터효과 생소한 단어입니다.
지금까지도 나무의 신경이 없다고 해서 나무는 잘라도 아프지 않다고 하는사람들과 아픔을 느낀다는 주장의 이론에 식물 학교수님들과도 언쟁을 벌인다. 그래서 지금까지 분재를 싫어하는 이유의 하나가 나무에게 고통을 주기 싫다는 것이 전부라는 생각이다.
내가 보기 좋다고 내가 편하다고 남을 못살게 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다.
국민은 전혀 다른 생각인데 자기네 몇사람 생각이 갖다고 수 십년간을 국민을 팔아 자기 뜻대로 하려고 하는 *****들하고 똑같은 심보다.
일부 학자들은 식물도 동물처럼 지각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밝히려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식물의 지각을 '초감각적 지각(extrasensory perception, 약칭 ESP)'이라고 하는데, 거짓말탐지기와 같은 '전기저항측정기'를 식물에 설치해 주변 환경의 변화에 따른 식물의 자극반응을 읽을 수 있다. 전극을 설치한 잎사귀를 태워버리겠다고 마음을 먹거나 자기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이 나타나면 전극이 갑자기 움직이는 현상이 나타난다. 평소 식물을 죽여야 하는 일을 하는 생리학자가 같은 실험을 했을 때는, 마치 동물이나 인간이 위험에 닥치면 실신하듯,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그가 떠난 뒤 반응을 시작했다고 한다. 또한 식물들은 한 번 어떤 특정인과 유대관계를 갖게 되면, 그가 어디에 있건 그가 아무리 많은 인파 속에 있건 그 사람과 계속 유대를 갖는다고 하며, 친구를 대하듯 아주 다정한 감정을 그 식물에다 불어넣을 때에도 감응이 분명히 나타난다고 한다.
이것을 가장 먼저 연구한 사람은 백스터(Backster)란 사람으로서, 그는 마치 무당처럼 식물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하는데, 그에 따르면 떡갈나무는 나무꾼이 다가가면 부들부들 떠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식물의 이런 반응을 가리켜 '백스터 효과(Backster's Effect)'라고 한다.
우리나라 전설이나 민담에 나오는 떡갈나무를 베니 피가 솟았다든지, 나무를 베는 자들을 잡아가는 도깨비가 참나무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는 나오는데, 참나무가 초감각적 지각이 강해서 사람들이 그것을 읽은 것인지, 참나무에 대한 수목숭배의식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참나무가 인류에게는 영묘한 존재로 여겨졌다는 것은 분명하다.
현재 식물의 이런 초 감각적 지각을 과학 분야에 응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식물에 센서를 연결해서 온실 또는 축사의 환경이 동식물에 적합한지를 알아보기 위해 생체계측시스템에 활용되고 있다. 또 최근에는 식물의 지각능력을 이용해서, 승객이 탑승하기 전에 미리 공항에서 공중 납치범을 식별해 낼 수도 있다고 하며, 미 육군에서는 식물연구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또 해군 역시 관심을 보이고 있고 미 항공우주국(NASA)도 식물을 통해 우주와 교신하는 계획을 실행한 바 있다. 이 분야는 세계 최첨단 과학 분야로서 세계 유수의 대학과 연구소에서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식물도 통증을 느끼는가 (-naver 지식in에서)
식물이 통증을 느낀다는 말을 믿을 사람은 거의 없다.
외부 자극에도 뚜렷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 식물에 의식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궤변쯤으로 여겨질 게 틀림없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는 식물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반응을 의식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식물은 아무리 밟아도 꿈틀대지 않는 그저 그런 풀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식물에 의식이 있다고 섣불리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나름대로의 사생활을 영위하는 생명체인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식물도 초식동물의 공격을 받거나 손상을 입을 경우 ‘통증’을 느낀다고 한다. 이는 식물의 정신세계를 내세우는 사람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가설이 될 만하다. 물론 식물의 고통을 사람들이 느끼는 통증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 식물에는 세포들이 서로 통신할 수 있는 일종의 전화선들인 시냅스의 작용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의식적 작용을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통증을 느끼는게 신경세포로만 가능하다고 단정하는 것도 하나의 편견일 수 있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식물은 통증을 느끼는 게 아니라 단지 무의식적으로 반응할 뿐이라는 것이다.
감정과 기억을 가진 ‘위대한 생물’
최근 식물분자생물학자인 미국 애리조나대학 랠프 바크하우스, 프랑스 식물분자생물학연구소 빌라르 카마라 등은 식물도 동물처럼 상처를 받았을 때 통증을 느끼며 이때 아스피린 등의 소염제로 식물의 통증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식물은 곤충의 공격으로 물리적 손상을 입었을 때 방어물질로 ‘자스몬산’을 분비한다. 이 호르몬은 휘발성이 있어 이웃한 식물에 곤충의 공격에 대비해 자체방어 물질을 만들라는 경고신호로 작용한다. 식물이 고통당할 때 아스피린을 식물에 투여하면 자스몬산이 생성되지 않아 그만큼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아스피린으로 동물의 고통반응을 일으키는 프로스타글란딘의 생성을 억제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이러한 실험결과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식물의 통증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식물이 곤충을 방어하기 위해 개발하는 ‘화학무기’의 실체도 속단하기에 이르다. 만일 식물이 상처를 받은 초기에 정보 전달에 관여하는 유전자와 반응 메커니즘을 완전히 해명한 것이라면 식물세계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고 병에 강한 식물의 재배와 인간의 항염증제 개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식물학자들은 대부분 식물세포를 둘러싸고 있는 단단한 세포 때문에 세포간 신호 전달과정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왔다. 식물은 통증을 느끼는 게 아니라 단지 무의식적으로 반응할 뿐이라는 것이다.
바크하우스의 연구결과가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곤충이 식물을 공격할 경우 식물들이 방충 화학물질을 발산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이를테면 소나무 송진의 터펜스 같은 물질은 병원균과 다른 식물의 접근을 막고, 제라늄에 손을 대면 미모사가 잎을 오므리듯 즉각 독가스를 뿜어내 외부 침입자를 퇴치한다. 끈끈이주걱은 먹이가 있음직한 곳으로 정확히 몸을 움직여 백발백중의 실력으로 파리를 붙잡는다. 어떤 식물은 곤충과 공생관계를 맺으며 공존을 추구하기도 한다. 이렇게 식물의 반응이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어떤 과정을 통해 일어나는지는 의문으로 남아 있었다.
식물 연구자들은 식물의 통증반응을 선뜻 받아들이지 않지만 가능성을 인정하기도 한다. 식물이 통증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식물의 신경세포를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뭐라고 말하는 어렵다. 하지만 식물이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것을 기계적 작용이라 단정하는 것도 무리가 따른다. 식물은 수준 높은 방어체계를 가지고 있지만 아직 과학적으로 해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식물 유전자의 실체를 완전히 파악하는 게 남아있는 과제다.” 식물이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낸 방어체계를 규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통증을 느끼는지의 여부를 한마디로 말할 수 없다는 얘기다.
식물이 동물과 마찬가지의 감정과 기억을 가졌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 인간의 생각과 감정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에 대한 과학적인 증거를 발견했다고 선언한 사람이 클리버 백스터다. 그는 ‘드러시나’라는 식물에 거짓말탐지기의 전극을 연결해 여러 자극에 대한 반응을 살피는 실험을 벌였다. 그 결과 물을 주어야 겠다 거나 태워버리겠다는 생각 등에 식물이 그때그때 반응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러한 실험결과에 따라 나온 게 ‘백스터 효과’이지만 아직까지는 과학적인 사실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백스터 효과를 인정하는 학자들은 식물에도 의식적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외부 자극에서 비롯되는 식물의 통증은 당연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대부분의 식물학자들은 바크하우스가 말하는 통증의 정의에서부터 의문을 제기한다. 고통에 대한 정의가 애매한 가운데 이를 가리는 것은 자극을 뇌에 전달하고 이를 피하도록 반응하는 중추신경계의 존재 여부에 달려 있다. 이에 따른다면 동물 가운데서도 오직 척추동물만 고통을 느낄 뿐이다. 하물며 신경세포를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은 식물이 고통을 느끼고 통증을 어떻게 호소할 수 있겠는가. 포항공대 안진흥 교수(생명과학)는 식물이 통증을 느낀다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주장이라고 말한다. “자스몬산은 지방산의 하나로 식물에 상처가 나면 세포막에서 만들어진다. 상처가 났을 때 이에 대해 반응하는 능력은 모든 생명체에 존재하는 것이다. 식물도 예외는 아니다. 환경변화와 자연재앙, 적 등으로부터 회피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식물은 나름대로 상처를 인식하고 이에 대응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그렇다고 그것을 자극에 대한 의식적 반응으로 여길 수는 없다.”
상처에 대한 반응일 뿐… 식물은 미지의 영역이다1
식물은 곤충과 함께 지구상의 생물 가운데 4분의 3을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 주변에 널려 있지만 생존 메커니즘은 대부분 베일에 가려져 있다. 식물도 사람처럼 단백질의 상호작용으로 병의 원인을 퇴치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온 게 96년의 일이다. 당시 연구진들은 식물도 마치 인체에 병원체가 침입하면 면역체계가 형성되는 것처럼 발병 유전자에 대적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하지만 당시에는 식물의 내병성의 메커니즘을 규명했을 뿐 의식적 행위라는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지금까지의 식물세계에 대한 접근은 지극히 제한된 수준인 것이다. 식물은 비록 땅에 뿌리를 박고 자라기에 움직일 수는 없지만 인간보다 훨씬 먼저 지구상에 뿌리를 내렸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지각능력 없이 환경에 적응하기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인간보다 위대한 진화를 이루어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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