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생명을 먹고 산다.

생명은 생명을 먹고 산다.
 
우리는 많은 것을 먹고 산다.
사람도 사는 곳에 따라 먹는 음식이 다르고, 사람마다 음식을 먹는 방법도 다르듯 식물도, 동물도 저마다 다른 먹이를 먹고, 먹이를 먹는 방식도 서로 다르다. 청설모가 잘 익은 잣 열매하나 앞발로 잡고 튼튼한 앞니로 열매의 껍질을 벗기고 씨앗을 한 알, 한 알 까서 먹는다. 잣나무에서 잣을 따서 잣 열매 껍질을 벗기는 것은 예술이다. 하지만 물총새는 이빨이 없어서 물고기를 머리부터 통째로 삼켜서 먹는다. 그런데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도 먹이를 먹는다는 사실이다. 식물들은 햇빛을 받아 이산화탄소와 물을 영양분으로 바꿀 수 있다. 영양분이 식물에게는 곧 먹이다. 그러니까 식물은 동물과 달리 자신이 먹을 먹이를 스스로 만들어 낸다. 식물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만 동물들은 식물들이 만들어 놓은 것을 뺏어 먹는 셈이다.
인간들은 어떤가? 식물을 먹고 새도, 곤충도, 동물도 먹는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다. 입 한 번 벌릴 때마다 수많은 세균, 박테리아를 삼키고 먹으며 산다. 동물을 먹지 않고 채식만 하며 산다 해도, 인간이란 저도 모르게 눈에 보이지도 않는 생명체를 먹고사는 셈이다. ‘생명은 생명을 먹고 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생명을 대하는 새로운 자세를 가지고 먹는다 는것 먹거리 앞에서 우리는 감사의 기도를 해야 할 입장이고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음식을 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먹고 마시고 호흡하는 일들에 대하여 우리가 아끼고 절약하고 검소한 생활을 해야 하는 이유가 생명존중이라는 것이다. 이런 엄청난 일들을 앞장서서 가르치는 선생님들께 감사히 생각한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학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회인들에게는 언론과 방송이 앞장선다면 참으로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최근 기자와 언론에 방송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고 있는 듯하다.
어느 방송에서 시궁창 같은 방송국이란 단어를 듣고 깜짝 놀랐다. 심지어 기자를 쓰레기에 비유한 ‘기레기’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트위터 나 페이스북 같은 SNS가 신문이나 뉴스보다 검정되지 않은 뉴스를 더 빨리 새로운 소식으로 잘못 전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러한 기자와 언론에 대한 불신이 급속도로 커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 비판에 급급해 순기능까지 놓쳐서는 안 된다. 잘못한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하여 그런 잘못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할까? 대안을 제시할만한 기자의 기사 이어야 하지 않을까? 환경이 잘못되면 환경에 잘못된 대안을 제시할 만한기사로 논리정연하게 적어야 하고, 정치에 잘못한일이 있다면 정치학을 전공한 기자가 정치를 바로 돌려놓을만한 대안제시를 할 만한기사를 적어야 하지 않을까? 여러분은 신문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가? ‘언론의 자유’가 어떤 의미인지 안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인터넷 매체의 기자는 귀찮아서 대충 기사를 올리는 걸까? 정치권력과 신문 기사 사이에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라는 상상과 많이 받고 부정을 도와주는 사람보다. 적게 받고도 부정을 안 도와준 사람을 고발하는 일 같은 상황을 뉴스로 들으며 믿지 못할 인간들의 삶보다 동물들의 삶이 낫고, 동물들의 삶보다는 식물들의 삶이 낫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핵에너지와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에 대해 일본의 사태를 보고 이미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왜 위험한지, 방사능에서 안전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대부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원자력에 대한 막연한 공포는 원자력 산업의 구조와 에너지 위기의 대안을 이해하는 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핵에너지, 즉 원자력이 화석 연료가 고갈되고 있는 지금 새로운 대안으로 각광받는 에너지 공급원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총 발전량에서 원자력 발전이 차지하는 비율이 대략 30%에 육박한다. 하지만 원자력 산업을 지속하려면 원자 폭탄, 수소 폭탄을 비롯한 핵무기의 확산, 방사능 유출 사고, 핵폐기물 등 우리가 감수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다음 세대들 에게 받을 원망의 목소리가 들리는듯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당장 필요하지 않고 절약해도 되는 전기부터 아껴야 할 것이다. 다음세대를 위해서라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생명을 아끼고 자연을 보호하고, 적게 쓰고, 적게 먹고, 검소하고, 절약하고, 국민교육헌장(1968년 12월5일 제정선포)의 정신 처럼 자연보호 헌장의  (1978년 10월 5일 제정선포)내용과 정신 처럼 살아가는 습관과 지혜를 모아야 할 것 같다.
이 좋은 내용들을 우리가 아끼고 사랑하는 다음 세대를 위하여 알려주고 배우게 하여야 할 일들을 국가도, 교육청도, 부모도 나서지 않아 더 아쉽고, 무책임한 일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다!
 
국민교육헌장
‘국민교육헌장’이 제정된 이유는 첫째, 조상의 훌륭한 전통과 유산이 계승 ·발전되지 못하고 있으며, 둘째, 물량적 발전에 비하여 정신적 가치관 사이의 조화로운 융합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고, 셋째, 국민의 국가의식과 사회의식이 결여되어 민족 주체성이 결핍되어 있으며, 넷째, 국민교육의 지표가 불분명하여 학교교육에서 정신적 ·도덕적 교육이 소홀히 취급되고 있다는 시대적 ·환경적 여건의 불합리성에서 찾을 수 있다.
 
이 헌장은 개인 ·사회 ·국가의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시키고 앞으로 국민이나 국가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국민교육헌장’은 가정교육 ·학교교육 ·사회교육 등 모든 교육의 근본 지표가 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헌장은 초장에서 한민족의 긍지와 사명의식을, 중장에서는 생활의 규범 ·덕목을, 종장에서는 조국통일의 실현과 민주주의 발전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헌장의 기본정신은 ① 민족주체성의 확립, ② 전통과 진보의 조화를 통한 새로운 민족문화의 창조, ③ 개인과 국가의 조화를 통한 민주주의 발전으로 집약될 수 있다.
 
자연보호헌장
1978년 10월 5일에 선포되었다. 자연보호를 위한 범국민적 결의를 집약 제정한 헌장은 전문과 실천사항으로 되어 있다. 제정과정을 보면 학계 ·언론계 등 각계 전문가 100명의 위원으로 위원회를 구성하고, 이 중 11명의 헌장 심의위원회에서 초안을 작성하여, 수차례의 심의를 거친 끝에 헌장 제정 위원회와 자연보호위원회의 의견을 거쳐 확정된 것이다.
 
헌장 전문에는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 자연생태계의 법칙과 조상들의 자연보호관을 소개하고, 산업문명의 발달과 인구의 팽창에 따른 자연파괴의 심각성을 경고하고 있으며,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각성을 촉구하고, 자연보호를 위한 국민적 결의를 집약하고 있다. 헌장 실천사항은 7개항의 다짐사항을 통하여 자연보호에 대한 국가 ·국민의 의무, 국민교육의 중요성, 올바른 환경윤리관의 확립 등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국제민간단체인 국제자연보호연맹(IUCN)의 영향을 받았으며, 이러한 자연보호운동에 대한 전세계의 움직임은, 유엔환경계획(UNEP)으로 하여금 세계자연보호헌장 초안을 이미 발표하여 곧 선언 단계에 이르게 하고 있다. 그 서문에는 ‘인간과 생물과의 상관관계, 자연보호의 일반원칙, 자연의 적정 관리 ·이용, 보호의 책임’ 등이 밝혀져 있다. 헌장 초안에서는 ‘환경윤리관의 인식을 위한 올바른 가치관의 정립, 법제 ·행정 ·교육 ·세제의 강화지원을 위한 제도체계의 확립, 그리고 과학 ·기술의 적정관리를 위한 기술체계의 발달’ 등을 촉구하는 내용으로서, 이와 같이 적정관리 된 귀하고 소중한 자연자원을 영원히 후세대에게 물려주자는 결의문이다.
(출처: 네이버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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