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행복한 낙원
자연의 행복한 낙원
살아있는 자연은 모두 에너지가 필요하다.
움직이는 동물들은 에너지를 얻을 때 남의 생명을 요구한다.
움직이는 식물도 곤충이나 동물의 생명을 요구 하기도 한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 식물들은 남의 생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직 탄소와 물 햇빛으로 스스로 에너지를 만든다.
인간보다 동물보다 곤충보다 수만년전에 태어나 더 진화 했는지도 모를일이다.
에너지는 대부분은 그것이 식사이고 식사를 통한 음식물의 섭취이고 그 음식물이 동물도 있고, 물고기들도있고, 곤충들도 있을수 있다.
이중 대부분이 식물이고 식물중에서도 목본보다는 초본류이다. 초본류의 풀 들을 사람들도 동물들도 가장 많이 먹는 듯 하다.
가만히 두어도 오래 살지 못하는 채소류들은 부드럽고 작은 모양을 하고 맛이 특이 하지도 않아 늘 먹어도 맛있게 먹을수있고 질리지 않는 것도 특이 하다. 오래 살지 못하는 식물들은 세대가 짧고 열매도 빨리 키우고 익어가 다음세대를 준비하기도 한다.
세대가 짧으니 계절마다 다른 여러 종들이 또 태어난다. 그래서 다른 종들이 제각각 우리 들을 마중 나오 듯 줄지어 태어나고 사라지곤 한다. 사계절이 있는 우리나라 에서는 더욱 다양한 식물들이 태어나고 출몰한다. 환경 적응력이 다양하여 같은 종이라도 해도 다른 형태나 다른 생태적 특성을 갖기도 한다.
여하간 우리는 어릴적부터 나물밥, 무밥, 콩밥, 감자밥, 고구마밥, 옥수수밥, 보리밥, 을 많이 먹었다 쌀이 모자라서 채소나 곡물을 많이 썩어 먹었다. 아니 채소난 곡물이 쌀보다 많을때가 더 많았다. 그래도 모자라면 죽을 만들어 음식량을 늘려 먹고 잠을 청했다는 이야기도 부모님들로 부터 들은 적이 있다. 여하간 그 시절은 육류라는 돼지고기, 소고기는 1년에 한두번 먹어 볼까 말까 집안어른의 생일이나 잔치때나 먹어 볼수있는 귀 한 시절이였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는 그저 초식을 위주로 하는 초식동물처럼 대부분 식사가 초식성 이였다.
단군 신화까지도 쑥과 마늘을 먹었다고 할정도로 우리민족은 초식성의 유전자를 이어 받은 삶인 듯 하다. 이렇게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아온 사람들에게 마치 상징처럼 붙어 다니는 말들이 있다.
그 말이 잡초다.
雜草란 본뜻과 달리 우리의 마음이 느끼는 뜻은 가치가 없고, 쓸모가 없고, 더 심하게는 아무에게도 관심이 없는 풀을 잡초라 생각했다. 제 마음대로 자라난풀, 귀찮은 존재의 풀, 먹기도 버리기도 귀찮은 풀, 곡식을 키우는데 방해가 되는풀, 이런 풀이 잡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문으로 뜻을 생각해보면 여러풀들이 아니 여러 약초들이 썩여서 함게 자라나는 풀 누구의 관심도 관섭도 받지않은 풀, 스스로 자라나며 스스로 성장하고, 혼자서 인내하며 스스로성공적으로 살아남은 풀들이 잡초고 약초였다.
인간들이 바라는 뭔가 뚜렷한 목적도 목표도 없는풀, 주어진 공간에서 자신들의 삶의 방식대로 살아난풀 이들이 잡초이자 약초인것이다.
결론은 잡초라고 하는 풀들은 가장 소중한 자연의 질서 속에서 자연의 환경에 순응하며 최고의 자신의 가치를 뽐내고 생산하고자 하는 자신들만의 천국 낙원을 만들어 가고 있는 듯 하다.
여하간 약초에게 그동안 잡초라고 불명예를 씌우거나 더 안좋은 식물인간이라는 단어는 식물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식물들의자존감을 몹시 폄하 하는 듯 하다.
자연의 행복한 낙원을 우리 자신들이 조금더 생각하고 사랑하는 고마운 마음으로 돌아보고 자신 스스로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는 듯하다. "숲이 곧 생명이다"란 말이 생각난다. 한마디 더하면 자연이 곧 생명의 근원이고 행복한 낙원이다.
살아있는 자연은 모두 에너지가 필요하다.
움직이는 동물들은 에너지를 얻을 때 남의 생명을 요구한다.
움직이는 식물도 곤충이나 동물의 생명을 요구 하기도 한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 식물들은 남의 생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직 탄소와 물 햇빛으로 스스로 에너지를 만든다.
인간보다 동물보다 곤충보다 수만년전에 태어나 더 진화 했는지도 모를일이다.
에너지는 대부분은 그것이 식사이고 식사를 통한 음식물의 섭취이고 그 음식물이 동물도 있고, 물고기들도있고, 곤충들도 있을수 있다.
이중 대부분이 식물이고 식물중에서도 목본보다는 초본류이다. 초본류의 풀 들을 사람들도 동물들도 가장 많이 먹는 듯 하다.
가만히 두어도 오래 살지 못하는 채소류들은 부드럽고 작은 모양을 하고 맛이 특이 하지도 않아 늘 먹어도 맛있게 먹을수있고 질리지 않는 것도 특이 하다. 오래 살지 못하는 식물들은 세대가 짧고 열매도 빨리 키우고 익어가 다음세대를 준비하기도 한다.
세대가 짧으니 계절마다 다른 여러 종들이 또 태어난다. 그래서 다른 종들이 제각각 우리 들을 마중 나오 듯 줄지어 태어나고 사라지곤 한다. 사계절이 있는 우리나라 에서는 더욱 다양한 식물들이 태어나고 출몰한다. 환경 적응력이 다양하여 같은 종이라도 해도 다른 형태나 다른 생태적 특성을 갖기도 한다.
여하간 우리는 어릴적부터 나물밥, 무밥, 콩밥, 감자밥, 고구마밥, 옥수수밥, 보리밥, 을 많이 먹었다 쌀이 모자라서 채소나 곡물을 많이 썩어 먹었다. 아니 채소난 곡물이 쌀보다 많을때가 더 많았다. 그래도 모자라면 죽을 만들어 음식량을 늘려 먹고 잠을 청했다는 이야기도 부모님들로 부터 들은 적이 있다. 여하간 그 시절은 육류라는 돼지고기, 소고기는 1년에 한두번 먹어 볼까 말까 집안어른의 생일이나 잔치때나 먹어 볼수있는 귀 한 시절이였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는 그저 초식을 위주로 하는 초식동물처럼 대부분 식사가 초식성 이였다.
단군 신화까지도 쑥과 마늘을 먹었다고 할정도로 우리민족은 초식성의 유전자를 이어 받은 삶인 듯 하다. 이렇게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아온 사람들에게 마치 상징처럼 붙어 다니는 말들이 있다.
그 말이 잡초다.
雜草란 본뜻과 달리 우리의 마음이 느끼는 뜻은 가치가 없고, 쓸모가 없고, 더 심하게는 아무에게도 관심이 없는 풀을 잡초라 생각했다. 제 마음대로 자라난풀, 귀찮은 존재의 풀, 먹기도 버리기도 귀찮은 풀, 곡식을 키우는데 방해가 되는풀, 이런 풀이 잡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문으로 뜻을 생각해보면 여러풀들이 아니 여러 약초들이 썩여서 함게 자라나는 풀 누구의 관심도 관섭도 받지않은 풀, 스스로 자라나며 스스로 성장하고, 혼자서 인내하며 스스로성공적으로 살아남은 풀들이 잡초고 약초였다.
인간들이 바라는 뭔가 뚜렷한 목적도 목표도 없는풀, 주어진 공간에서 자신들의 삶의 방식대로 살아난풀 이들이 잡초이자 약초인것이다.
결론은 잡초라고 하는 풀들은 가장 소중한 자연의 질서 속에서 자연의 환경에 순응하며 최고의 자신의 가치를 뽐내고 생산하고자 하는 자신들만의 천국 낙원을 만들어 가고 있는 듯 하다.
여하간 약초에게 그동안 잡초라고 불명예를 씌우거나 더 안좋은 식물인간이라는 단어는 식물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식물들의자존감을 몹시 폄하 하는 듯 하다.
자연의 행복한 낙원을 우리 자신들이 조금더 생각하고 사랑하는 고마운 마음으로 돌아보고 자신 스스로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는 듯하다. "숲이 곧 생명이다"란 말이 생각난다. 한마디 더하면 자연이 곧 생명의 근원이고 행복한 낙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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