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계절



초록의 계절
 
계절의 봄은 때가 되면 찾아온다.
지금까지 한번도 찾아오지 않은 때가 없다.
내 마음에 봄은 언제 오는지 언제 왔는지!
해마다 봄은 나무를 심기에 한시가 급한 마음이다.
새싹이 트기전 한그루 나무라도 더 심고 한 잎이라도 덜 자라 있을때 심으려는 나무에 대한 최소한의 애정이다.
그래야 자체적인 영양분이로 나무들의 싹이 잘 트고 나무들의 이식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이제 나무들이 새싹이 트고 잎이 자라고 그래서 뿌리의 영양분 공급이 한참 바쁘게 이루어 지고 새뿌리들이 싱싱하게 튼튼하게 귀엽고 예쁘게 고맙게 잘 자라고 있을 시기이다.
우리나라 같이 사계절이 분명히 있는 나라에서는 이른봄 새 싹이 트기전 나무가 동해를 입지 않는다면 나무를 심을 땅 구덩이를 파기가 좋다면 그때 묘목도 큰 나무의 이식 작업도 하기가 가장 좋은 시기이고 계절이다.
나무의 식재 시기가 중요 한것은  한그루의 나무라도 더 건강하게 튼튼하게  건강하게 잘 자라게 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기때문이다.
이제 초록의 계절이다. 내 마음도 초록이 되었는지 되돌아 볼 일이다.
아직도 푸르지 못한 마음이라면 내  마음에 빈 공간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우리가 값 없이 마시고 필요한 것이 괄합성으로 부터 얻어지지 않는가? 
나무는 탄소 동화작용이라는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면서 삶에 필요한 힘, 에너지를 만든다.
나무가 우리 삶에  필요한 탄수화물을  만들어 주는 광합성 작용은 식물의 잎에 있는 세포들이다.
빛과 공기중의 이산화 탄소로 재료로하여 우리의 생명을 유지시킬 먹거리 탄수화물을 만들어낸다.
식물들은 無에서 有를 창조해 내는 신비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 동물들에게 꼭 필요한 먹러리를 만들어 내면서도 나무는 먼지의 발생도 환경 오염도 시키지 않고 산소를 만들고 목재를 생산하고  열매를 만든다. 고맙고 또 감사한 일이다. 생명을 유지하는 좋은공기만해도 고마운일인데 먹거리까지 생산해주니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가?. 
그래도 나무에 대한 고마움을 이야기 하는 사람과 나무에 대한 애정은 별로 그리 흔하지 않다. 비싼돈을 내고 좋은 공기를 사 마셔야 하는 비극이 오기전에 우리는 한그루의 나무를 더 심어야 할 절대적인 이유이고 사명이다. 그리고  1회용 용기의 自制와 환경을 생각할 때이다.
가치가 정말 귀중한 것일수록  값이없다. 창조주의 축복이다. 공기가 그렇고 빛이그렇고 물이 그랬다.
40년전만 해도 물을 사먹는다는 것은 특히 농촌사람들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였다. 수돗물 없이도 웅덩이 물로 먹고 마시며 시냇가 흐르는 물로 모든 우리의 일용품을 세탁이 가능했기에 그러했다. 이제 물보다 귀하다면 무엇보다 더 귀하다는 공기의 오염이 되지않게 할 것인가 어떻게 오염환경을  막을 것인가? 생각하고 생각해보아야 할 일이다. 그렇다고 백리길, 천리길을 걸어 다닐수는 없지 않는가?
그래서 이 나무꾼은 한그루의 나무라도 더심고  나무를 더 사랑하고 나무를 더 잘 가꾸자는 것이다.
심겨진 나무가 싹이 나고 잎이 자라는 모습이야 말로 신기함을 넘어 에너지의 원천이고, 행복의 원천이다. 본 나무꾼이 2016년도 심은 묘목 들은 주로 산청목과 헛개나무 백합나무의 묘목 이였다.
전남에서 태어난(생산한) 나무들이 경상도로 경기도로 강원도로 나무로서는 예측도 못한 일이 벌어지고 새로운 나무의 삶 역사가 시작된는것이다. 나무꾼과 나무와는 한번의 상의도 없이 내 마음 대로 어린 묘목들의 삶의 터전을 마련한다고 하였고 그리고 나무들을 옮겨 심었다. 어린묘목들과 어버이 나무들과는 이별이 된 것이다. 아니 분가를 한 것이다. 분가한 나무들의 가족 만남은 언제가 될까? 미안한 마음도 조금은 있지만 좋은 곳으로 이주한 행복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무꾼이 농촌에서 자랄 때 어미 소 에서 태어난 송아지를 팔로 장에 가시는 어른들의 모습을 볼때 참으로 마음 아픈 광경 이였다. 어미 소는 애기소와 영영 이별하는 마음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다.
나무 또한 말도 못하고 울부 짓지도 못하고 스스로 자라는 터전에서도 사람들의 의지에 의하여 사는 지역이 다르고 환경이 달라진다. 조금이라도 나무가 적응하기가 좋은지 생각해보고 나무를 옮길일이다. 나무가 좋아하는 지역이라면  나무가 좋아하는 적지를 찾아줄일도 생각할일이다.  사람들이 사는 일이나 나무들이 사는 일이 무슨 차이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쪼록 서로 싸우지 말고 다투지말고 타 지역에서나마 잘 자라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애초부터 어미나무는 어린 애기나무들이 어미나무로부터 조금이라도 멀리 가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고 그래서 날씨 좋은날 맑은날 바람이 부는날 잉태했던 씨앗들을 껍질을 트고 껍질을 벌려 멀리멀리 날려 보내지 않았는가 ?
한 생명으로 배당 맏은 유전자를 가지고 스스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시작이 그 순간이 켜켜이 쌓이고 쌓인 복 일거라고 치부하고 싶다. 생명의 오묘한 순리를 진실이라는 것을 예능처럼 웃어넘기고 마는, 웃어넘기고 말아야하는 이중적인 현실이 조금은 서글프기도하다.
어찌 보면 몸의 노출은 관대하고 허세를 부리고 싶은 인간들이 외모에 치중한다. 그러나  마음은 노출은 감추고 또 감추는 것같다. 이 또한 이중적인 인간의 양심 없는 행동이다. 그러나 나무는 다르다.
나무들은 생명이 다하면 어디가 천국이고 어디가 지옥일까?
아무것도 아닌 스스로 천국을 만들고 스스로 지옥을 만들수도 없는 인간 들의 생각이다.  나무에게는 나를 탓하지 말라는 스스로의 치졸한 인간 생각인 듯 하다.
나무들에겐 어디서 살아가든 건강하게 곧고 바르게 크게 행복하게 잘 살아 보라는 이야기다.
행복하다. 즐겁다. 잘산다는 것이 좋은 환경이라서만은 아닌 듯 하기에 하는 소리다.
좋은 환경이라 더 많은 시련이 있을 수 있다. 좋은 환경이라고 잘산다는 것은 아니다.
환경이 나쁜 산골짜기 벼랑가의 나무는 인간이 호시탐탐 노리고 싶어도 노릴수가 없기도 하지않는가? 나무의 안전한 삶의 터전에는 그런 고약한 땅이 최고의 명당이 될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려운 환경에서 보람을 느끼며 산다면 더 행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돈 많은 것이 잘사는 사람은 아니다. 돈이 많아도 잘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돈이 없어도 웃음을 읽지 않고 잘사는 사람은 더 많다.
좋은 약이라도 먹어야 병이 낫고 돈이 많은 부자라도 돈을 잘 쓸때 행복한 것이다.
자연의 나무를 즐기기 보다 한그루의 나무를 잘 키우는 행복이야 말로 더욱 행복한것같다.
나무들을 키우다 보면
나무는 내가 기쁘고 행복할때도 내가 속상하고 우울할때도 언제나 든든한 믿음직한 내 편이다.
나무는 나의 비밀을 끝까지 지켜주는 의리있고 입무거운  벗이기도 하다.
나무은 언제나 어느 때나 찾아가도 나를 바쁘다고 외면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무는 힘들고 지칠때는 더욱 나의 위로가 되어주는 부모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무는 잠을 들 때도 잠에서 깨어날 때도 변함없는 얼굴로 365일 나를 하나의 얼굴로 대한다.
 나무는 내 인생의 내비게이션 같은 존재다.
나무를 심으면 심을수록 이세상은 모든이들에게 축복의 평안한 안식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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