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초심
나무의 초심
나무 심는 나무꾼은 나무도 생각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 생각이란 생물들의 생각이고 생물의 생명이 다하면 생물의 생각도 그것으로 끝이다. 란 생각이다.
동물이나 식물이나 생명이 있는 생명체의 생명이 사라지면 생각도 사라질 것이다.
식물이 광합성이라는 위대한 생명 작용 덕분에 동물이 살아갈 에너지를 얻을 수 있고, 동물은 에너지 순환을 통해 식물이 필요로 하는 생명 물질을 분비해주니 서로서로 필요에 의한 불가분의 관계임은 틀림이 없어 보인다.
식물계의 삶이란 바로 이러한 광합성 작용에 의해서 만들어진 탄수화물과 산소, 그리고 뿌리에서 흡수한 양분을 가지고 미토콘드리아에서 일어나는 호흡 과정을 통해서 생장과 발육에 필요한 에너지와 모든 골격을 이루는 DNA, 지질, 단백질 등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동물은 생명유지가 간단하다. 식물을 에너지원으로 하고 생명을 이어간다. 그러므로 사람과 동물들은 식물들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이어야 한다.
식물과 동물들의 생명활동이 곧 생각이고 생각이 있다는 것은 살아있어 생명이 있다는 것이다.
생명의 활동이 있다는 것은 생각이 있다는 고 나무 심는 나무꾼은 생각하고 믿고 있다
생명 있는 나무의 초심을 나무꾼은 이야기하고 싶다.
나무의 초지일관(初志一貫)이란 처음에 세운 뜻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나무의 삶을 말을 하고 싶다.
나무의 초심불망(初心 不忘)이란 나무의 삶이란 말도 생각하고 싶다.
나무의 초지일관(初志一貫) 초심을 잃지 말고 초심을 잊지 말자는 뜻도 생각해볼 일이다.
나무들의 철석간장(鐵石肝腸:단단한 의지) 이 또한 초심을 잊지 말고 잃지 말자는 이야기 같다.
나무들은 싹이 트고 뿌리를 땅에 박고 잎이 나든 첫 생명 시작의 삶이 시작에서 생명을 다하는 날까지 초심으로 살아가는 듯하다.
자기주장 하나 없이 10년, 100년, 1,000년을 자리 한번 옮기지 않고서도 열심히 열정적으로 살아간다.
정말 초심을 잃지 않기란 쉬운 일도 아니고 기억을 하는 것조차도 어려운 일이다.
동물이나 식물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에 있어도 많은 부분에 접목이 되는 말이 초심을 잃지 말자'라는 말인 것 같다. 그만큼 처음 내세운 다짐, 작정, 결심, 계획 같은 그런 처음의 마음이 강하게 자리 잡혀 있어야 나중에라도 어떤 장애물이나 변수가 와도 초심을 생각하고 흔들리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처음 먹었던 마음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우리 들은 늘 대부분 작심삼일(作心三日)이다.
사람들은 오늘 결심한 것을 삼일을 견디지 못하고 포기하는 삶이 대부분인듯하다.
책 좀 읽자고 책상에 앉으면 책상이 정리가 되지 않아 책상 정리하고 나면 작심삼일이 아니고 책상 치우는 단 몇 시간의 수고로 끝이다.^
이처럼 굳은 마음이 한결같이 늘 실천하고 실행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식물들은 다르다.
식물들에게는 “포기란 없다.”
나무는 씨앗이 발아하고 뿌리 근과 싹이 트고 나면 초심대로 평생을 사는 것 같다.
나무는 태어난 곳에서 평생을 사는 것이 그렇고
나무는 태어난 곳에서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자라는 모습이 그렇고
나무는 태어난 곳에서 열심히 열정적으로 후회 않고 살아가는 모습이 그렇다.
나무는 태어난 곳에서 수많은 일 들을 보고 듣고 누구에게도 지키는 비밀이 그렇다.
나무는 태어난 곳에서 10년, 100년, 1000년을 지나도 초심은 그대로다.
나무는 태어난 곳에서 수많은 환경의 변화를 겪어 가면서도 초심으로 산다.
나무는 태어난 곳에서 어떤 환경이라도 다음 세대를 위한 헌신적 삶에 충실하다.
나무는 태어난 곳에서 자신의 마음 온도를 화가 나도, 즐거워도 조절할 줄 안다.
나무는 태어난 곳에서 나이가 들수록 마음은 따뜻하게 줄기는 부드럽게 살려 한다.
나무가 남처럼 살아도 윤리적이고 도덕적이고 양심적이며 순리대로 산다.
나무가 이리도 바르게 공의롭게 사는 것은 창조주의 삶 같다.
첫째는 나무가 초심을 잃지 않음이고
둘째는 나무가 단 한 번도 열심히 열정적으로 살지 않은 때가 없고
셋째는 나무가 뒷심이라 할 수 있는 나무의 인내심이기도 한듯하다.
그중에서 제일 중요한 마음이 나무의 초심인듯하다.
그 이유는 초심 가운데
열심과 뒷심 열정과 인내 은근과 끈기 담담함이 담겨 있기 때문인듯하다.
초심에서 열심히 나오고, 초심에서 열정이 나온다.
초심을 잃지 않을 때 열심과 열정 그리고 희망과 꿈의 뒷심도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나무 심는 나무꾼의 초심!
심는 나무꾼이 이야기하는 초심이란? 初志一貫이다.
식물을 생각하고 식물 중에서도 나무를 비유한 이야기란 점을 말씀드린다.
이 글을 읽는 분들께서는 나무를 비유한 초심을 이해를 하며 읽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나무꾼의 초심 이야기는 씨앗을 심기 위해서 씨앗을 뿌릴 밭을 갈아 두렁을 만들고, 두렁을 고르고, 밭두렁에 씨앗을 심고 거적을 덮고 심은 씨앗이 잘 크도록 물도 주고 거름도 주고 약도 주어야 한다. 때로는 약도 살충제와 살균제를 치기도 하고 영양제도 때로는 주어야 한다 때로는 잡초도 뽑아주고, 지 주목도 세우고, 태풍이나 많은 비를 대비하기도 하여야 하고 수확을 하기 전까지 더 많은 수고를 하여야 한다.
초심도 다양하다. 초심도 가지가지 여러 가지다.
농사를 짓는 초심, 공부를 하는 초심, 운동을 하는 초심, 사업을 처음 시작하는 초심, 공무원이 된 공무의 초심, 초심도 사는 방법도 초심의 종류도 참으로 다양하다.
초심이란 처음 만나 인사하고 알아가는 마음이다.
초심이란 처음 새로운 학문을 배우는 마음이다.
초심이란 무슨 일을 시작할 때 처음 품는 마음이다.
초심이란 누군가 처음에 다짐하는 마음이다.
초심이란 첫사랑의 초심도 있다. 첫눈에 반한 사랑의 마음이다.
초심이란 처음으로 대하는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이다.
초심이란 어린이들의 계산적이지 않는 동심 같은 겸손한 마음이다.
초심이란 새로운 방법과 방식을 배우는 첫 견습생이 품는 마음이다.
초심이란 가장 지혜로운 삶을 영원한 초심자로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
초심이란 식물들 같아서 물이 필요할 때 물도 주고 영양분이 적을 때는 비료도 주고, 벌레들이 침입하고 공격하면 농약이라도 주어야 할 일이다.
우리가 무엇이 되고자 하고 목표의 그 무엇을 이루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위험한 때이다.
그때 우리가 점검해야 할 마음이 감사하고 겸손한 초심이다.
우리 인생의 위기는 초심을 상실할 때라고 한다.
나무는 초심을 잃을 때가 없는듯하다.
나무에게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할 일이다.
나무는 살아있다.
나무는 언제나 초심으로 살며 초심을 생각한다.
나무는 초심을 상실했다는 것은 교만이 싹트기 시작한 시기라는 것이다.
나무는 생각한다. 초심이 사라지는 만큼 마음의 열정이 식기 시작한다고.
나무는 생각한다. 초심이 사라지고 겸손이 사라지면 배우려는 마음도 도망가고 만다고
나무는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 매일매일 기도하는 모습이다.
나무는 기도 후 초심과 얼마나 거리가 떨어져 있는지 확인을 해보라는 것 같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은 아닌지?
나무는 우리에게 초심(初心)을 상실하지는 않았는지 뒤돌아 보라고 하는 듯하다.
나무는 dfl와 남같이 살면서도 우리들이 초지일관이 되지 않는다고 나무라는 듯하다.
초심은 사랑과 우정 같아서 날마다 연락하고 기도하고 가꾸지 않으면 안 된다.
초심은 사랑과 우정 같아서 날마다 기름 치고 닦고 청소하고 관리해야 한다.
초심은 누가 말하듯이 전등 불빛이 아니라 촛불과 같아 화재의 위험도 있고 작은 바람에도 꺼질 수도 있다고 한다.
나무도 사람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좋아한다.
찬 것보다는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을 누구나 좋아한다.
그래서 책상도 식탁도, 방바닥도 나무를 즐겨 깐다.
나무도 차가운 겨울보다는 여름을 좋아하고 사람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자를 더 좋아한다.
나무는 누구에게도 다정하고 여유롭다. 사람도 따뜻한 다정한 사람이 친절하고 여유롭다.
나무는 봄이 되면 싹이 뜨고 잎이 난다. 사람도 봄이 되어야 밭일을 시작한다.
나무는 분별력이 참으로 대단하다.
그러나 누구를 비판도 칭찬도 하지 않는다.
나무는 절대 과식, 과음, 과로를 하지 않는다.
사람이 꼭 배워야 할 일이다.
나무는 누구와도 친구다.
왜냐하면 남을 비판하거나 판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도 친구를 이웃을 지나치게 비판적인 사람은 주위에 사람이 친구도 이웃도 사라진다.
나무에게 배워야 할 지혜와 철학이 참 많은듯하다.
하루 한 번 부모에게 전화로 인사드리는 초심은 누구나 가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나 초심도 초지일관 (初志一貫) 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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