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피는꽃
봄이 오면 왠지 마음이 설렌다.
봄이 오면 산천에 피는 봄꽃이 생각난다.
봄꽃이라 하고 봄꽃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꽃이 제비꽃같다.
겨울에 피기도 한다는 복수초 꽃도 봄꽃이라 할까? 겨울꽃이라 할까?
봄에 피는 꽃 대부분은 가을에 씨가 떨어져서 싹이 터 겨울을 나고 봄에 새움이 돋아 꽃이 피는 두 해 살이 풀이거나, 땅속에 뿌리나 줄기만 남아 겨울을 나고 봄에 온도가 조금씩 오르면 새움이 돋아 꽃이 피는 여러해살이풀이고 목본인 나무들이 그렇다. 식물들은 계절의 변화를 동물들보다 예민하게 잘도 느낀다. 봄철에 피는 꽃은 추위를 안고 피는 꽃이라서인지 더 반갑고 애처롭기도 하고 아름답고 예쁘다. 겨우내 보지 못한 녹색이라서 인지 봄꽃은 꽃들이나 풀들이나 나무까지 모두가 신기하고 반갑고 예쁘고 다른 꽃들보다도 더 매우 화려하고 선명한 색깔이 보인다. 우리들의 눈이 오랜만에 호강해서일까 싶다.
봄이 되면 꽃을 피우는 나무들이 해당화 나무, 산수유나무, 생강나무, 목련 나무, 매화나무, 개나리 나무, 벚나무 진달래, 철쭉나무, 영산홍 나무, 살구나무, 배나무 등 서로 앞다투는 듯 바쁘다. 아직 생각나지 않아 잊은 나무의 꽃들이 있을 수도 있다.
꽃밭에는 수선화, 팬지, 튤립, 히아신스, 금잔화, 아네모네, 데이지 등등
봄꽃들은 이름을 다 몰라서 그렇지 참 많다.
꽃을 추운 초봄에 나무꾼이 이야기하는 이유는 누구나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좋아하듯이 자기를 알아준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동물만 그럴까 아니다 식물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반길 일이다.
이른 봄에 피는 꽃은 좋은 계절에 필 줄 몰라서 이 추위에 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전편에 허세라는 글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식물들은 허세를 모른다.
식물들은 늘 조용하고, 생기롭고, 엄숙하고, 겸손하고, 여유롭고, 조용하다,
그뿐인가? 분노하지도 않고 조급하지도 않으며 욕심을 더 많이 내지도 않는다. 진지하여 성소 같은 마음이다. 그뿐인가?
식물들은 당당하며, 조용하고, 진실하고, 성직자보다도 더 단정하고 생각이 깊은듯하다. 나무꾼으로서는 식물들을 나무랄 때가 없다.
식물들은 봉사하는 삶이고 그러면서도 성실하고 근면하다. 긍지를 가지고 자존감을 가지고 품위를 지키며 살아가는 식물들의 모습은 사람들이 본받아야 할 일이다.
식물들은 허영도 허세도 모른다. 오로지 자조적이고 창조적인 삶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선물할 때 식물들의 꽃을 선물하는가 보다.
누군가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이 고귀한 식물들의 꽃이라고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흔히 꽃은 아름다움의 대명사로 사람들의 사회에서는 그리 생각하고 누구나 꽃을 선물하면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고 좋아들 한다.
그러고 보니 나무꾼은 지금의 나이를 밝히기는 미안하고 아직도 꽃을 선물해본 적은 딸, 아들 학교 졸업식 때 축하용으로 사본 것이 전부다. 누구에게도 생화를 사서 선물해본 기억은 잊어서일까 아직은 없다.
왠지 꽃을 선물하기는 낭비 같고 식물들의 중요한 부분을 자르는 듯하여 미안한 마음이다.
여하간 식물의 꽃은 아름답다. 그중에서도 장미는 美의 상징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는 땅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그리스의 장미(Rose) 섬에 씨를 뿌려 장미를 탄생시켰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장미는 아프로디테를 상징하며, 사랑과 아름다움, 욕망을 뜻한단다.
여하간 꽃이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아름다움을 계속해서 오랫동안 볼 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한듯하다.
화무십일홍이라 하지 않는가?
세상에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다.
권력이 그렇고, 복지가 그렇고, 공짜는 다 그렇다. 왜냐하면, 세상에 공짜가 어디에 있겠는가!
대가없는 결과도 없다. 겨울을 대가가 봄이고, 봄의 댓가가 여름이고 여름의 댓가가 가을같다.
공짜는 받기를 좋아할 일이 아니라 공짜는 주는 者를 경계하고 나무라야 옳은 일이다.
대가 없이 받는 것은 하나도 없다.
선물은 감사와 격려 품앗이 성격이라도 있다.
봄꽃의 아름다운 생명을 보면서 아름다운 생명을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자
꽃이 예쁜들 부모님의 웃음 지은 얼굴만 하랴!
그렇다. 꽃보다 아름다운것이 있다면 주름진 미소 가득한 부모님 얼굴이고 사랑하는 가족 얼굴이라하고싶다.
3.1절을 보내면서 선열들의 감사보다 하루를 휴일처럼 보낸 자신이 죄송한마음이고 수많은 공중파도 그날을 기리고 태극기 달아보자는 이야기는 먼 옛날 이야기가 된듯하다. 3.1절을 지나 3.1개월을 더지나면 6.25 날이다. 그날만이라도 태극기 달고 선열들의 고마움이라도 반추( 反芻)하고 생각하는 하루가 되기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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