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나무를 생각하다.
겨울나무를 생각하다.
나무꾼의 생각 없는 생각이다.
겨울나무 나무의 밤샘추위에 아침 햇살을 밤새 얼마나 기다렸을까?
나무들은 겨울이라는 자연에 대한 수많은 빅 데이터를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
나무는 인간에 대한 수많은 빅 데이터를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
그러면 사람들은 나무에 대한 빅 데이터를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
아니 인간들이 나무에 대한 빅 데이터를 얼마나 아는지 알고싶고 묻고 싶다.
기온이 영하를 오르내리는 겨울 날씨에 나무들은 겨울 보내기를 사람들 처럼 내의도 없고 외투도없이 어떻게 버틸지 추운 겨울을 싫어하는 나무꾼은 더 조바심이다.
사람들이야 내의에 휴대용 난로에 코트로 체온을 36.5도에 맞추어가며 겨울을 무장하기도 한다.
나무꾼이 볼때는 나무들은 별도의 겨울 준비를 하지도 해 주는이도 아무도 없지만 단지 여름에 햋볕을 피하려 나무그늘을 찾아걷고 가을에는 예쁘고 맛있는 과일 열매를 수확하여 맛있게 먹으려는 희망과 기대만을 하고 있는 조금은 양심이 없다고할만큼 얼굴 두꺼운 우리들이다.
우리들은 나무를 볼수록 마음이 편하고 알수록 고맙고, 함께할수록 사랑스럽고 신기하다는 사람들이 많다.
나무들도 여름에는 여름더위를 잘 견디고 열심히 살아왔고, 겨울을 맞이하여 영하권의 일기를 어떻게 동상도 걸리지 않고 얼어서 동해를 입지도 않고 봄이되면 신기하게도 겨울의 고생이 없기라도한듯 자연을 노래하고 자연을 아름답게 치장까지 한다.
영하권의 추위에도 춥다고 엉석을 부린적도 없고 영하권의 겨울을 탓한적도 없다 이 추운 겨울에도 아침 햇살이 찾아 들기전 미소로 희망을 노래하는 나무같다. 자연을 찬양하는 나무 같다. 아니 어린아이들이 감기들라 걱정하는 나무같다. 새삼 사람들이 나무에게 너무 하다는생각이다. 참으로 인정이 없는듯하다. 아무도 나무의 추위를 걱정하는 이가 없는듯하다.
그래도 인간과 나무는 서로 말은 하지 않아도 거대한 생각의 연결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그 연결망이란?
바로 내가 나무를 아는 것이고 이해하는것이고 나무들의 도움을 받고자 우리가 나무를 생각하는 그 것이다.
그래서 길가의 낙옆을 쓸어주고 가로수의 가지치기를 하고 때로는 옮겨심기도 나무에 병을 예방하고 벌레들을 퇴치하기 위하여 살충제도 치고 균을 죽이기 위해 살균제 약을 치기도 한다.
나무를 생각없는 생각으로 잘못 보면 생물적 관점으로 잘못 생각하면 허상 일수도 있다.
과학과 예술은 참으로 인류 사회에 대단한 가치가 있는 것 같지만 자연보다 낫지도 나을 것도 없다는 말을 나무심는 나무꾼은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가 나무와의 연결 고리가 있는듯 없는 듯 모르고 살아온 지금까지의 무지함과 생각 없이 살아가는 행동에 대한 생활에 대한 문제를 지금 부터라도 나무들을 사랑하고 식물들을 관심있게 풀어가야 할것같다.
자연의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보다 우리들이 잘 생기지도 않았고 잘난 것도 없다. 우리들은 자연에서 나무에서 조금도 더 나은 것도 없는듯하고 자연의 굴레에서 우리들은 영원히 벗어나지를 못하면서도 왜이리 도도하고 당당한지 무식해서 용감한지도 모를일이다.
삶이란는 것이 나무와 인간의 관계 속에, 우주적 근원과 자연적 재료와 아름다움을 더하고 생명에 부여하는 자연적 관계 속에 수 많은생물들이 도움을 받는지도 모르고 도움을 서로 공유하고 사는지 조차도 세세히 잘 모르고 무지한 삶을 지금 이순간도 살아가고 있는듯하다. 우리들은 自然의 소중하고 귀중함을 바로 알고 정확히 알아야 할 것이다. 자연의 풀 한 포기 조차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풀한포기 나무 한 그루의 고마움은 공기를 마시며 숨을 쉬면서도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고 사는 것과 같다. 지금부터라도 공기의 고마움 빛의 고마움, 밤과 낮의 고마움 물과 산소의 고마움 자연과의 공유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한 자연 사랑이라고 환경을 보호하는일이라고 말 하고싶다.
우리는 나무가 부르는 행복한노래와 자연이 부르는 행복한 생명의 노래를 떠나서 살 수 없다.
이 행복한 나무의 노래가 이 행복한 자연의 음악이 우리를 모두모두 행복하게 하는 건강하게하는 시간들이다.
우리의 윤리는 생명윤리적 속함의 윤리여야 한다. 외냐하면 생명을 가진 생물들은 자연의 질서가운데 살아가고 자연의 품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자연 속에서도 자연의 신선한 경쟁이 있다.
자연 속에서도 자연의 정직한 질서가 있다.
자연도 자연의 신선한 도덕적인 생각이 있다.
자연의 고맙고 아름다운 멋과 사랑이 있다.
자연의 아침이 있고, 밝은 하루와 자연의 저녁이 있다.
행복한 아침에 맛있는 식사를 하며 자연을 감사해야 하고
행복한 요리와 요리의 향기를맏으며 자연에 감사해야 하고
자연의 행복한 노래를 들으며 행복한 분위기에 영혼이 춤추는 마음이다.
이 글을 쓰는 나무꾼이 말을 하면서도 우리의 행위가 온 세상의 생물들의 그물망을 끊고 멋대로 연결하고 마모시키는 현실의 세계다. 이러한 질서의 비 非가치는 더더욱 긴박한 자연의 세계 나무들과 모든 식물들의 소리 없는 명령이고 침묵의 가치이고 침묵의 대가가 될것이다.
나무들이 침묵한다고 나무들을 우습게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영악한 인간은 언제나 탐욕으로 가득하여 교활하고 사람을 속이고이웃을 속이지만 침묵하는 국민들은 침묵 가운데 온갖 사랑의 마음으로 나라 걱정이다. 참으로 미묘한 일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죽드라도 거짓말은 하지 말라고 우리들에게 가르치셨다.
나무들은 최소한 자기들만의 욕구를 채우려 애쓰지는 않는다.
나무들은 침묵하며 살아가도 자기 할 일을 다 한다.
나무들은 침묵하며 살아가도 생명과 기운을 다 하여 이웃에게 봉사한다.
나무들은 침묵하며 살아가도 스스로 삶을 터득하며 공의롭게 살아간다.
나무들은 침묵하며 살아가도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 미소지으며 살아간다.
나무들은 침묵하며 살아가도 이웃에 피해나 실수보다는이해심으로 살아간다.
나무들은 침묵하며 살기에 누구보다 당당하고 자유롭고 행복한지도 모르겠다.
나무들은 침묵하며 살기에 더 아름다워 보이는 지도 모를일이다.
나무들은 침묵하며 살기에 움직이지 않기에 낭비가 적은 듯하다.
나무들은 침묵하며 살기에 동물들 보다도 사고思考도 더 많을 것이다.
나무들은 침묵하며 살기에 다툼도 없이 편안한 삶인가보다.
나무들은 침묵하며 살기에 여유로운 삶이다.
나무들은 침묵하며 살기에 아름다운 삶이다.
나무들은 침묵하며 살기에 더 사랑스럽다.
나무들은 침묵하며 살기에 비밀이 보장된다.
여하간 자연의 위대한 연결자인 나무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은 식물들과 관계 속에, 근원과 재료와 아름다움을 생명에 부여하는 관계 속에 깃드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모든 자연 현상이 슬기롭고 아름답고 정당하다 우리가 좋은 것과는 별개 문제다.
나무는 지혜롭고 영리하고 똑똑하고 자유롭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것이며 늘 나누는 도움과 배려하고 봉사하는 삶 그러면서도 한시도 쉬지 않고 창조하고 나누며 사랑하고 함께하는 돕는 이해하는 삶이다.
나무에게 인간이 배울 일이다.
그래도 나무는 침묵하며 자기할일 다한다.
나무는 인간들에게 그때그때 살아서는 신선한 공기로, 깨끗한 산소로, 음이온으로, 피톤치드로, 테르펜로, 세로토닌으로 목재로, 꿀로, 산소로 열매로 수없이 많은 혜택을 사람들에게 주고 있으며
죽어서도 책, 책상, 걸상, 연필, 노트. 책꽃이, 나무수저, 농자재, 건축재, 토목재료, 선박재료, 등등 종류로는 약 2,500가지의 생필품에 기여하고 도움을 주고있단다. 특히 고무나무의 천연고무는 사람들의 생명을 다스리는 병원균이 번식도 기생도 못하는 수술용 고무장갑, 어린이 우유 먹는 젖꼭지, 생리적인 도움을 주는 재료와 합성고무인 재료는 차량 바퀴를 비롯하여 수많은 고무재품들만 1,000가지 이상으로 인간생활에 혜택을 주고 있다고한다. 고무제품의 바퀴의 기적은 엄청난 인간들에게 혜택을 주고있다.
단지 인간들이 무관심으로 살아갈 뿐이다. 당장 자동차를비롯한 운반도구를 생각해보라
받으면서도 받는지도 모른다. 고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고마음의 행동은 이율배반적이다.
필요하여 사용하고 소비하는 사람들도 어찌보면 모두가 무관심의 주인공들이다.
맑은 공기로 호흡을 하면서도 숨 쉬는 맑은 공기에 아무도 관심이 없다.
생각이 있다면 자동차 공회전을 할수있겠는가?
환경을 생각하는 생각이 있다면 흡연자들이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리겠는가?
환경을 생각하는 생각이 있다면 길거리에 침을 함부러 뱉을수가 있겠는가?
환경을 생각하는 생각이 있다면 분리수거를 좀더 신경 쓰지 않겠는가?
환경을 생각하는 생각이 있다면 1회용 용품을 생각없이 자기만을 위해 사용하겠는가?
환경을 생각하는 생각이 있다면 자율배식 식당의 잔반찬을 남기고 버리겠는가?
환경을 생각하는 생각이 있다면 공짜라고 절제없는 낭비를 하겠는가?
환경을 생각하는 생각이 있다면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리겠는가?
환경을 생각하는 생각이 있다면 공짜라고 주는 돈을 함부러 받아 쓰겠는가?
정부에서 주는 몇푼의 공돈아닌 공돈같은 돈을 받으며 자식보다 낫다는 말씀을 하시는 생각없는 어른들의 모습의 사회를보며 나라가 폭망하지 않는것이 신기하고 이상하다.
한국 대형교회에서 좀더 공의로운 사회를 위하여 헌신하는모습은 모이지 않을까?
누구를 위한 공의로움을 이야기하고 강의 하는지 공의로움의 대상이 누구인지 알수가 없다.
행정기관에서 앞장서지 못하고, 언론 방송이 물질의 이익 때문에 앞장서지 못하는것을 교회마저방종(放縱)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인들 세상에 전파 될까 의심스럽다. 교회가 교회이익만을 위한 교회이고 신앙이라는 가림막이에 가리워 진다면 세상은 구원은 없다. 용서받지 못할것이란 생각없는생각이다.
그런데 몇 일전 미세먼지, 초미세먼지가 나쁨, 매우 나쁨의 공지에는 모두가 맑은 공기를 마시기 위해 마스크를 사서 쓰고 좋은 공기를 마시려는 맑은 공기로 숨쉬려는 사람들의 생명 건강의 소중함에 환경을 탓만한다. 나쁜 공기의질 그 환경은 그들이 오염의 주인공이다.
환경의 탓은 하면서도 곧 닥아 올 봄에 나무 한주 더 심을 생각은 무지한 탓인지 양심 없는 탓인지 자연의 고마움을 알면서 모르는체 하는 것인지 아에 생각이 없다. 아니 몰라서 생각을 하지 못한 것 같다. 나무한주 심지는 않드라도 공중질서라도 지키라는이야기를 하고싶다.
환경의 탓은 하면서도 쓰레기 분리하는 날 프라스틱 제품 일회용품 과용, 오용으로 쓰레기가 산을만든다.
환경의 탓은 하면서도 음식물 쓰레기는 하루하루 날로날로 늘어만 간다. 절제하고 절약해 보자
환경의 탓은 하면서도 대중교통 이용보다는 모두가 자가용이다. 그것도 외재다. 접촉사고만나도 엄청난 쌍방피해다.
환경의 탓은 하면서도 물을 낭비하는 것을 보면 가슴 아프다. 물들의 표정을 생각해 보았는지 묻고싶다.
환경의 탓은 하면서도 1회용품 사용은 늘어만 간다. 최소한 1회용품 하나라도 아껴쓰고 줄여쓰자
환경의 탓은 하면서도 언론 방송은무엇을 하는지 캠페인도 없다. ..........관심도 없다.
환경의 탓은 하면서도 사명감은 지체 하고라도 도덕적 양심도 체면도 없다.
환경의 탓은 하면서도 얼굴 두껍게 사는 사람들이 철면피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미웁고 원망스럽다.
여하간 식물들의 고마움 식물들의 하는 일에는 많은 인간 들이 아무른 생각도 아무도 관심이 없다. 자연과 나무는 자기들의 수고에 대가를 요구한적도 없고 배당금을 산출하여 돌려 달라고 하지 않는다. 모든 종의 경제가 전부 자연 안에 담겨 있는데도 말이다.
자연은 좋은 집이 필요 없다. 자연이 곧 집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사랑스런 자연을 자각하지 못할 때조차 우리는 자연에서 살고 있다.
인간이 이 자연 세상에 속해 있음을 이해하면, 모든 생물들의 생명의 존엄성을 생각해야 옳은 일이다.
그래도 날씨가 영하이고 차량의 매연이 괴로워도 나무는 당당히 서서 좋은 봄이 온다는 희망 하나로 버티고 서 있다.
영하의 날씨로 살을 애이는 추위와 아픔을 견디고 영하의 추위에도 거적 하나 걸치지 않고 참고 인내하며 침묵하는 나무에게 고맙다는 따뜻한 사랑의 마음이라도 가지고 살자.
북풍에 밀려 흘러가는 구름을 보면서 나무는 무엇을 생각할까?
가슴 펴고 햇살을 맞으며 침묵으로 날아오르는 새 한 마리를 기다리는 듯하다.
나무는 새가 노래하는 무대가 되어주고, 하늘에 오선지가 되어주는 나무는 정말이지 나무랄 데 없는 나무가 오늘따라 더없이 존귀하게 느껴진다. 나무꾼의 생각없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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