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자연성 회복
잃어버린 자연성 회복
잃어버린 자연성의 회복은 곧 건강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인간 존엄성의 회복입니다.
그렇다고 옛날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닙니다.
성웅 이순신장군을 이야기한다고 조선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듯이
그 분을 바로 알고, 배우고 ,감사하며 그 정신을 이어 받자는 것입니다.
고 박정희 대통령 이야기를 한다고 유신시대로 돌아가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분의 국가를 발전시킨 열정과 부지런한 마음, 새마을정신을 바로 알고 배우자는 것입니다.
현대 의학을 부정하는 것 또한 아닙니다.
다만 현대 산업화의 결과를 지나치게 의존함과 오남용을 최대한 줄이자는 것입니다.
잊고 살고, 잃어버리고 살아온 자연성을 회복 하자는것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자는 이야기입니다.
맑은 공기와 물, 채소 식자재들 아직도 힘들게 잘 버티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 큰 축복을 원한다면 그것은 욕심입니다.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우리는 아쉬움이 없이 살아왔습니다.
공기가 좋아서, 산이 좋아서, 자연의 고마움을 잊고 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산이 없는 나라에서는 산이 그리울 것이고, 숲이 없는 사막에서는 나무 한그루, 물 한 모금이 그리울 것입니다.
최근의 기상이변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만 기상이변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저질러 놓은 결과로 인해 기상이 반응하고 있을 뿐입니다.
도로개발포장, 자연이용, 온실의 특수재배, 점령, 고층빌딩 건설 등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산불조심, 자연보호, 환경운동을 힘주어 말합니다.
이제 더 이상 그냥두면 안될 것 같으니 보호하자는 것 아닌가요?
자연은 애초부터 보호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들이 자연의 보호를 받고 살고있고 살아가는 자연의의 보호대상입니다.
지금까지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잊고 필요한 무생물로 착각하며 살아온 것입니다.
우리는 자연 속에 함께 살아야 하는 공동 운명체입니다.
누가 누굴 보호한단 말인가요?
보호를 받으면서 보호를 한다고 하는 것은 마치 민주주의를 누리면서 반 민주주의를 자행하는 운동권자들과 같습니다.
보호란 강자가 약자를 보살피고 도와주는 것 아닌가요?
주객이 완전 거꾸로 되어 있습니다.
자연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경외함으로 자연이 주는 아늑함을 맛보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찾고 살아야 할 곳이 어딘가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곳은 자연이요 숲입니다.
산에 가면 명상은 절로 됩니다.
숲속을 혼자서 걸어보십시오
가지 끝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바라보십시오.
얼굴을 스치는 바람을 우주의 신비를 느껴보십시오
작은 새소리가 귓전을 스치는 느낌을 느끼고 들어보십시오.
명상이 따로 없습니다.
이것이 곧 명상이고 잃어버린 자연성의 회복입니다.
이것이 숲이 주는 축복이고 영성이며 우주와 교감하는 순간입니다.
오감과 영성, 우뇌가 열리면 창의성이 깨어난다고 합니다.
누구나 숲속에서는 마음이 차분해지고 넉넉해집니다.
숲속의 생활 자체가 명상입니다.
잃어버린 자연성을 되찾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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