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오를 산은 거기있다
내가 오를 산은 거기있다.
마음이 답답하고 컬컬할때 문득 산에 오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본능적인 생각인가?
자연은 인류에게 크고도 진보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자연을 통하여 얻어쓰고 만들어 쓰는 도구는 우리들 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었고, 우리들은 자연이 주는 먹이와 도구와 재료를 통하여 기술을 배우고 도구를 만들어 진화해 왔다.
우리가 자연을 통하여 자연환경에서 먹을 거리와 거처를 구하는 방법을 터득하였고 자연과 진화해 온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몸에는 우리가 가진 도구를 활용해 우리 자신을 개선할수 있다는 믿음이 깊이 배여있는 듯하다.
그러한 DNA가 만들어 진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스마트폰이 태블릿PC,기타 스크린기기 전자기기들의 소중한 정보들은 언제나 어디서나 제공해 주리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앉아서 천리를, 만리를 볼수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기구들이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와 함께 진화해 온 도구들이고 연장선이고 그러다 보니 우리는 스크린 시대가 좋은점만 생각하는것이 아주 아주 많을 것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다.
우리는 스크린 기기앞에서 전자기기들 앞에서 생활하면 더 편리해지고 더 나아질것이라는 기대에 기기들을 구입하고 여가 시간이 아주 행복해 지고 인간의 관계에서도 공감과 관계성이 넘치며 다양한 정보에 바로 접근할수있는 생활이 더 스마트 해 질것이라고 여긴다.
우리모두가 인정하고 모두가 사용 할 것이다.
착각이다.
환경적으로는 더욱 착각이다.
아이들을 키우고 정직하고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사회 윤리적이고 양심적인 행복하고 자유로운 세상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기계적인 좋은점도 있지만 영상물의 시궁창같은 곳도 있다는 것이다.
쓰레기장 같은 글과 거름덤이 같이 냄새 나는 장면도 있다는 것이다.
기술이 풍부해지고 기술이 고도화된 아주아주 스마트한 세상 신세계에서 사는 우리들이 옛날 이리도 풍요롭지도 못하고 힘들고 지치든 생활보다도 더 많은 스트레스와 불안과 초조함과, 우울하고 산만하고, 허전하고, 답답하고 컬컬한 마음을 격으며 살아갈 가능성이 더 많고 더 높다.
자연과 함께 하든 시기에서는 세계적으로 자살율이 1등까지 가는 세상은 아니 였다는 것이다.
이리도 답답하고 초조하고 불안하고 힘들고 지칠때 자연으로 돌아가 보라
누구에게 얘기하여도 그리 도움이 되지 않을때 산에 가서 나무에게 이야기 하고 올까? 바위에게 얘기하고 올까? 산보고 얘기할까? 하여간 말미에 말을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을 산이 내 이야기를 가장 잘들어 줄 듯하다.
그래서 산을 가는 것은 아니지만 산에가서 나무와 돌을 보고 자연을 함께 하고 가슴에 엉어리진 이야기들을 하지 않아도 산은 먼저 알고 나무는 벌써 알고 기다리고 자연의 풍성한 음이온과 맑은 공기와 피톤치드와 자연자체가 우리들을 치유하고 위로하고 사랑으로 보듬어 주고 있는 듯 하다.
지금 내가 생명을 유지하고 있음도 자연과 더불어 많은 식물들이 생산한 영양분의 덕분이다.
동물들은 식물들이 만들어 놓은 영양덩어리를 값없이 생각없이 감사없이 그냥 먹어치우고 배설한다.
그 뿐인가?
우리가 먹고 입고 잠자고 있는 소재들을 생각해 보라 어디하나 인간들이 만들어 쓰는 것이 몇가지나 되는지 ?
모두가 자연에서 착취하고 자연의 도움으로 모든 재료를 얻어 생할하고 있는 것이다.
집의 골조를 만드는 콘크리트트의 소재인 모래, 시멘트, 자갈도 벽지를 만드는 나무의 원료도 전기불을 켜는 전기도 자연에서 얻고 자연에서 도움을 받으며 살면서 자연에 대한 감사와 고마움은 전혀 없다.
물론 횡설 수설 하면서 이글을 쓰고 우리의 기술에 진보적 삶에 반대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더더욱 이런 전자 기술을 포기 하자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소유하고 사용하는 전자기기의 가치를 겸허히 인정하고 있으며 스마트 폰이 혼동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사용만 잘하면 질서와 도움을 주고 편리함과 시간을 절약할수있음도 인정한다.
인트넷과 인터넷의 연결이 얼마나 우리의 생활에 도움을 주는가?
놀랍고 감사할 뿐이다.
멀리 있는 아들딸 멀리 사는 부모 형제를 잇어 준다. 얼마나 고마운가?
그러나
더 많은 생활 기술과 정보의 흡수만으로 웰빙과 행복이 촉진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영혼을 어루 만지며 인간의 육신을 보살피고 사랑하며 위로하기에는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 하지만 개미한마리의 능력, 벌 한마리의 기술, 풀한포기의 위대함에는 못미칠 것이다.
마음이 답답하고 컬컬할때 문득 산에 오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본능적인 생각인가?
자연은 인류에게 크고도 진보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자연을 통하여 얻어쓰고 만들어 쓰는 도구는 우리들 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었고, 우리들은 자연이 주는 먹이와 도구와 재료를 통하여 기술을 배우고 도구를 만들어 진화해 왔다.
우리가 자연을 통하여 자연환경에서 먹을 거리와 거처를 구하는 방법을 터득하였고 자연과 진화해 온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몸에는 우리가 가진 도구를 활용해 우리 자신을 개선할수 있다는 믿음이 깊이 배여있는 듯하다.
그러한 DNA가 만들어 진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스마트폰이 태블릿PC,기타 스크린기기 전자기기들의 소중한 정보들은 언제나 어디서나 제공해 주리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앉아서 천리를, 만리를 볼수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기구들이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와 함께 진화해 온 도구들이고 연장선이고 그러다 보니 우리는 스크린 시대가 좋은점만 생각하는것이 아주 아주 많을 것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다.
우리는 스크린 기기앞에서 전자기기들 앞에서 생활하면 더 편리해지고 더 나아질것이라는 기대에 기기들을 구입하고 여가 시간이 아주 행복해 지고 인간의 관계에서도 공감과 관계성이 넘치며 다양한 정보에 바로 접근할수있는 생활이 더 스마트 해 질것이라고 여긴다.
우리모두가 인정하고 모두가 사용 할 것이다.
착각이다.
환경적으로는 더욱 착각이다.
아이들을 키우고 정직하고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사회 윤리적이고 양심적인 행복하고 자유로운 세상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기계적인 좋은점도 있지만 영상물의 시궁창같은 곳도 있다는 것이다.
쓰레기장 같은 글과 거름덤이 같이 냄새 나는 장면도 있다는 것이다.
기술이 풍부해지고 기술이 고도화된 아주아주 스마트한 세상 신세계에서 사는 우리들이 옛날 이리도 풍요롭지도 못하고 힘들고 지치든 생활보다도 더 많은 스트레스와 불안과 초조함과, 우울하고 산만하고, 허전하고, 답답하고 컬컬한 마음을 격으며 살아갈 가능성이 더 많고 더 높다.
자연과 함께 하든 시기에서는 세계적으로 자살율이 1등까지 가는 세상은 아니 였다는 것이다.
이리도 답답하고 초조하고 불안하고 힘들고 지칠때 자연으로 돌아가 보라
누구에게 얘기하여도 그리 도움이 되지 않을때 산에 가서 나무에게 이야기 하고 올까? 바위에게 얘기하고 올까? 산보고 얘기할까? 하여간 말미에 말을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을 산이 내 이야기를 가장 잘들어 줄 듯하다.
그래서 산을 가는 것은 아니지만 산에가서 나무와 돌을 보고 자연을 함께 하고 가슴에 엉어리진 이야기들을 하지 않아도 산은 먼저 알고 나무는 벌써 알고 기다리고 자연의 풍성한 음이온과 맑은 공기와 피톤치드와 자연자체가 우리들을 치유하고 위로하고 사랑으로 보듬어 주고 있는 듯 하다.
지금 내가 생명을 유지하고 있음도 자연과 더불어 많은 식물들이 생산한 영양분의 덕분이다.
동물들은 식물들이 만들어 놓은 영양덩어리를 값없이 생각없이 감사없이 그냥 먹어치우고 배설한다.
그 뿐인가?
우리가 먹고 입고 잠자고 있는 소재들을 생각해 보라 어디하나 인간들이 만들어 쓰는 것이 몇가지나 되는지 ?
모두가 자연에서 착취하고 자연의 도움으로 모든 재료를 얻어 생할하고 있는 것이다.
집의 골조를 만드는 콘크리트트의 소재인 모래, 시멘트, 자갈도 벽지를 만드는 나무의 원료도 전기불을 켜는 전기도 자연에서 얻고 자연에서 도움을 받으며 살면서 자연에 대한 감사와 고마움은 전혀 없다.
물론 횡설 수설 하면서 이글을 쓰고 우리의 기술에 진보적 삶에 반대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더더욱 이런 전자 기술을 포기 하자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소유하고 사용하는 전자기기의 가치를 겸허히 인정하고 있으며 스마트 폰이 혼동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사용만 잘하면 질서와 도움을 주고 편리함과 시간을 절약할수있음도 인정한다.
인트넷과 인터넷의 연결이 얼마나 우리의 생활에 도움을 주는가?
놀랍고 감사할 뿐이다.
멀리 있는 아들딸 멀리 사는 부모 형제를 잇어 준다. 얼마나 고마운가?
그러나
더 많은 생활 기술과 정보의 흡수만으로 웰빙과 행복이 촉진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영혼을 어루 만지며 인간의 육신을 보살피고 사랑하며 위로하기에는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 하지만 개미한마리의 능력, 벌 한마리의 기술, 풀한포기의 위대함에는 못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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