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안기다
숲에 안기다
산림에서 숲 치유를 한다는 것은 인간과 숲.
숲과 인간이 교감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인간과 인간도 서로의 사랑이 없다면 교감을 할 수 없듯이
나무와 사람은 더욱 더 교감하기가 어렵지 않겠는가?
결론은 아니다.
우리의 긍정적 마음에 달려있다.
나무를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고 아끼는 마음, 보호하는 마음, 사랑하는 관심의 마음만 있으면 나무와 교감하기는 사람보다 싶다는 것이다.
진심을 가슴으로 온몸으로 나무를 사랑하여 보라
숲을 이해하고
나무를 이해하고
치유의 메카니즘을 이해한다면 교감은 벌써 시작 된 것이다.
인간은 욕심이 많아서
생리적인 욕구인 배고픔, 배설의 만족 1차적 생리적 해결이 되면 그 다음 단계인 안전의 욕구가 또 보장 되어야 한다.
생리적 욕구와 안전의 욕구가 만족되면
사랑의 욕구 조직문화의 욕구에 대한 필요성을 느낀다.
사랑의 욕구 조직의 욕구가 채워지면 자존감의 욕구가 또 생긴다. 사랑의 욕구 조직의 욕구 자존감의 욕구가 채워지고 나면 취미나 행복을 추구하는 인지적 욕구가 또 발동을 한다.
그뿐인가?
심미적인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 한이 없고 끝이 없다.
그렇다고 건강에 달라지고 변화하는 것도 그리 없다.
무대 위에서 너무 황홀하면 무대아래서는 공허함 뿐이다.
나무는 어떤가?
나무도 1차적으로생 리적 욕구인 빛과 물이 필요 할 것이다.
나무도 2차적으로 벌레나 곤충이나 병원균으로부터 방어를 해야 하는 안전의 욕구가 있다.
이것이 바로 피톤치드의 발생과 향기를 품거나 테르펜을 배출하는 것이다.
나무도 3차적으로 생리적인 욕구와 안전의 욕구를 충족하면 예쁘고 탐스러운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 자손을 퍼트리는 사랑의 욕구가 필요하다.
나무도 4차적으로 생리적욕구, 안전의 욕구, 사랑의 욕구, 자존감의 욕구를 충족하면 그다음은 어떤 욕구를 더 원할까?
나무도 느낌이 있고
나무도 자존감이 있고
나무도 심미적으로 활동을 한다.
나무도 듣기도 하고,
나무도 보기도 하며
나무도 인간이상의 느낌도 기억도 한다.
나무도 세포를 통해 파동을 감지하고 감각기관이 있는 동물 들 보다도 더 많은 세포로 파동에 민감하다는 것이다.
1분에 20m이상 테라펜 물질을 전달 할수 있다는 것은 이미 증명이 되었다.
예로서 10명이 숲을 지나가면서 그중 한사람이 나무 가지 하나를 꺽었다.
거짓말 탐지기로 파동을 측정하며 10사람을 순서를 바꾸어 지나가게 하면서 나무의 파동을 측정하면 나무 가지를 꺽어 버린 사람이 지나 갈 때 꺽인 나무에 파동은 무서울 만큼 나무의 파동이 요동 친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나무에게 미안하지 안을까 ?
사람의 파동 에너지도 일종의 파동 주파수이며 궁극적인 디엔에이 안테나라고 할수 있다.
사랑하는 마음이건, 증오심의 마음이건 각각의 파동이 있다.
건강의 주파수 질병의 주파수 몸은 자신의 주파수에 공명을 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동물이나 식물이나 내부 환경과 외부를 향해 파동을 표출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꽃도 사랑한다는 말을 듣는 꽃은 더 잘자라고 더 예쁘다고 하지 않는가?
심지어 우리가 먹는 물까지도 사랑하고 미워할 때 결정체가 변하여 선명하게도, 일거러지기도 한다는것 아닌가?
음악을 듣고 자란 식물은 더 튼튼하고 좋은 모양으로 건강하게 자란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의 파동 주파수는 우리 생명력을 생산하며 흐르게 한다.
생명력 자체는 기하적 형태를 갖추고 밀접하게 짜여져 있다, 이는 아미노산의 분자내의 원자적 결합 각도를 형성하며, 또 디엔에이의 헬리컬 형태로 꼬인 구성을 한다. 그 모양은 구체나 사면체, 이중 사면체의 형태를 취하는데 다른 생리적 기능을 위해 다양하게 세포모양을 갖춘다. 디엔에이 분자들이나 눈의 각막, 눈 결정, 솔방울 원뿔, 꽃잎, 다이아몬드 결정, 나무의 가지, 꼬인 조개, 별, 태양, 은하계, 까지도 우리가 아는 모든 생명체는 시간이 없는 기하학 명령에서 발생한다.“ (에너지 이야기 참고)
하여간 자연과의 동조현상 도 신기할 뿐이다.
인간들이나 동물들의 자연치유에 가장 좋은 진동이 자연에너지의 파동 같다. 그리고 우리 몸은 자연에너지의 진동 파동에 맞추어진다는 것이다. 작은 진동들이 주변의 큰 진동에 시간이 지나면 일치하는 실험은 기계적인 실험에서도 우리가 볼 수 있다.
이것이 자연과의 동조현상이다.
인간들의 동조현상도 있다. 예를 들어
오래 전 시외버스 안에서 있었던일이라고 합니다.
버스 기사가 시동을 걸고 막 출발하려던 순간,
승객 한 사람이 버스를 향해 걸어오는 할머니를 발견하고
기사님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저기 할머니 한 분이 못 타셨는데요?"
버스 기사가 보니
제법 떨어진 거리에서 머리에 짐을 한 가득 인 채
걸어 오시는 할머니 한 분이 계셨습니다.
할머니는 버스를 향해 최선을 다해 걸어오셨지만,
연세와 큰 짐 탓인지 속도가 나지 않는 듯 보였습니다.
"어서 출발합시다."
"언제까지 기다릴 겁니까?"
승객은 바쁘다며 버스가 출발하길 재촉했습니다.
그때 버스 기사님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저기, 우리 어머니가 오십니다.
잠시 기다렸다가 같이 가시지요 죄송합니다!"
기사님의 어머님이시라 하니
승객도 더 이상 그냥 가자는
재촉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창가에 앉았던 한 청년이 벌떡 일어나
버스에서 내려 할머니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승객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버스 밖으로 모아졌습니다.
할머니가 이고 있던 짐을 받아 드는 청년.
할머니의 손을 부축하여
잰 걸음으로 버스로 돌아왔습니다.
할머니와 청년이 버스에 오르는 순간,
승객 중 누군가가 박수를 쳤습니다.
그러자 마치 전염된 듯 너나 없는 박수가 이어졌습니다.
버스 기사가 시동을 걸고 막 출발하려던 순간,
승객 한 사람이 버스를 향해 걸어오는 할머니를 발견하고
기사님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저기 할머니 한 분이 못 타셨는데요?"
버스 기사가 보니
제법 떨어진 거리에서 머리에 짐을 한 가득 인 채
걸어 오시는 할머니 한 분이 계셨습니다.
할머니는 버스를 향해 최선을 다해 걸어오셨지만,
연세와 큰 짐 탓인지 속도가 나지 않는 듯 보였습니다.
"어서 출발합시다."
"언제까지 기다릴 겁니까?"
승객은 바쁘다며 버스가 출발하길 재촉했습니다.
그때 버스 기사님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저기, 우리 어머니가 오십니다.
잠시 기다렸다가 같이 가시지요 죄송합니다!"
기사님의 어머님이시라 하니
승객도 더 이상 그냥 가자는
재촉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창가에 앉았던 한 청년이 벌떡 일어나
버스에서 내려 할머니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승객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버스 밖으로 모아졌습니다.
할머니가 이고 있던 짐을 받아 드는 청년.
할머니의 손을 부축하여
잰 걸음으로 버스로 돌아왔습니다.
할머니와 청년이 버스에 오르는 순간,
승객 중 누군가가 박수를 쳤습니다.
그러자 마치 전염된 듯 너나 없는 박수가 이어졌습니다.
인간의 기본적 아름다운 동조현상입니다.
물론! 그 할머니는 버스 기사의 어머니도...
청년의 어머니도... 아니었습니다!
물론! 그 할머니는 버스 기사의 어머니도...
청년의 어머니도... 아니었습니다!
인간은 자연의 품에 안기어야 하는 이유라고 할까
아무리 인간의 과학이 발전 한다 해도 자연과학 만은 못하기 때문이다.
어머니 품 같은 자연의 품, 숲에 안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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