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職者와 聖善木

聖職者와 聖善木

성직자란 글을 그대로 해석하면 성스러운 직업을 가진자를 聖職者라한다.
성직자는 성스런 말을 한다. 성직자 언어도 행동도 성스럽게 하는 듯하다.
사회가 논리적이고 도덕 적이면 그 사회의 구성원도 자신들이 의식을 하지 못한채 논리적이고 도덕적이 된다고 한다.
聖善木 성스럽고 선한 나무를 이리 성선목이라 부르면 되는지 모르겠다.
어느날 나무가 성직자 보다 더 성스럽다는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렸다. 그리고 어느 신앙심이 좋다는 분이 항의 댓글로 나무꾼에게 토를 달았다. 신성모독이고. 창조주의 모독이고 왜 사람과 나무를 동등시하고 나무를 사람보다 낫다고 표현을 하느냐는 것이다.
성스럽다는 것은 일상적이라기보다는 어느 경지를 넘어 거룩성이 있고, 고결 한것을 말하고 싶다. 성스러운 것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늘 한결 같이 거룩하고 신성하고. 바르고, 도덕적 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런 삶이라면 누구도 그를 정상인으로 지성과 인성과 영성을 가진 도덕적인사람 이라 할 것이고 성직자 같다고 할 것이다.
나무가 나무꾼이 보기에는 이렇다. 내면의 성실함도 보이고, 지구와 우주를 이어주는 영성도 있어 보이고 남을 비방하기보다는 침묵하고,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 보다는 남에게 몸까지 내어주며 베풀고 돕는 삶이고 성스럽게 사는 삶 같다.
한국인은 한복을 입지 않는다. 서양에서 입어오던 양복을 대부분 입는다. 한복은 명절에나 입고 경사 스러운 행사를 할때만 입는 사치품이 되었다. 이처럼 한국인의 종교는 한국인의 한복 같은듯하다. 우리들의 삶 가운데는 누가 뭐래도 경제가 늘 함께한다. 그리고 정치가 함께하고, 과학이 함께하고, 기술과 학문 예술, 문화, 스포츠 취미생활이 먼저다. 종교는 특정일 하루한시간이면 끝이다. 양심과 체면과 의무적인 활동같다. 큰 교회일수록 그렇고 부자 교회일수록 그런듯하다. 그곳에 성직자가 있을까 참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환경이 사람 사는데 그래서 중요하다고 한다.
환경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서있는 환경이 바뀐다면 그 바뀐 환경과 비슷한 행동을 한다.
독서실에 있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책을 가까이 하고, 온동 복을 입고 운동장에서면 자신도 모르게 운동선수 같고, 예비군복을 입으면 아주 도덕적이든 사람도 군인이 아닌 예비군인의 행동이 나온다 참 신기하다.
아름다운 사람은 아름다운 말을 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대변하게 된다.
추잡한 말을 하는 사람은 그 인품이 추잡하기 때문이다.
나무를 사랑하고 나무를 아끼는 좋아하는 사람들은 나무의 아름다움과 나무의 신성함과 나무의 정직함과 나무의 베품과 나무의 도덕적인 삶을 보게 되고 그리 보인다. 그리고 나무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들은 나무에 대한 잘못된 생각으로 오해 할 수도 있을 법 하다. 그래서 나무의 표현 방법을 나무라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들의 다른 관점의 생각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싶다.
내가 달리 생각하듯이 그도 그들 나름대로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살아있는 동물도 살아있는 식물도 살아있는 미생물까지도 생명이 있다는 것은 생각이 있다고 보여 진다. 왜냐하면 살아 숨쉬고, 살아서 먹고 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사람도 성스러운 사람이 있고 성직자도 성서럽게 살지 못하는 사람도 참 많다. 겸손 할 줄 모르고 교만하고 자기 생각만 옳다고 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성직자가 아니더라도 고상하면 고상한 말이 나오고 성직자 같은 삶을 살면 성직자처럼 보여진다. 자기가 못하는 일을 남이 하면 시기하기도 질투하기도 한다, 그래서 판단하려든다. 잘못된 근성이다. 못난 사람이다.
사회의 도덕적 수준이 낮으면 낮을수록 개인들도 쉽게 비도덕적이 된다고 한다.
사회가 논리적이고 도덕적이면 그 사회구성원들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채 논리적이고 도덕적이 된다고 한다.
도덕적인 사회 방송이 할 일이고 언론이 할 일이다. 그런데 방송 언론이 그렇지 못한것같다 예를 든다면
사실을 사실대로 전달하는 매체는 거의 없다. 소설을 쓰듯 한다.
특히 방송은 소비자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청취자가 좋아하는 것을 골라 그들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제공하며 방송을 하여 광고수익을 늘이는 것이 먼저 인듯하다.
재미있고 인기 있는 오락프로는 황금 같은 시간에 좋은 시간대에 방송하고 교양방송과 모두에게 유익한 방송은 늦은 시간 잠잘 시간에 한 밤중에 방송하는 것도 문제다.
정보를 전달하는 방송의 사명이 맞느냐고 1인 시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정보를 받는 소비자들의 질이 낮으면 점점 수준 낮은 정보가 많아지고 질이 낮은 방송의 정보는 소비자들의 의식 수준을 더 저급하게 만든다. 그러면 악순환이 연속으로 이루어진다.
그 결과 방송의 질이 낮으면 낮을수록 시청률은 올라 갈수가 있는것 깉다. 아니 올라간다.
우리 언론 방송이 연애인과 운동선수의 꽁무니를 따라 다닐 때 사회의 불법과 부조리를 감시하는 언론방송의 가능은 마비되었고 그래서 생명의 존중이나 도덕성을 함양하는 대는 참으로 무관심했고 언론 방송의 본연의 사명도 잊어버린듯했다. 감히 한마디 더한다면 정치권의 책임보다는 언론 방송의 책임이 더 크다는 생각이다.
사회의 잘못을 방송하고 보도하기 전에 본인들의 사명을 다해 달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다.
사회의 잘못을 이야기하기 전에 모두가 본인들이 하는 일을 도덕적으로 하여 주기를 바랄뿐이다.
나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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