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숭고함

나무의 숭고함
(본문중에서)사실 우리가 잘 의식하지 못하지만 식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단순히 환경적 과학적인 판단만이 아니라 인간의 가치관이 중추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름다운 대한 민국이 무작정 그냥 이대로 자연환경이 난도질을 당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것을 흥미롭고 쾌감을 느끼며 즐기고 있는 남이아닌 나 자신인지도 모를일이다 .무감각하다. 감각이 둔해지고 민첩하지 못하다는것은 죽음을 예고 하는것이다. 그 예고 조차도 무시하는 미련한 사람들은 자연보다 자신이 먼저 죽는사실조차도 모른다.
이제 희망의 봄 꿈을 펼처야 할 봄이다. 몇일 있으면 입춘이다.
그러나 봄을 맞이할 계획도 봄을 맞이할 대책도 궁리도 아직 못하는 나무꾼이다.
생물다양성은 그냥 아름답게 스스로 우글거리며 살아가는 공동체의 모임만은 아니다. 동물과 식물이 서로 의존하고 살아가며 관계를 맺어내는 생태계로, 그 자체가 늘 변하며 생물이 더 다양한 삶의 자리를 열어내 사람들과 동물들이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 때문에 점점 더 복잡해지고 더 아름다워지는 하나의 미래를 상상 할수있는 신천지의 세계인지도 모를 미지의 세상인지 모를 일이다.
장담 하건데 아직 식물의 세계는 우리에게 제대로 다 발견되지 않았다. 지금 식물을 이해 하는 것은 식물을 아는 지식이 모르는 지식에 1/10,000도 안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안해 볼 수가 없다. 봄이 오고 있다 삼일 후면 봄이 또 지나며 새 싹이 트야 봄이 제대로 오는지도 무슨 나무인지도 제대로 알 수가 있을 정도의 동물들이고 사람들이다
나무를 알지 못하는 것도 아닌듯하지만 사실 나무에 대하여 모르는 나무들이 더 많고 무한한 우주의 비밀보다 더 많을수도 있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 중국을 알려면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무를 모르면 숲이 어떤 숲도 제대로 보이지를 않는다.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제대로 알아야 숲도 어떤 숲인지 숲의 장단점도 보일 것이다. 우리는 움직이지 못하고 일상생활이 어려워 병석에 누워 계신 분들을 보고 그 사람을 식물인간이라고 쉽게 말하지만 사실 식물은 사람들보다도 더 감각적이고 더 예민하다. 그리고 매우 역동적이다. 해마다 새로운 세계를 펼쳐내는 나무를 보아도 알 수 있다. 특히 저토록 거대한 덩치가 하늘을 향한 무너질 수 없는 몸짓을 펼치는 것을 보면 나무에 대한 숭고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진정한 숭고함은 모순덩어리요 모순성으로부터 빚어 진다고 하지 않는가? 인간이 미련하고 관심도 의문도 없어그런듯하고, 아둔하여 그렇지  참을 수 없는 자연의 숭고함도 참 많다.
어떤 자물통이 여러개의 열쇠로 열리면 우리는 그 자물통을 쓰레기같은 자물통이라고 한다. 그러나 열쇠하나로 여러 개의 자물통을 열수 있으면 우리는 그 열쇠를 만능열쇠라고 한다.
나무가 하는 일을 보면 만능열쇠보다 더 성질도 쓰임새도 다양하고 영리하고 과학적이고 보배 같다는생각이다.
아직 우리는 식물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아주 미미하게만 알고있다. 우리는 생명을 취하면서 나의 생명만 소중하게 여긴다. 사람이 벌레보다 못하다는이야기는 하면서 사람이 식물보다 못하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움직이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하는 식물이지만 동물보다 더 진화하고 동물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도 나무에 대한 사랑도, 고마움도 나무에 대한 감사도 감동도 두려움도 없다.
식물은 늘 우리의 선입관을 뚫고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다. 우리보다 못 해서가 아니고 우리들의 스승 같은 존재다. 식물은 단순히 자연만이 아니다. 우리는 식물들을 자연 환경의 악세사리 정도로만 치부하고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식물과 우리는 삶의 도를 뚫어내는 길에 진화적 규모의 함께 살고 함께 도를 닦는 이웃이고 함께 살아가는 친구고 동지라고 새로 봐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식물들이 있었기 우리들이 조상 대대로 살아 올수 있었고 우리가 오래전부터 꿈꾸어 온 아주 오랜 시간들의 역사 속에 서 압축적으로 추상된 환상의 세계를 인간들에게 보여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동물들은 생명을 다하면 미생물로부터 분해되기가 바쁘지만 나무는 죽어서도 다른 생명들을 보호하고 도우며 보여주기도 한다. 나무의 저 자유스러운 자람과 몸짓은 자연환경에서 자라난 것이지만 인간의 혼이 벼려낸 추상에서 빚어진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무는 바로 우리의 꿈이고 희망이고 미래이다.
나무의 모습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는 자연과정으로 맺어진 것이지만 우리의 마음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자유로운 영혼의 몸짓으로 춤을 춘다는 정도이다. 우리는 식물들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너무 하찮은 존재로 그저 언제나 사람들이 필요하면 나무의 생명이라도 내어 놓으라는 가당치 않는 생각으로 겁도 없이 행하고, 도륙하고, 피도 눈물도, 없이 몸둥아리 까지 다 내어 놓으라는 염체도 없고 양심도 고마움도 미안함도 없는 일을하고, 행동을 한다.
사실 우리가 잘 의식하지 못하지만 식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단순히 환경적 과학적인 판단만이 아니라 인간의 가치관이 중추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것이 죽은 식물도 목재로 가구로 생활도구로 우리 마음에는 살아 있는 이유이다. 가을에 말라붙은 풀잎은 겨울비를 맞고서도 우리를 황홀한 세계로 안내하는 상상의 세계다. 그 상상의 창공에 걸려 있는 고사목은 겨울의 차가운 공기에 얼어붙은 마음에도 숭고한 영혼의 자유를 일깨워준다. 좀 아는 사람은 죽은 풀과 고사목은 없애도 좋다고 생각하겠지만 좀 더 아는 사람은 죽은 풀이 겨울 생물에게는 무척 고마운 존재이며, 고사목이 어떤 생물에겐 우주의 자궁이 될 수도 있고 미생물의 자궁이 될수도 있다는 것이 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 자연의 세계는 아름다운 만큼 부서지기 쉽고, 복잡한 만큼 변하기 쉬운데, 우리는 무작정 무한정 지탱하는 힘을 지니고 있는 줄 착각할때가 너무도 많아 오류를 범하고 마는일도 허다하다. 마구 훼손하기 때문에 그 아름다움의 놀라운 정도가 느슨해지고, 묽어지고 복잡성의 깊이도 얇아지고 있다. 이제는 자연 산림을 훼손 하는 정도도 도를 넘고 있는 듯하다.

지자체가 되어 중앙정부도 지방정부에 대한 관심도 애정도 없다. 나라걱정보다는 자기 안위만 생각한다.아름다운 대한 민국이 무작정 그냥 이대로 자연환경이 난도질을 당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것을 흥미롭고 쾌감을 느끼며 즐기고 있는 남이아닌 나 자신인지도 모를일이다 .무감각하다. 감각이 둔해지고 민첩하지 못하다는것은 죽음을 예고 하는것이다. 그 예고 조차도 무시하는 미련한 사람들은 자연보다 자신이 먼저 죽는사실조차도 모른다.
자연 환경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식물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길만이 식물의 신뢰를 받고 사랑받을 수 있는 길이고 삶이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나무 뿌리와 물

자연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

식물의 동물과 차이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