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道德性

나무의 道德性

본문중에서 윤리는 인간이 행하여야 할 올바른 길이며 마땅히 공동의 선에 해당하는 길이 바로 윤리이고 그 길에 따라서 가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고 한다.
백과사전의 윤리(ethics) : 옳고 그름에 대한 도덕적 원리와 지각의 체계. 그리고 개인, 집단, 전문가, 혹은 문화에 의해서 실천되는 행위의 철학이다
나무야 말로 성직자 보다 바르고 예술적, 문화적, 종교적, 성인 같고 영웅적인 승리의 삶 같다.
나무의 윤리성, 나무의 평정심, 나무의 엄숙함, 나무의 애경심, 나무의사랑 앞에 감동이다.


나무들은 윤리적이다.
나무들은 신사적이다.
나무들은 양심적이다.
나무들은 나무적이다.
사람도 윤리적인사람은 올바른 일을 한다.
사람도 윤리는 환경에 의해 많이 좌우된다.
사람들은 윤리적 충동을 선의라고 생각을 하기도 한다.
윤리적인 사람은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나무처럼 정직하고 나무처럼 공정하게 살아간다면 사람 사는 곳 우리가 사는 곳이 바로 지상낙원이 될 것이다.
 나무는 나무랄 때가 없이삶을 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그래서 나무가 많은 숲이 좋고 나무가 많은 공원을 지상낙원이라고 하지 않는가?
지상 낙원에서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윤리적인 삶이다. 윤리적인 행동은 남을 서운하게 하지 않는 행동이다. 윤리적이고 도덕적이면 70~80%는 나무들 같이 낙원 같은 삶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곧 겨울잠에서 깨어난 나무들이 잎이 나고 줄기가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계절이 닥아 올 것이다. 그리고
봄이 되면 종달새가 하늘높이 날아올라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지저귀기 시작 할 것이다.어미 새는 갓 태어난 자신의 어린 새들을 키우기 위해 수십, 수백번 씩 둥지를 드나든다.
까치는 어린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르기 위해 집을 짓는다. 그 집을 짓기 위해 약 2,500번 내외를 나뭇가지를 물고 오르내리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뭇 새들 가운데 까마귀는 자라서 자신을 키워준 보답으로 어미 새에게 먹이를 물어다 준다(반포보은, 반포지효). 사실이다. 까마귀는 흉조(凶鳥)가 아니라 부모의 은혜를 아는 길조(吉鳥)다 지혜로운 새다. 새들 중에 가장 효심이 강하다는 새가 까마귀라고한다. 참 윤리적인듯하고 도덕적이기도하다.
오늘은 나무의 윤리성을 생각하고 그리고 실천하기로 연습하자고 이글을 쓰본다.
나무는 수백년을 살고 수천을 사는 나무들도 있다.
사람보다 먼저 지구에 와서 살았고, 살면서 수많은 인간들의 잘잘못을 보고 살고 있을것이다.
그래도 한번도 잘못을 누구에게도 폭로 하지 않고 비밀을 혼자서 삼키고 있다.
그래도 나무만은 언제나 진실했고 단 한 번도 거짓으로 살지 않았다고 이야기하고싶다.
인격을 가지고 있다는 사람들보다 나무는 더 윤리적이고, 도덕적이고, 인격적인 삶을사는듯하다.
나무가 수백년, 수천년을 살다보면 땅에 박은 뿌리가 흙의유실로 땅위로  들어 나기도 한다.
그래도 흙 한줌 스스로 덮을 수도 없고, 물 한 모금 스스로 먹을 수도 햇볕을 피할 길도 없다.
굵게 자란 줄기와 뿌리를 드러낸 나무 앞에서 인간의 교만함도 어리석음도 느낄 수가 있다.
가끔 고향을 찾아 수백년된 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 보호수 앞에서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그 당산 나무인 느티나무가 어릴적 부터 내가 자라든 시절 부모님 같고 이웃 어르신 같다.
나무를 가만히 보면 침묵으로 나무만이 알고 있는 의사를 다 표현 못하는 유일한 생명체 같다.
당산 나무는 바라보기만 해도 모든 삶을 전부를 이야기하고 대화가 되는 유일한 스승 같다.
 왠지 당산 나무를 보면서 나의 겉모습은 나무의 위엄스런 숭고함 앞에서는 매우 작아진다.
나무는 나에 대해서만 아는 것만 아니라 내 부모와 조부모님그 윗대까지의 삶도 알고 있다.
창조주는 사람에게는 100년 내외의 삶을 주시고 나무들에게는 수백년 수천년을 허락했다.
인간의 겉모습과 내면의 세계를, 말이 없는 나무와 비교한다면 가당치 않은 신성모독일까?
나무는 수백년 고향에 살면서 고향을 지키고 고향의 역사와 비밀을 가장 많이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단 한번 그 누구의 비밀스런 이야기를 나무끼리도 한 적이 없는듯하다.
나무야 말로 성직자 같고, 예술적, 문화적, 종교적, 성인 같고 영웅적인 승리의 삶 같다.
나무의 순수함 나무의 본질을 나무꾼이 자랑하기에는 나무꾼이 하루살이 같기만 하다.
나무의 윤리성, 나무의 평정심, 나무의 엄숙함, 나무의 애경심, 나무의사랑 앞에 감동이다.
나무는 비가 오고, 나무는 바람이 불어도 나무는 번개와 천둥이 칠지라도 당당한 삶이다.
나무는 지금까지 누구보다도 도덕적으로 잘 살아 왔다는 삶의 본보기요! 진실한 증거다.
나무의 도덕성을 나무꾼이 어떻게 정의하고, 어떻게 얼마나 이해하고, 이해 할수 있을까?
부모님의 산소를 찾아 엎드려 보지만 산소 뒤에 서있는 소나무는 부모님의 산소를 밤낮없이 지키고 서있다.
비가오던 눈이 오던 바람이 불던 이유가 없다. 나무꾼이 언제 몇 번이나 찾아왔는지 왜 왔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비밀이다.
진심과 진실을 상실하여가며 살아온 우리들이 나무 앞에서는 거짓이 없어야 할 것이다.
최소한 1년에 두세번은 가족을 데리고 부모님의 산소를 찾아 나무들의 교훈을 세겨 본다.
그러나 나무는 우리의 윤리적 행동을 칭찬도 비평도 잘잘못을 판단도 하지 않는다.
다만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다. 어찌 보면 방관자 같다. 그러나 언제까지도 지켜볼 거란다.
그러나 인간들이 진실과 거짓을 알고 살기에 진실을 얘기하지 않고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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