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함께
나무와 함께
본문중에서
나무는 남 같이 살며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 간다.
우리들이 어릴적 하나의 습관을 나이가 들도록 바꾸지 못하고 살아가면서 하물며 말 못하는 나무들을 보고 살면서 가꾸어 주지도 않으면서 나무들에게 잘 자라기를 곧게 자라기를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것은 자신의 습관하나도 못 고치는 사람들의 지나치고 과한 욕심 같다.
나무들이 우리들의 삶에 얼마나 소중하고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내가 감사 할수록, 내가 겸손해 질수록 더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나무는 남 같이 살면서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 간다.
나무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스스로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나무는 국적을 가리지도 않고 국적과 관계없이 누구에게도 너그럽다.
나무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며 동물들에게 에너지원이 되는 귀중한 삶이다.
나무는 모든 것을 외면 한다고 하여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세상에 베푸는 삶이다.
도움을 주는 나무들은 그 대상이 누구이든 대가없이 베풀고 배려하고 있는 대상 같다.
동물들은 살면서 노력해도 스스로 잘 바꿀 수 없는 것이 어릴적 뛰어 놀든 생활습관 이다.
습관은 남의 습관이 좋다 나쁘다 쉽게 이야기 할 수도 없다. 스스로 내가 바뀌어야 한다.
나무가 그렇다. 나무는 스스로 참 좋은 습관으로 사는지도 모른다..
우리들이 어릴적 하나의 습관을 나이가 들도록 바꾸지 못하고 살아가면서 하물며 말 못하는 나무들을 보고 살면서 가꾸어 주지도 않으면서 나무들에게 잘 자라기를 곧게 자라기를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것은 자신의 습관하나도 못 고치는 사람들의 지나치고 과한 욕심 같다.
여하간
사람들과 나무들의 삶을 생각하면서 우리들 삶은 어찌 되었든 서로는 서로가 필요한 존재이다.
사람은 나무를 심고 가꾸고 나무는 감사의 뜻으로 사람들에게 잎도 줄기도 뿌리도 꽃과 열매 그리고 향기까지 주지 않는가? 참으로 고맙고 감사하다.
세상을 살면서 누구를 진심으로 변함없는 우정과 사랑으로 의리로 살아가기란 쉽지는 않다.
나무를 알면서 나무를 사랑하면서 우리가 사랑받고 사랑해 주는 대상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 인지도 나무를 통해 조금은 알 수 있었고, 친구와 이웃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도 깨닭이 갈 수 있었다.
그리고 나무들이 우리들의 삶에 얼마나 소중하고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내가 감사 할수록, 내가 겸손해 질수록 나무와 숲이 더 아름답고 사랑스럽다는것을 느껴본다.
요즘 사람들은 강아지를 참 좋아한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정들면 정이 들수록 놓지 못한다.
강아지로서는 일용할 음식을 공급해 주니 강아지로서는 얼마나 주인이 얼마나 하늘같은 존재일까? 그리고 강아지는 잠 잘 곳을 마련해 주고, 먹을 것을 준비해 주고, 산책도 데이트도 해주니 자기가 할 일이라고는 꼬리 흔들고 주인을 사랑한다는 신뢰한다는 표현정도는 기본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강아지를 기른다면 식물보다 좋은 점이 더 많을 것같기도 하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도 사랑을 독차지 하니 세상에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다 보면 강아지는 나이가 들어 큰 개가 되어도 스스로 잘해서 사랑받고 스스로 잘해서 귀여움 받고 스스로 잘해서 지금의 위치를 차지하는 것으로 착각 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나이 들고 외로울 땐 강아지 보다 더 좋은 친구가 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식물들은 알고 보면 강아지 보다 더 좋을 수가 있다. 나무들은 살아서도 대가없이 사람들의 생활을돕는유용한 자원이고 나무들이 나이 들고 죽어서도 함께하는 생활에 유용한것이 나무들 이기도 하다.
나무는 삼시세끼 챙겨주지 않아도 된다. 일상을 책임지지 않아도 되고 내가 보고 싶을 때 내가 위로 받을 때 필요할때만 만나도 된다.
여하간
사람들은 동물도 식물도 내 곁에 있으면 좋겠다는 내 마음의 의존성은 여전하고 누구나 의존한다.
사람들은 스스로 인성을 깨우치며 살아왔고 인생을 개척해 왔다고 하지만 어릴적 행동 머릿속의 잠재의식 생활습관은 죽는 날 까지 그대로 인듯하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진리처럼 느껴진다.
내가 세상을 위해 헌신하고 베풀며 산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가 받는게 더 많은 삶을 살아 온것이 사실이다. 당장 부모들에게 받은 사랑과 물질 평생에 반이라도 값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웃도 친구도 새로 생각해 볼일이다. 다 자기 스스로 상처를 만들어 받았지 남이 일부로 준 상처는 별로 없는듯하다.
지금 생각하면 상처 준 사람도 고마운 사람이였고 돈을 떼어 먹은 사람도 내가 사랑하고 믿어 준 것이지 나를 협박해서 뺏어간 사람은 아무도 없는듯하다.
욕해주고 싶고 앙갚음을 하고 싶은 나의 마음에 나를 스스로 채찍질 하며 반성해 보는 마음이고다.
그러면서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다. 행여 그들이 아니면 오늘 내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 나의 실수는 내가 나를 모르는 나를 발견하게 한 귀중한 시간들이였고 엄청난 소중한 사건들이였다. 지난 시간동안 수많은 사건들 수많은 만남들 관계들이 지금 내가 서있는 기둥이 되어 준거라 믿고 싶다. 미처 생각지도 못한 나를 발견한 시간들이였다.
어릴때 보기만 해도 위엄스럽고 수 백년 된 듯한 무섭기도 했든 당산나무가 지금도 나를 내려다보고 미소 짓고 있다. 어차피 서로 마음으로 기대고 위로받고 위로하며 사는게 인생 인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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