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기다리는 나무
봄을 기다리는 나무
(요약) 봄의 새싹이 보고싶고 꽃이 보고싶으면 흙의 가슴이 다뜻해 지기를 기다리라는 시인의 말처럼 아름다운 꽃을 보려면 내마음이 먼저 따뜻한 봄이 되어 기다려야 할것 같다는 생각이다.
나무가 기다리는 봄의 환경, 사람이 기다리는 봄의 환경
풀잎이 자라나는 봄의 환경, 동물이 자라나는 봄의 환경
환경 문제는 어느 부분을 통해서 전체를 볼수 없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환경 문제의 가장 중요한 특성 하나가 바로 너무 다양하고 복잡하다는 것이다.
환경의 복잡성(complexity)은 다양한 행위자와 수없는 인자들의 상호관계의 불충분 인듯 하다.
그리고 세대에 따라 性比(성비)에 따라 남녀노소에따라 다 다르다는 것이다.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경제적으로, 환경상황에 따라서도 종교적인 생각과 이념적인 차이로도 다를 수밖에 없는 듯하다.
같은 환경에 살면서도 진보와 보수만이 아니라 개개인의 이념의 차이는 하늘보다 큰것 처럼 말이다.
이러한 복잡하고 다양한 환경에서 식물들은 잠시도 그냥 있지 않고 생각하고, 움직이고 자란다.
식물들이 자람에는 단순한 환경이 아니다. 옮겨 갈수도 피할 수 도 없이 한번 씨앗이 새싹이 트면 식물들이 서로 의존하며 서로 잘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고 식물의 성장은 종류별로 다양하기만 하다. 서로 의존하지도 않고 서로 구속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생물은 서로 의존하면서 서로를 이어내며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며 의존하지만 경쟁하며 자립하고 자조하며 창출한다. 한 예이지만 티끌처럼 날려 다니든 씨앗이 새싹을 내고 땅도 뚫고 지상으로 올라오는 놀라운 존재이다. 자연을 재해만 겁을 낼것이 아니라 나무의 씨앗이 싹이 트고 나무가 저렇게 자유로운 몸짓으로 춤추듯이 자라고 있는 것은 나무가 온실의 화초처럼 하늘과 땅 사이에 갇혀 통제 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을 이어주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알려주는 것이다. 혹이나 앙코르와트 사원을 꼼짝도 못하게 휘어 감고 있는것을 보지 않았는가? 사람들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공중도덕을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에 따라 관심을 가지느냐 안 가지느냐에 따라 사람과 동물의 태도에 따라 생태계에 영향은 한 없이 변화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자연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절대적이라 하겠다. 우리도 단순히 생태계에 의존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생태계의 과정에 참여하고 함께 동거 동락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의 행동거지에 따라 생태계에 짐이 될 수도 있지만 생태계를 이어주는 숭고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환경을 잘 보호하고 잘 관리하며 규칙과 규정을 지키고 사는듯하고 스스로 대단히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가 자연환경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은 내가 내 생각을 하고 내 가족 정도를 생각하지 더 이상 자연의 환경은 생각하고 이용하는 것 보다 사용하고 사후를 생각한다. 그만큼 환경에 대한 사랑이 미약하기 짝이 없다. 세상에서 모든 관계가 다 끊어졌다는 것을 알고 나서 괴로워하는 경우에도 사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어머니 품에 안겨 있는 아이처럼 생태계와 우주의 품에 안겨 있는 것이다. 나의 존재를 지탱하는 대지, 나의 눈빛을 받아주는 하늘, 나의 숨결을 이어주는 수많은 생명들. 원초적 고향이란 이런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외로운 들판에서 외로운 바위틈에서 피어나 바람에 시달리는 구절초에게 조차 사람들은 위안을 받고 위로를 받으며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는가?
구절초는 말없이 가득한 미소로 우리들에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우리를 행복의 길로 안내해주기도 한다. 사실 고통과 기쁨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한 생명력의 성장이다. 봄은 부활을 상징하고 소생, 성장, 희망이 가득한 계절이다. 봄의 새싹이 보고싶고 꽃이 보고싶으면 흙의 가슴이 다뜻해 지기를 기다리라는 시인의 말처럼 아름다운 꽃을 보려면 내마음이 먼저 따뜻한 봄이 되어 기다려야 할것 같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작은 풀꽃을 보고서도 왜 이리 감동하기도 하고 행복해 하기도 하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이곳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고마운 환경임을 자연에 다시 한번 감사 하자. 그리고 감동해보자
댓글
댓글 쓰기